남북 정상회담은 과연 ‘북한 특수’라는 대박을 터뜨릴 수 있을까. 또 정말로 대박이 터진다면 그 규모는 얼마나 될까.

요즘 대기업과 중소기업 구분없이 재계의 모든 안테나는 북쪽에 쏠려 있다. 남북 정상회담과 그에 따른 대북 경협의 본격화가 1970년대 중반 ‘중동 특수’와 맞먹는 특수를 쏟아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이와 관련, 김대중 대통령은 4월초 총선 이후 북한 특수를 언급하면서 “중동 특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의 북한 특수가 있을 것이며 특히 중소기업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규모로 투자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재계에 따르면 북한 특수는 김대통령이 예상하는 ‘장밋빛 전망’이 실현되기만 한다면 각 분야에서 한국 경제를 한단계 끌어올릴 놀라운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 현대, LG그룹 등은 비록 물밑이기는 하지만 ‘특수’를 누리기 위한 대책마련에 착수한 상태이다.


재계, 선점효과 위해 물밑 경쟁

대북 경협분야에서 한발 앞서가고 있는 현대는 현대건설, 현대중공업, 현대종합상사 등 관련 계열사를 총동원해 ‘선점의 효과’를 누린다는 전략이다. 현대의 한 관계자는 “국내 건설경기가 침체돼 있는 상황에서 220억 달러로 예상되는 서해안공단 사업 등 건설특수가 북한에서 일어나면 그 파급효과는 건설 중장비, 해운 등에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LG그룹도 LG상사와 LG건설이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정유, 항만, 도로 등 북한내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사업 진출을 검토중이며 LG전자는 투자여건이 성숙되면 4,500만 달러를 투자해 연간 20만대의 컬러TV를 생산하는 공장의 설립을 추진중이다.

이밖에 LG상사도 10억달러를 투입, 비무장지대에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잇는 국제적 물류거점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도 5월부터 반입하는 북한산 컬러 TV를 2만대까지 늘릴 예정이며 5~6월에는 삼성브랜드를 부착한 북한산 라디오 카세트와 유선전화기도 시중에 판매할 계획이다.

개별 기업의 이같은 움직임과 함께 북한 투자에 소요될 자금의 충당 방안도 정부와 전경련 차원에서 마련되고 있다.

우선 재계는 남북 경협 활성화에 대비, ‘남북경협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전경련의 고위관계자는 “개별 기업이 대북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자금문제를 해소하고 전체 기업에 공동으로 혜택을 줄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민간 차원의 기금을 조성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유럽연합(EU)의 기업들이 최근 북한 경제개발사업에 남한 기업과 공동으로 참여하자는 제의를 해오고 있다”며 “EU 기업들과의 동반 진출이 투자위험을 줄일 수 있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역시 남북 정상회담 이후 대북 경협에 대비, 남북협력기금 확충 등 다각적인 재원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11일 “대북사업을 위해 재원이 필요할 경우 1차로 남북협력기금을 사용하고 부족할 경우 대외협력기금, 국제협력단 자금의 사업내역을 조정해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9년말 현재 남북협력기금 조성 규모는 5,250억원인데 여기에 올해 정부 출연금(1,000억원)과 국채관리기금 차입금(2,728억원) 등을 더해 연말까지 규모를 8,821억원으로 늘린다는 것이 정부의 복안이다.


제도적 장치 마련, 시간 걸릴 듯

한편 일부에서는 북한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외개방에 적극 나선다면 자체적으로도 상당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흘러나고 있다. 한국은행 조사국 북한경제팀의 박석삼 조사역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북한이 세계은행(IBRD) 등 국제금융기관에 가입할 경우 27억~45억 달러 가량의 차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에상했다.

박 조사역은 “북한이 경제개발을 위한 자금을 자체적으로 마련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이른 시일내에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해야 하며 부족분을 보충하기 위하여 가능한 한 조기에 많은 외국인 직접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초대형 북한 특수’의 현실화에 대해 부정적 의견도 여전히 있다. 북한 특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대북 투자의 선결조건인 투자보장협정, 이중과세방지협정 등 각종 제도적 장치가 단기간에 마련될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6월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경제관련 의제가 주로 비료, 쌀 등 인도적 차원의 지원에 국한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 경우 민간기업이 상업적 배경에서 추진하는 본격적인 대북 투자는 늦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대북 경협에 대한 또다른 부정적 시작은 그동안의 대북 경협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가져 오지 못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해 남북 교역액이 1998년보다 50% 이상 늘어나 사상 최대규모를 기록했지만 3억3,343만 달러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남북 경제협력의 수준이 초보적이며 수익성 측면에서도 문제점을 갖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실질적 이익에 초점 맞춰야

실제로 북한에 위탁가공으로 진출한 대부분의 국내업체들은 남북한 화물수송이 해로로 제한되고 낙후된 교통·항만으로 인해 턱없이 높아진 물류비를 가장 큰 애로점으로 꼽고 있다.

북한에 진출한 한 업체의 사장은 “20피트짜리 컨테이너 기준으로 물류비만 1,000달러에 달한다”며 “이는 유럽으로 수출하는 물류비와 맞먹는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도 “북한 노동력의 단가는 남한의 20~25% 수준에 불과하지만 전체 임가공 비용을 따지면 남한의 80~90%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이들은 북한 특수를 성급히 기대하고 장밋빛 꿈에 젖기 보다는 남북간의 실질적 이익에 부합되는 사업을 장기적 안목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가장 기본적인 대북 협력은 사회간접자본 중에서도 에너지 분야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라며 “이처럼 대북 경협의 완급을 조절해 나가다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기간에 대규모의 특수가 발생할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4/20 22:59


조철환·주간한국부 ch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