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정치위기, 향후 행보에 정가이목 집중

“유권자는 호랑이와 같아서 물주고 밥주는 사육사도 잠깐 한 눈을 팔면 물어뜯는다”

4·13 총선 이틀 뒤인 4월15일, 총선에서 ‘중상’을 입은 김종필 자민련명예총재는 신당동 자택을 찾은 당직자들에게 ‘호랑이론’을 꺼내 위로했다. 본래 미국의 트루먼 전대통령이 ‘국민을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쓴 말이지만 충청권 유권자들에 대한 섭섭함도 묻어있는 것 것처럼 느껴졌다. JP는 5년전 6·27 지방선거에서 대성공을 거둔 뒤에는 당선자들에게 철저한 ‘텃밭’관리를 주문하며 ‘호랑이론‘을 인용했다.


텃밭서도 버림받아

자민련은 이번에 텃밭으로 여겼던 충청권에서 전체 24석중 절반도 안되는 11석밖에 건지지 못한데다 비례대표까지 합친 전체 의석이 17석에 그쳐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했다. 끝내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할 경우 자민련은 정당으로서 제 구실을 하기가 어렵다.

JP는 자민련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JP는 19일 저녁 충청지역 기자들과 가진 만찬모임에서 “아무리 못해도 최소한 지역구에서 16석은 건져 비례대표까지 합치면 교섭단체는 구성할 줄 알았다”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16대 총선이 끝난 뒤 JP의 얼굴은 잔뜩 굳어있다. 1961년 5·16쿠데타로 정계에 입문한지 40년째를 맞은 JP로서는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5년전 김영삼 정권으로부터 팽(烹)당하거나 1980년대 초 신군부의 숙청대상이 됐을 때도 JP는 이번처럼 절박한 위기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텃밭 유권자들로부터 직접 심판을 받은 것이어서 어느 때보다도 갑갑한 상황이다.

칩거와 침묵, 간접화법 등을 즐기며 오뚝이처럼 되살아났던 JP이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기다림의 정치’로 대처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을 맞았다. 그래서인지 JP의 칩거·잠행은 그리 길지 않았다. JP는 4월14일 새벽 총선 개표가 마무리되자 곧바로 당선자들에게 축하 전화를 걸어 “이거 엉망됐다.

창당하는 기분으로 다시 시작하자”며 당 재건 의지를 밝혔다. 정가 일각에서 거론되는 ‘정계 은퇴’가능성을 일축한 것이다. JP가 16일 바깥 나들이에 나서 당직자들과 함께 골프모임을 가진 것도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이날 저녁 자택 앞에서 기다리는 보도진을 피하기 위해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숙박하는 등 잠행을 했으나 하룻만인 17일 저녁 귀가했다. 그는 19일 낮 이한동총재 등 당선자들과 오찬모임을 갖고 결속을 당부했다. 6일만에 당무에 복귀한 것이다.


‘홀로서기’‘소3당연합’시도

그는 최근 당직자들과의 면담에서 두 가지 메시지를 전했다. 하나는 “의석이 적지만 국민이 우리에게 부여한 임무가 있다.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며 원내교섭단체 구성 의지를 밝힌 것. 그는 또 현재 민주당과의 공조 복원을 검토할 상황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은퇴론’을 거부한 JP는 일단 자민련의 ‘홀로서기’를 시도한다는 입장이다. 자민련이 민주당이나 한나라당과 사안별로 협력하면서 양당 사이에서 조정역을 맡는 제3의 독자노선을 걷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자민련은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기 위해 교섭단체 요건을 20석에서 15석으로 하향 조정하거나 민국당, 한국신당 등과 함께‘소3당연합’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실현 가능성이 적다. JP의 구심력이 약해졌기 때문에 현재의 17석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는 견해가 더 많다.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 자민련 일부 의원을 빼내가려고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민련은 결국 민주당이나 한나라당 중 어느 한쪽과 공조 또는 통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JP는 일단 민주당과의 공조 복원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그는 4월17일 밤 자택을 찾아온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에게 “김대중대통령을 도울 생각이 없다. 김대통령에게 너무 섭섭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실장은“김대통령께서는 공조 복원을 바라고 있다. 공동정권을 함께 세웠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협력하자는 게 김대통령의 뜻”이라고 간곡하게 김대통령의 공조 복원 의사를 전했으나 JP는 더이상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JP가 한나라당과의 협력을 모색할 가능성은 적은 것 같다. 우선 ‘거대 야당’을 만든 한나라당으로선 그리 절박하게 자민련과의 통합이나 공조를 추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4월21일 충청권을 방문, “정당간 공조문제는 사안별로 필요한 시기에 이뤄질 것”이라며 자민련과의 공조 가능성을 열어놓았지만 그리 무게를 실은 얘기는 아니다.

자민련이 한나라당과 공조하거나 합당할 경우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나 이한동 총재가 설 자리가 마땅치 않다는 점도 장애물이다. 또 야권 공조를 할 경우 자민련 일부 당선자가 대열에서 이탈해 여당으로 갈 수도 있다.

물론 1996년 총선이 끝난 뒤 여당이 자민련 의원 빼내가기를 시도하자 DJ와 JP가 손잡기 시작했다는 점을 들어 JP와 이회창 총재가 손잡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이 일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운신의 폭 넓지않은 JP

현재 JP와 자민련 당선자들이 민주당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점만 고려할 때는 자민련의 여당화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하지만 정치 현실상 결국 JP가 시간을 끌면서 민주당과의 공조 카드를 매만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JP는 총선기간 “민주당과의 공조 복원은 없다”고 외치고 다녔기 때문에 당장 민주당과의 재공조 결단을 하기는 어렵다. 그는 한 두달여동안의 장고를 거친 끝에 “국가를 위한다는 차원에서 결정하겠다”고 말하면서 여당과의 협력쪽으로 방향을 틀 개연성이 적지 않다.

만일 단순한 공조단계를 뛰어넘어 민주당·자민련이 통합할 경우에는 JP는 통합 정당의 ‘대표’자리를 맡을 수도 있다. 여당과의 통합은 낙선한 원외인사들에게도 자리를 배려해줄 수 있는 이점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과의 공조 복원에 난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충청권 맹주 자리를 놓고 신경전을 벌여온 JP와 민주당 이인제 전선대위원장간의 교통 정리 문제이다. 물론 두 사람은 경쟁관계를 접고 상호보완을 통해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JP는 일단 집안 단속에 전력투구하면서 요동치는 정국의 추이를 지켜볼 것 같다. 과거처럼 JP가 진로를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점도 JP를 더욱 고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자민련 당선자들의 생각은 제각각이어서 이들의 뜻을 하나로 모으기도 쉽지 않다.

강창희 총장은 “내가 총장으로 있는 한 민주당과의 공조복원은 없다”고 잘라 말했으나, 1997년 대선때 이인제 후보를 밀었던 송광호 당선자는 ‘국가를 위해 민주당과 협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당내 일각에서는 JP가 ‘지역화합’을 명분으로 김대통령, 김영삼 전대통령(YS)와 함께 ‘3김 대연합’을 추진해 정치생명을 연장한 뒤 차기 대선이후 자연스럽게 정계에서 물러나는 수순을 택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나이가 70대 중반에 들어선 JP는 조기 정계 은퇴론은 일축했지만 중장기적으로 명예로운 은퇴를 위한 준비 작업에 서서히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평소 ‘잠들기 전 나머지 몇마일을 더 가야 한다’는 구절이 들어간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를 애송해왔다. JP의 ‘남은 몇마일‘ 행보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김광덕 정치부기자

입력시간 2000/04/30 15:22


김광덕 정치부 kd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