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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 동북아 세력판도 바뀐다

한반도에 훈풍이 불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 합의가 몰고온 봄바람은 지구 유일의 냉전지대에 해빙의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50년이상 반목해온‘투 코리아’(Two Koreas)의 정상이 화해와 협력을 얘기할 한반도의 일대 사건은 주변 4대국의 역학관계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까. 세계는 지금‘평양 서밋(summit)’이 가져올 동북아 정세의 지각변동을 주시하고 있다.


한반도와 4강

민족내부 문제이면서 동시에 동북아 안보의 핵심을 이뤄온 한반도 정세의 특수성상 남북 정상회담은 민족간 화해 모색의 차원을 넘어 동북아의 세력 판도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요소를 내재하고 있다.

이는 냉전의 원인이었던‘외부 세력’, 즉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의 역학관계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한반도의 냉전구도 해체를 논할 수 없는 국제질서의 현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 이들 4강은 남북의 적절한 세력균형과 한반도의 ‘현상유지’(status quo)야말로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 안전판이라는데 이해를 같이 해 왔다. 4강의 전략적 이해관계는 최근 동북아 안정의 가장 위협적인 요소로 등장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저지하려는 국제적 노력에 어느 정도 공동보조를 취해온 데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런 국제정세에서 남북간 직접대화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지를 약화시켜 동북아의 안정을 상승시키는 쪽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4강들이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일제히 환영하고 나선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상회담과 북미관계

한반도의 탈냉전화에 대한 4강의 이해가 일치한다고는 하나 개별 입장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우선 미국은 남북 정상회담이 북미 고위급회담, 나아가 동북아 전략에 미칠 효과를 저울질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한 직접대화는 한반도 문제해결의 핵심이다.”(11일 클린턴 미대통령) “우리는 한반도에 미군을 장기주둔할 계획을 여전히 갖고 있다.”(12일 코언 미국방장관) 남북 정상회담 합의 발표후 나온 미 지도자들의 반응은 미국이 이번 회담에 갖는 기대와 우려를 시사하고 있다.

한 외교전문가는 “남북간 화해와 협력을 중시하는 한국,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중단을 선결과제로 꼽고 있는 미국의 입장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며 “미국은 북한이 대미·대일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남북관계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한·미·일의 3각공조가 튼튼히 유지될 경우 북한의 의도는 빗나갈 것이다. 특히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대미 관계개선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하지만 북한의 남북 정상회담 수용이 대미협상에서 테러지원국 명단해제 등 ‘선물’을 당장 기대할 수 없는 현실적 한계를 깨달은 결과라면 북한이 대미관계 진전에 급박하게 매달릴 가능성은 훨씬 줄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더욱이 남북의 관계개선이 예상보다 급류를 탈 경우 한반도에서 미군의 주도권 약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은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코언 장관의 발언은 주한미군 문제와 북한 핵 및 미사일 문제 등이 남북한간 협상의 의제가 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려는 ‘대한(對韓)경고’로 해석된다.


정상회담과 북일관계

남북합의를 계기로 일본은 북한과의 수교교섭에서 남북대화의 진전을 고려해야 할 부담을 벗고 전향적으로 대북접근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올 경우 북한의 대일 배상금 청구, 과거사 사과, 일본인 납치 등 현안에 대한 의견접근의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일본도 남북간의 정상회담 합의가 달가운 것만은 아니다.

북한이 한국과의 경협에 치중할 경우 수교협상에서 대북보상금이나 식량지원 이 갖는 지렛대 효과는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특히 1998년 8월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시험이후 한반도 문제에 대한 개입의 폭을 넓혀온 일본으로서는 남북간의 직접대화 시도가 한반도에서 자신의 역할을 떨어뜨릴 수도 있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정상회담과 중·러

남북간 화해분위기는 최근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공동전선을 펼치면서 한반도에서 영향력 증대를 추구해온 중국과 러시아에게 더없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의 전통적인 관계 복원을 통해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국의 리펑(李鵬) 전인대상무위원장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교차방문이 올해 안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북중간의 관계복원 움직임이 급물살을 탈 것을 예상된다.

한반도 문제에서 소외돼온 러시아도 푸틴 대통령 당선으로 대한(對韓)일변도의 정책에서 벗어나 북한과 보다 가까워지려고 할 것이다. 한 외교전문가는 “북한과 러시아는 2월 우호·선린·협력조약 체결로 관계복원의 발판을 마련했다”며 “5월 푸틴 대통령의 취임식 사절단 파견을 계기로 양측의 관계진전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과의 협력관계를 도외시하고 북한과 가까워질 가능성은 없다. 오히려 한반도의 안정을 토대로 중·러와 우리나라와의 관계는 더욱 발전될 여지가 높다.

문제는 유일 수퍼파워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미국과 국제질서의 다극화를 추구하는 중국·러시아가 첨예하게 대립, 한반도에 신냉전구도가 생길 경우다. 강대국의 대립은 남북이 민족문제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노력를 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남북 정상회담 합의의 결과로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유효한 정책으로서 탄력을 받게 됨과 동시에 시련을 맞게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외교전문가는“남북 정상회담 개최는 한반도 문제를 남북 당사자가 주도한다는 의미를 지니지만 관계개선이 적정선을 넘을 경우 주변국의 강한 견제를 받게 될 것”이라며 “반세기 만에 얻어진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주변 4강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승일 정치부차장 ksi8101@hk.co.kr

입력시간 2000/04/20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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