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분야의 독보적 기술력

기업의 얼굴은 재무제표이다. 사업에 성공해 이익이 많이 난 우량기업은 화려한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를 갖게 되지만, 경쟁에 패배한 기업은 적자 투성이의 재무제표가 불가피하다.

이같은 측면에서 볼때 실리콘 소재 분야에서 세계 최강자인 다우코닝은 확실히 ‘특이한 얼굴’의 소유자이다. 다우코닝의 재무제표에는 다른 기업에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항목들이 담겨있다.

이 회사의 1999년말 대차대조표 부채부문에는 ‘이식시술 충당금(Implant Reserves)’이, 1998년 결산 손익계산서 비용부문에는 ‘이식시술 비용(Implant Cost)’이라는 항목이 편성되어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규모. 이식시술 충당금은 한화로 3조5,411억원인 32억1,920만달러, 이식시술 비용은 11억2,410만달러(1조2,365억원)에 달한다.

다우코닝이 특이한 재무제표, 즉 ‘튀는 얼굴’을 갖게 된 까닭은 뭘까. 흔히 ‘유방확대수술 소송’으로 알려진 ‘다우코닝 제11호 소송(Dow Corning's Chapter 11 case)’때문이다.

1998년 11월 미국 연방파산법원은 다우코닝에게 “다우코닝의 ‘실리콘 겔(유방확장제)’로 확대수술을 받은 뒤 피해를 호소하는 17만2,000여명에게 최고 10만달러 최저 2,000달러를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다우코닝이 32억달러가 넘는 금액을 ‘이식시술 충당금’으로 적립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전세계 시장을 단일시장으로 인식

여기까지만 따진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우코닝은 나쁜 기업”이라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성급한 결론이다. 다우코닝은 전세계 시장을 단일시장으로 인식하고 사업을 펼쳐나가는 이른바 ‘다국적 기업’이 가져야 할 덕목을 모두 갖춘 몇 안되는 기업중의 하나이다.

다우코닝은 그 시작부터가 선진적이다. 황경수 한국다우코닝 사장은 “다우코닝은 1943년 다우케미칼과 코닝유리(Corning Glass Works)의 전략적 제휴로 설립된 세계 최초의 ‘벤처기업’”이라고 말했다.

1940년대 세계 화학업계에서는 유리의 내구성과 플라스틱의 가변성을 함께 갖춘 신물질의 필요성이 높아가고 있었는데,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원자번호 14번인 ‘규소(Silicon)’에 산소, 수소 등을 결합시킨 화합물이었다. 사업성 있는 신물질 시장을 놓칠 리 없는 코닝과 다우케미칼은 각각 자신들이 보유한 기초 실리콘 분야 기술과 화학제품의 대량 생산기술을 결합시켜 다우코닝을 설립했다.

사실 일반인들에게 실리콘 화합물은 그 쓰임새가 생소하다. 하지만 내(耐)전기성, 발수성, 내화학성, 불활성 등의 성질을 지닌 실리콘 화합물은 자동차, 항공·우주, 건축자재, 화학 및 소재, 세정(Cleaning), 코팅·플라스틱, 전기, 전자, 식음료, 건강관리, 정보관련 기기, 금형제작, 제지 등 다방면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이와 관련, 황경수 사장은 “우리가 매일 마시는 과즙 음료에도 극히 미량이지만 실리콘 화합물이 사용된다”고 말했다. 황사장에 따르면 실리콘 화합물이 없는 과즘 음료는 거품이 일고 침전물이 생겨, 맛이 변질된다.


현지지향적 인사시스템 구축

1999년 한해동안 1억8,000만달러를 연구개발에 투자한 다우코닝은 전세계에 6,850개의 특허를 보유할 정도로 해당 분야에서 막강한 기술력을 갖고 있다.

그 때문인지 다우코닝은 80억달러로 추정되는 전세계 실리콘 소재시장의 34%가량을 점유하고 있으며 아시아, 유럽 및 미주 지역에 26개의 제조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다우코닝의 본사는 미국 미시간주 미들랜드에 있으며 벨기에 브뤼셀과 일본 도쿄에 지역본부를 두고 있다.

다우코닝은 기술력 뿐만아니라 기업윤리, 인사관리, 정보화 등에서도 경쟁기업에 비해 한발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세계 9,000여 직원들이 뇌물을 주거나,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부도덕한 기업과 거래를 못하도록 규정하는 내용이 담긴 엄격한 ‘기업윤리규정(Code of Business Conduct)’을 운영하고 있으며 여타 다국적 기업과는 달리 진출 국가의 문화를 존중하는 ‘현지 지향적’ 인사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1998년 다우코닝이 구축한 ‘글로벌 정보시스템’은 독보적이다. BPIT(Business Processes and Information Technology)라고도 불리는 이 정보 시스템은 전세계 다우코닝 공장을 통합하는 자재·물류관리는 물론이고, 세계 어느 곳의 고객에게도 원하는 시간에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실현시켰다.

그렇다면 다우코닝은 한국에는 언제 진출했으며 어떤 사업을 벌이고 있을까. 다우코닝은 1980년대초 한국에 개설한 대리점을 통해 제품을 공급하면서 진출했다. 이후 1983년 ㈜럭키와 합작해 ‘럭키-DC 실리콘사’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 때 양측 지분은 50대50 이었다.


글로벌 조직에 완전 편집

이 합작법인은 1992년부터 다우코닝의 글로벌 조직에 편입되기 시작했고, 1995년 양측이 합작관계를 청산하면서 다우코닝이 100% 출자한 ‘한국 다우코닝’이 탄생했다.

따라서 2000년 현재 한국 다우코닝의 시스템과 경영 프로세스는 다우코닝 글로벌 조직에 완전히 편입돼 있는 상태이다.

한국 다우코닝은 지난해 2,360만달러를 수출해 ‘2,000만달러 수출탑’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1999년 매출액과 순이익은 각각 1,400억원과 39억8,900만원에 달한다. 황경수 사장은 “한국 다우코닝은 수출진흥에 노력하는 것과 함께 경영이 어려웠던 IMF 위기때도 230여명의 종업원중 단 한명도 해고하지 않는 등 한국 경제의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실리콘 소재분야의 독보적 기업인 다우코닝에게도 고민이 있다. 우선 해결의 가닥을 잡기는 했지만 향후 10년 동안 32억달러가 지출돼야 하는 ‘제11호 소송’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경영상의 부담이다.

또다른 고민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급격한 기술적 진보이다. 황경수 사장은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실리콘 화합물을 능가하는 새로운 신물질이 다우코닝이 아닌 다른 경쟁업체에 의해 개발되는 것이 2000년 현재 다우코닝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4/30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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