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일수록 그 학교의 어귀에 들어서면 학문의 냄새가 풍긴다고 한다. 역사의 이끼가 낀 중세풍의 장엄한 영국의 옥스포드대학이 그러하고 ‘Veritas’(라틴어로 ‘진리(眞理)’라는 뜻)라는 명문이 있는 미국 하버드대학의 고풍스런운 철문이 그러하다.

또 일본 도쿄대(東京大)의 아카몬(赤門:붉은 벽돌문)이나 야스다(安田)강당의 은행나무길 역시 학문의 냄새가 풍겨온다. 우리나라 성균관이 건학 800년이 지났다. 성균관처럼 오래된 대학은 세계적으로도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옥스포드, 볼로냐, 하이델베르크대학의 연륜이 성균관과 비슷하다.

성균관! 조선조 태조 7년(1398년)에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한양(서울)에 설치한 국립대학 격의 유학 교육기관으로 태학(太學), 반궁(泮宮), 현관(賢關), 근궁(芹宮), 국자감(國子監), 국학(國學), 수선지지(首善之地)라고도 일컬었다.

조선조가 개국하면서 한양천도(漢陽遷都)에 따라 새 도읍지의 동쪽, 즉 해가 뜨면 제일 먼저 햇살이 비치는 아늑한 동산에 만년대계의 가르침과 배움의 터전을 잡았던 것.

그래서 ‘가르침을 숭상한다(떠받든다)’는 뜻으로 땅이름도 ‘숭교방’(崇敎坊:오늘날 종로구 명륜동, 혜화동 일대)이라 이름짓고 터를 잡았던 것으로 미루어 조선조 개국초기부터 태조가 교육과 인재양성에 얼마나 역점을 두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성균관이 자리한 곳으로부터 종로에 이르는 길가의 땅이름도 하나같이 충(忠), 효(孝),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을 따서 인의(仁義)동, 예지(禮智)동, 충신(忠信)동, 효제(孝悌)동과 같은 이름을 붙임으로써 학교(성균관)에 이르는 거리 전체가 학문(유학)의 냄새가 물씬 풍기도록 하였던 것이다.

성균관에 들어서면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 걸어라’는 ‘하마비’(下馬碑)가 이끼를 머금은 채 서있다.

그러나 그런 세월의 풍상과 옛스런 멋은 아랑곳없이 번쩍이는 승용차 행렬이 경적을 마구 울리며 질주하고 있어 학문의 전당같은 맛과 멋은 빛 바랜지 오래다. 육중한 외삼문(外三門)을 열고 들어가 경내를 돌아보니 유학을 강의하던 명륜당(明倫堂), 공자(孔子)를 모신 문묘(文廟), 학생(學生: 儒生)의 기숙사인 동·서재(東·西齋) 등이 가지런히 서 있다.

문묘의 정전(正殿)인 대성전(大成殿:원래는 大聖殿이었으나 단종때 大成殿으로 고침)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4성(聖), 10철(哲), 송(宋)나라 때의 6현(賢) 등 모두 21위(位)를 봉안하였고 동·서무에는 그밖의 중국 유현(儒賢) 94위와 한족의 역사적 인물(儒賢) 18위 등, 총 112위를 봉안하였다. 이밖에도 정록소(正錄所), 식당, 양현고(養賢庫), 도서관 격인 존경각(尊經閣)과 반궁제(泮宮制) 등이 역사의 때를 끼고 서 있다.

옛날 학생(유생)들이 불의를 못참고 울분을 토하던 그 거리는 오늘날 ‘대학로’(大學路)라는 이름으로 명명돼 젊음이 넘쳐 흐르고 있으니 숭교방(崇敎坊)의 그 맥은 오늘에도 이어지고 있음일까!

입력시간 2000/04/2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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