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어린이가 1년동안 약 50억시간을 함께 보내는 장난감. 해마다 1억개가 넘는 세트가 만들어지고 서유럽 몇몇 나라의 경우 14살 미만의 어린이가 있는 10가구 가운데 9가구가 갖고 있는 장난감. 지금까지 3억여명의 어른이 만지작거리며 어린 시절을 보낸 장난감.

선명한 색상과 다양한 모양, 무한한 조립물로 지구촌 어린이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는 ‘레고’(LEGO)의 이력서다. “하늘나라 한쪽에 어린이 나라가 있다면 그곳에는 틀림없이 레고가 있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장난감 제국인 레고는 동화작가 안데르센으로 유명한 덴마크의 목수 출신 사업가인 커크 크리스찬센(Kirk Kristiansen)이 1932년 설립했다. 덴마크 빌룬트에서 사다리, 다리미판 등을 만드는 목수였던 크리스찬센은 목수로서의 재능을 발휘할 새로운 방법을 찾다가 1932년 나무로 만든 장난감을 내놓았다. 회사 이름과 제품명은 덴마크어로 ‘재미있게 놀다’라는 뜻인 ‘LEG GODT’를 줄여 ‘레고 (LEGO)’라고 붙였다.


가내수공업에서 출발, 블록 개발로 도약

창립 67년만인 1999년 말 현재 레고는 ‘장난감 제국’이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대기업으로 자라났다. 레고는 장난감만을 취급하는 회사로서는 드물게 130여개국에 판매망을 갖고 있으며 50개국에 지사를 두고 있다. 또 매출액이나 순이익 측면에서도 국내 굴지의 재벌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1999년 한해 동안 레고는 100억 덴마크 크로네(DKK·1조4,281억원)의 매출액을 올렸으며 우리 돈으로 710억원이 넘는 5억 덴마크 크로네를 순이익으로 남겼다.

하지만 덴마크의 조그만 가내수공업에서 출발한 레고가 60여년만에 세계 완구시장을 석권한 배경에는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낸 도전과 응전의 역사가 숨어있다. 우선 레고가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기 시작한 것은 창립자의 아들인 고트프레드가 1955년 ‘레고 블록’을 개발하면서부터다.

당시 고트프레드는 장난감 구매상으로부터 “요즘 장난감에는 ‘시스템’이 없다”는 푸념을 들은 뒤 8개의 돌출부분을 가진 기본블럭 6개의 조합으로 1억여개의 조립물을 만들어내는 ‘레고블럭 조립시스템’(Stud-and-tube Coupling System)을 발명했다.

이를 통해 레고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닌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하는 장난감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이후로도 레고는 1967년 ‘듀플로’(duplo) 시리즈를 출시해 유아부터 청소년기에 이르기까지의 연령층에 따라 제품을 차별화하는 전략을 구사해 서유럽과 미국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다.

레고는 또 완구업체로서는 드물게 경영환경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1998년 한해동안 레고는 아시아, 러시아의 외환위기에 따른 매출감소와 전자오락과 CD게임기 등의 등장으로 역사상 최초로 1억9,400만 덴마크 크로네에 달하는 손실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국내외 각 언론에서는 “전자오락의 등장이라는 시대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레고가 자칫 몰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최고 브랜드가치기업 꿈꿔

하지만 레고의 대응은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재빠르고 파격적인 것이었다. 창립이래 68년동안 크리스찬센 가문의 ‘가족기업’으로 남아 있던 레고는 1999년 한해 동안 전세계 1만여명에 달하는 종업원중 1,000명을 감원하는 한편 그동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마인드스톰’ 시리즈 등 CD롬 게임분야에 진출, 큰 성공을 거뒀다.

레고는 이같은 변신에 힘입어 최근 ‘2005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브랜드 가치를 지닌 완구업체로 도약한다’는 중기 목표를 내놓았다.

그렇다면 세계를 휩쓰는 ‘장난감 제국’인 레고는 언제 한국 시장에 진출했을까. 레고가 한국에 진출한 것은 1984년이다. 당시 레고는 ‘레고 코리아’라는 법인과 함께 경기 군포에 조립식 완구공장을 지으면서 한국에 진출했는데 이후 1997년까지 연간 10~20%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1997년에는 매출액이 국내 완구시장의 10%가 넘는 500억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레고 코리아 관계자들은 “레고그룹 내에서 레고 코리아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레고 코리아는 1997년 8월 경기 이천에 1만5,000여평규모에 연 200여종, 1,000만세트의 조립완구를 생산하는 공장을 완공했는데 이는 레고그룹의 유일한 아시아 지역 생산공장이다.

레고 코리아는 또 낙후된 한국 완구시장의 수준을 한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즉, 레고 코리아는 한국시장 진출이후 대규모 예산을 투입, 불우 어린이를 지원하는 등 기업이미지 제고에 노력했는데 이는 외국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레고를 한국 부모와 어린이들이 부담없이 다가갈 수 있는 회사로 만들었다.

실제로 레고는 경영상황이 최악이던 1998년에도 덴마크 레고랜드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레고 가상체험관’을 선보인데 이어 1999년 여름에도 움직이는 체험 박물관인 ‘레고 트럭쇼’를 개최해 ‘레고는 어린이를 위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최고 브랜드가치기업 꿈꿔

물론 레고 코리아는 양과 질이라는 측면 모두에서 국내 완구업체에 대해 확고한 우위를 구축하고 있지만 여전히 극복해야 할 과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국내 조립완구 업체인 ‘옥스포드’와의 모방시비는 앞으로 레고 코리아의 국내 사업이 어떤 궤적을 그릴 것인가를 측정하는 바로미터다.

레고 코리아는 1998년 부산지역 장난감 업체인 옥스포드가 ‘성 시리즈’, ‘경찰 시리즈’등 레고제품의 포장디자인과 내용물을 모방했다며 소송을 제기, 승소판결을 얻어냈다.

그러나 옥스포드측은 “포장디자인은 세계 20여개국에서 사용하고 있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내 완구업계의 한 관계자는 “레고의 경우 제품특성상 모방시비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레고제품을 벤치마킹한 한국 완구업체의 공세가 계속될 경우 한국시장에서 레고의 위상이 크게 위협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4/20 23:28


조철환·주간한국부 ch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