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움의 바닷길… 따이꽁을 아시나요

“객실 복도에 빨래를 널어 말리고 계시는 승객 여러분은 빨래를 치워주시기 바랍니다. 빨래에서 흘러내린 물 때문에 객실 복도가 모두 젖고 있습니다. 다른 승객을 위해 공중도덕을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여객선이 인천항 갑문을 빠져나온지 한시간 남짓 지났을까, 선내 안내방송에서 빨래를 치워달라는 부탁이 서너차례 흘러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이코노미급 선실의 복도를 따라 설치된 손잡이에는 바지에서 속옷에 이르기까지 흠뻑 물을 머금은 빨래가 잔뜩 널려 있었다. 목욕탕에는 알몸으로 한창 빨래중인 사람도 보였다. 휴게실에서는 도시락을 꺼내 먹는 사람도 여럿 눈에 띄었다.


도시락, 컵라면으로 끼니때우는 국제행상

크루즈급 여객선에서 빨래가 웬일이고 도시락은 또 무엇일까. 설마 해외여행 떠나는 관광객이 돈을 아끼자고 배안에서 손수 빨래하고 도시락을 먹을 리는 없을텐데…. 의문은 곧 풀렸다. 이들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보따리 장사’를 하는 속칭 ‘따이꽁’(代工)이다.

따이꽁은 중국어 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굳이 번역하자면 ‘남을 대신해 일하는 사람’쯤 된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규정된 휴대물품량 만큼 물건을 가져다 파는, 이른바 ‘국제 행상’이다.

인천과 중국의 톈진(天津)을 오가는 2만5,000톤급 여객선 톈런(天仁)호. 일주일에 두차례 인천과 톈진을 왕복한다. 편도 항해시간은 약 20시간. 이 여객선 안의 사회는 뭍과 다를 바 없다. 최소한 계층이 확연히 구별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중국으로 관광가는 ‘부유층’과 배가 생계터전이 된 보따리 장사, 즉 ‘빈곤층’으로 구분된다. 관광객이 고급 선실과 레스토랑에서 해상여행의 낭만을 즐기는 동안 따이꽁들은 공동 선실에서 도시락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한-중 항로에 따이꽁이 등장한 것은 1992년 수교와 더불어. 이름 밝히기를 한사코 거부한 모(49)씨는 8년째 따이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8년째라면 따이꽁의 대부라 불려도 좋을 최고참. 휴게실에서 담배를 피우던 그는 “사람도 늘고 규제도 늘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자신들의 생활을 소개했다.


전자제품 팔고 중국농산물 들여와

따이꽁들이 중국에서 들여오는 물건은 70% 이상이 농산물. 참깨, 말린 고추, 콩, 율무, 흑미, 대추 등을 비롯해 ‘먹는 건 거의 다’ 포함된다. 한국에 들어오는 중국산 농산물은 대부분 따이꽁을 통한다고 보면 된다.

한국에서 가져 나가는 물건은 전자제품 등 고부가 상품. 과거에는 문구, 의류, 가전제품 등을 많이 수출했지만 요즘은 국산이 중국제품의 가격경쟁에 밀리는 바람에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

따이꽁이 들여올 수 있는 농산물은 각 품목당 5㎏이되 총중량이 80㎏을 넘어선 안된다. 쌀, 고추, 깨 등을 품목당 5㎏씩 모두 80㎏까지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다. 무게가 초과되면 인천세관을 통과할 때 압수당하기 십상이다. 압수당하면 물론 헛장사가 된다. 실제로 인천세관에서는 따이꽁과 세관원 사이에 통관을 놓고 험악한 분위기가 일 때도 종종 있다고 한다.

한차례 왕복하며 장사해서 남는 돈은 많아야 10만원. 왕복 뱃삯 30만원과 약간의 밥값을 제한 돈이다. 이것도 80㎏ 규정량을 꽉채워 들여왔을 때의 이야기다. 대부분 한차례 평균 7만원 정도를 번다. 톈런호가 한달에 7차례 왕복하니 빠짐없이 배를 탄 사람은 평균 50만원 정도 버는 셈이다. 물론 세관에서 압수당하는 불상사가 없을 경우다. 압수당하면 원금까지 날리게 된다.

중국 현지에는 따이꽁을 위해 전문적으로 물건을 대주는 중국 상인이 있다. 현지 상인은 한족과 재중동포(조선족)가 절반. 이들은 사전에 연락하면 정확하게 물건을 포장까지 해놓고 기다린다고 한다. 한국으로 갖고 들어온 농산물은 따이꽁이 직접 곡물상에다 판다.


한달 꼬박 시달려도 ‘50만원 수입’

따이꽁은 40-60대가 주류. 여자가 절반을 넘는다. 남자들은 정년퇴직자나 실직자가 대부분이다. 상당수가 주위의 소개로 따이꽁 생활을 시작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 따이꽁은 수가 급격히 늘었다. 출신지역도 전국에 걸쳐 있다. 인천에서 물건을 팔고나면 우선 고향의 가족에게 돈을 부치는게 맨 먼저 할 일이다. 집이 인천인 사람은 그래도 하룻밤 가족 얼굴이나마 볼 수 있지만 타지 사람은 그런 행운도 누릴 수 없다. 안부전화 한통이 고작이다.

이들은 친한 따이꽁끼리 삼삼오오 값싼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다시 배에 오르게 된다. 이들이 가족을 만나는 것은 대개 비자갱신기간을 이용해서다. 이들이 받는 비자는 6개월 복수비자. 신청해서 비자가 나올 때까지 며칠간이 이들에게는 휴가기간이다.

톈런호에 타는 따이꽁은 약 150명. 조선족 15명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한국인이다. 배 위에서 지내야 하는 힘든 생활이라 5년 이상 계속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150명 중 5년 이상 경력자는 20명 정도.

따이꽁간의 유대는 ‘가족 이상’이라고 한다. 생활의 대부분이 배 안에서 이뤄지는데다 동료 따이꽁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가족보다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20시간의 긴 항해 동안 함께 바둑과 장기, 카드놀이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배 안에서 빨래를 하는 것도 육지에서 보내는 시간이 짧은 까닭이다.

따이꽁과 선박회사의 관계는 아주 친밀하다. 선사측 입장에서 보따리상이 큰 고객이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한다고 한다. 이들은 톈진세관 보다는 감시가 심한 인천세관을 훨씬 껄끄러워 한다. 중국산 농산물의 범람을 막느라 그럴 것이란게 따이꽁들의 추측이다.


몽골·러시아 연해주까지 진출

한국 보따리상이 드나드는 중국지역은 톈진을 비롯해 다롄(大連), 단둥(丹東), 웨이하이(威海) 등. 이중 웨이하이는 화교들이 장악하고 있어 한국인은 드물다. 최근에는 훈춘(琿春)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러시아 연해주는 물론이고 나진·선봉까지 가서 장사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요즘 따이꽁의 가장 큰 걱정은 정부의 수하물 무게 제한. 종전의 80㎏에서 50㎏으로 무게를 줄일 경우 벌이가 더욱 신통찮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 천호동에 산다는 한 주부는 “이번이 처음 나가는 것”이라며 다소 들떠 있었다. 하지만 부푼 꿈을 갖고 왔다 벽에 부딪혀 도중하차하는 사람이 더 많다. 요행히 돈을 벌어 인천에 오퍼상을 연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는게 이들의 한결같은 이야기.

부산에서 조그만 무역회사를 하다 IMF 위기의 와중에 부도를 맞았다는 장모(55)씨. 회사를 정리하고 남은 돈 50만원을 들고 배를 탔다는 그는 이번 항해가 두번째다. 가족에겐 “찾지 말라”는 말만 남긴 채 인천으로 올라와 배를 탔다.

보따리상으로 뛰어들기 전 그는 시장조사삼아 두달간 전국을 누볐다. “강원도 산골의 5일장에 나오는 참깨도 국산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중국산 농산물이 한국 전역을 커버하고 있어요. 따이꽁이 들여온 것이죠.” 그가 ‘개미상인’이라고 부르는 따이꽁의 위력이다. 중국에서 따이꽁이 들여오는 농산물은 여객선 한 척당 5억-10억원에 이른다는게 이들의 추산이다.

아직 초보자지만 무역경험이 있는 장씨에겐 약간의 희망이 남아있다. “자본금 40만-50만원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 이것 말고 또 있겠어요. 두번 해보니 매번 10만원 정도는 남데요. 힘들어도 견디다 보면 아이템이 생기겠죠.”

하지만 국내 경제가 회복되면서 자신의 처지가 나아지리란 기대는 아예 않고 있다. “‘IMF가 끝났다’느니, ‘벤처기업 붐’이니 하는 말은 먼 나라 이야기죠. 우리에겐 IMF가 계속되고 있어요. 경기회복이니 뭐니 하는 얘기는 정부나 배부른 사람 얘기죠.”


“우리에겐 여전히 IMF”

따이꽁 생활 1년째라는 권모(38·서울)씨는 “배 안에서 먹고 자고 남기는 돈이긴 하지만 굶는 것 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2년전 결혼했지만 아직 아기는 없다고 한다. “마누라 안 굶긴다는 생각에 살긴 살지만 미래가 없어요. 배 안에서만 생활하다보니 (중국)현지 시장조사는 물론이고 사업 아이템이나 노하우가 생길 리 없죠.

모두들 아이템 잡기가 정말 힘들다고 말해요. 한국에서 일단 물건이 들어오면 중국 시장에는 10일내에 (불법)복제품이 좍 깔리기 때문이죠. 중국산 복제품 값이 한국산보다 훨씬 싼데 장사가 될 리 없죠. 그래서 그냥 이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삽니다.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것도 서러운데, 돈도 못벌면서 세월만 보내는게 안타까워요.”

권씨는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자조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느님이 ‘너는 평생 따이꽁이나 하라’며 만든 모양입니다.”

인천·톈진=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4/20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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