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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 미국 신경제의 위기

거품우려 증폭, 투자심리 불안

'신경제'가 이상하다. 유럽과 아시아의 새로운 성장 모델로 추앙받으며, 팍스 아메리카나의 무한 확장을 답보해 줄 것 같았던 미 신경제가 주축돌인 닷컴(.com)의 이상과열로 흔들리고 있다.

첨단기술주 투기 광풍이 야기한 인플레이션 적신호, 이들 주가 폭락에 따른 경기 급냉 우려 등은 미 경제를 '침체와 성장이 반복되는' 평범한 수준으로 회귀시킬 조짐이다.

뉴욕 월가의 관심은 5월 16일로 예정된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의 공개시장위원회(FOMC)에 쏠리고 있다. 금리를 얼마나 올리느냐에 따라 증시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0.25%포인트로부터 0.75%포인트 이상까지 제법 그럴듯한 논리를 갖춘 예상이 줄을 잇고 있으나 "FRB가 이번에 금리를 올릴 것이다"라는 점 외에는 추측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FRB의자은 주가가 폭락하는 와중에도 "물가 상승의 징후들이 곳곳에서 보인다"며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근리와 주가는 과연 견원지간인가? 통상은 그래왔다. 금리가 오르면 기업들의 자금조달 비용이 커져 순익이 감소하고 주주에 대한 배당도 줄어들게 된다. 또 시중 여유자금이 고금리를 쫓아 은행이나 채권 등에 몰린다. 당연히 주가는 내려가는 게 맞다. 반대로 금리가 낮아지면 얼마 안되는 이자를 받기보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주식투자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늘어 주가가 올라간다.

하지만 '점진주의자' 그린스펀 의장이 지난해 6월 이후 무려 5차례 0.25%포인트씩 1.25%포인트를 올리는 동안 주가는 계속 올랐다. 그가 "첨단주 투기열풍에 실질적으로 기름을 부은 장본인"이라는 비난을 살만큼 금리와 주가는 정(正)의 관계를 보였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호들갑인가?


금리인상등에 우려의 목소리

최근 주가 폭락의 후유증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2월 이후 매달 사상 최장기 호황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미 경제는 마침내 한계점에 도달한 듯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경제지표의 핵심인 소비자물가지구(CPI)는 5년래 최고치에 달했고, 신규 실업수당 신청건수는 27년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해 임금상승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상태다. 세계 경제가 회복되면서 수입 원자재 가격도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있다.

1998년 2.4% 하락했던 수입물가는 지난해 1.0%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금리인상 및 미국 경제에 대한 우려감이 과거보다 높아졌다는 게 불안의 진원지다.

부쩍 미국 '신경제'에 대한 찬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도 이를 반증하고 있다.

이런 징후들이 현실화하면 "높은 생산성 향상으로 미국 경제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고 고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신경제 체제에 들어섰다"는 주장에 종지부를 찍게된다.

인플레이션에서 해방되지 못한 미국 경제는 확장(성장)과 수축(침체)을 반복하는 경기사이클에 따라 언젠가는 침체기를 겪을 수 밖에 없다. 문제는 별탈없이 연(軟)착류할 수 있는냐, 아니냐다.

그러나 경기 과열의 끝은 항상 대침체였다. 연착륙에 실패한 것이다. 예컨데 1920년대도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이 계속됐다. 지금처럼 펀더멘털이 건전하다고 강조하는 순간 1929년 10월의 '검은 목요일'이 닥쳤고 이후 대공황에 접어들었다.

당시 과도한 긴축이라는 잘못된 처방이 사태를 악화시켰다. '전지전능한' 그린스펀 FRB의장이 버티고 있는 지금에는 그런 비극은 되출이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있다.

저명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MIT대 교수도 최근 주가폭락의 파장과 관련, "1929년 때처럼 어리석게 정책을 결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 때와 비교할 필요는 없다"고 잘라말했다.

이어 여러 가지 다라진 경제여건상 주식 폭락이 장기간의 불황으로 이어지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은 경쟁력보고서를 통해 "주가 급락이 신경제의 기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국가로 선정했다.


FRB내에서도 금리인상 필요성 제기

하지만 FRB내에서조차 경(硬)착륙을 막기 위해 과감한 금리인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미 경제가 건전하지만은 않다.

우선은 과도한 빚이 문제다. 미국의 개인 부채는 지난 2월말로 17조 5,000억다러에 육박했다. 2월의 경우 1년전에 비해 6.5%에 증가했다.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은 이보다 2%포인트 낮았다. 경제성장 속도 이상으로 빚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개인들은 가처분 소득중 13.5%를 원리금 상환에 쓰고 있다.

가처분 소득에 대한 원리금 상환액 비율은 1980년대 중반의 최고치에 근접한 상황이다. 또 금융자산의 54%를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다. 주가의 변동에 상당히 취약한 셈이다.

기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스탠더드 앤드푸어스(S&P)500 지수에 포함된 기업들의 부채비율은 지난 10년간 84%에서 116%로 높아졌다. 이들은 신경제에 대비하느라 연구개발(R&D) 및 기업인수 등에 막대한 비용을 썼고, 기술 혁신을 위해 앞으로도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주가 폭락이나 경기침체시 수익이 감소하고, 원리금 상환부담은 커져 심각한 자금난에 봉착할 수 있다.

FRB의 정책실패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제 구조 전반이 과거 어느때보다 변동성이 크고 불확실성이높기 때문이다. FRB는 성장세가 둔화하고 주가가 하락하는 것을 일정부분 용인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달러화 약세와 수입물가 급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고, 경기가 둔화하고 있는데도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금리를 인상, 경기 둔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탈자금 국제금융시장 교란 가능

사상 최대 규모로 늘어난 경상수지 적자도 문제다. 지난해 3,000억 달러를 넘어선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유가 급등으로 올들어서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적자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규모로 늘어나는 외국인 자본 덕분에 미국은 대외 균형을 이루며 성장을 지속해온 것이다.

그러나 미국 경제가 침체할 움직임을 보이면 이런 자금은 순식간에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고, 이는 미 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의 동반 침체를 부른다. 미국의 지난해 자본 순유입 규모는 3,782억달러.

이를 통해 미국은 개발도상국 등의 수출품을 사들이고 과감한 투자로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이 됐던 것이다.

나아가 미국을 빠져나간 자금은 국제 금융시장을 교란시킬 수도 있다. 선진 7개국(G7)을 비롯, 국제통화기금(IMF)마저 미국의 연착륙을 주문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불행을 예고하는 경기 과열의 징후는 4월 27일 발표되는 1.4분기 경제성장률(GDP 증가육), 그리고 FOMC회의 직전 나오는 4월중 소비자물가지수 등에서 보다 분명해질 전망이다. 신호가 '과열'로 낙인될 경우 큰 폭의 금리인상은 불가피하다. 경착륙도 어쩌면 피할 수 없는지 모른다.

정희경 국제부 기자 hkjung@hk.co.kr

입력시간 2000/05/25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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