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두 사람의 왕이 있었다. 한 사람은 스스로 먼저 깨달음을 얻고나서 중생을 구제하기로, 또 한사람은 먼저 중생을 깨닫게 하고 나서 자신도 깨닫겠다고 각각 서원(誓願)했다. 전자가 일체지성취여래(一切智成就如來), 후자가 지장보살이다.

이런 불교 설화로 보아 지장보살은 아마도 영원히 부처가 될 수 없는 운명이다. 대신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6도(지옥·아귀·축생·수라·인간·천상)의 중생 구제를 맡는다. ‘지장’은 ‘대지의 자궁’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의 한역(漢譯)이다.

무한한 생산력을 갈무리한 대지처럼 풍부한 잠재력을 가진 권능의 화신이다. 6도에 고루 미치는 지장보살의 원력(願力)에 대한 믿음은 사후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거나 영혼을 천도(遷度)하려는 희원(希願)과 자연스럽게 결합했다. 장례식이나 49재 등 죽음과 관련한 우리나라의 불교 의식에서도 염불의 중심은 지장경이다.

일본의 지장신앙은 폭과 깊이는 이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범신론적 자연관이 지장보살을 이런저런 신으로 만들었고 ‘관할 영역’도 끝없이 넓혀왔다.

지장보살이 지옥의 빠진 영혼의 고통을 대신한다는데서 재난에 빠진 신자를 대신해 주리라는 ‘미가와리 지조’(身代り地藏·대역 지장) 신앙이 일찍이 크게 번졌다. 병자를 보살펴주거나 모내기를 대신해 주는 치병(治病)신, 농경신으로서의 성격도 띠었다.

더욱이 무사들 사이에서는 지장보살이 싸움터에 나타나 날아오는 화살을 낚아 채 목숨을 구해주리라는 믿음이 번졌고 갑옷을 걸치고 오른손에 칼, 왼손에 깃발을 들고 싸움에 임하면 적이 없다는 ‘쇼군지조’(勝軍地藏) 신앙까지 나타났다.

지금도 일본 전국의 마을이나 절, 계곡 어귀에는 이끼낀 지장보살의 부조나 석상이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일본인은 ‘오지조사마’(お地藏樣)라고 높여부르고 대개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인다. 사찰이 납골 묘지의 운영을 거의 독점하는 현상과 관련, 묘역에 8만4,000체의 지장보살상을 두고 신도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절도 있다.

사찰 불단의 지장보살상을 제외하고 야외에 놓인 지장보살상은 앞치마같은 빨간 턱받이를 두르고 있다. 지장보살이 지옥의 악귀의 손아귀에서 아이들을 구한다거나 동자승이나 아기의 모습으로 현신한다는 믿음에서 정착된 습속이다.

심지어 어른 모습을 한 지장보살상에도 침이나 음식물을 흘릴 때에 대비한 턱받이가 걸쳐져 있다. 아예 앙증맞은 아기 모습의 ‘미즈코 지조’(水子地藏)도 나타났다. 도쿄와 인접한 사이타마(埼玉)현 치치부(秩父)군의 시운(紫雲)산 지조지(地藏寺)에는 1만3,000여체의 ‘미즈코 지조’가 놓여있다.

다른 지장 도량에도 수의 차이는 있지만 ‘미즈코 지조’가 늘고 있다. ‘미즈코 지조’는 사시사철 예쁜 옷으로 갈아 입고 과자와 인형 등을 제물로 받는다.

‘미즈코’는 달수를 덜 채운 신생아나 사산된 아이를 뜻했으나 지금은 주로 임신중절 등으로 유산된 아이를 가리키는데 쓰인다.

그러니 ‘미즈코 지조’는 태어나지 못한 태아를 상징하는 아기 보살상이다. 얼핏 아기의 모습으로 지장보살을 연상해온 전통을 이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뿌리깊은 온료(怨靈)신앙에서도 태어나지 않은 생명의 온넨(怨念)은 무시돼 왔다.

위로와 공양의 대상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늘 살았던 존재에서 비롯한 혼령에 한정됐다. 더욱이 일본에서는 7살 이하의 아이는 아직 인간의 아이가 아닌 신의 영역에 속한 아이라는 믿음이 이어져왔다. 아이의 주검을 따로 모아 마을이나 묘지 한쪽의 경계 영역에 묻어 경계의 신인 지장보살에게 모여 들도록 한 것도 그래서였다.

‘미즈코 지조’를 만들어 공양하는 ‘미즈코 공양’은 죄책감이나 아기에 대한 사랑보다는 뒷탈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했다. 태아의 혼을 달램으로써 건강과 행복을 얻으려는 의식체계는 일본 전통의 온료신앙과 구조가 같다.

성윤리가 흐트러지고 임신중절이 만연한 세태의 반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사회적 흐름을 간파, ‘태아의 온넨’이란 개념을 만들어 새로운 종교 상품을 창출한 일본인의 천재적인 상술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입력시간 2000/04/30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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