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뉴스포탈 한국일보
일간스포츠
서울경제
KoreaTimes
인텔 OK Cashbag
주간한국  
www.hk.co.kr  


 
주간한국 홈
구독신청
독자 한마디
편집실에서


   벤처 스타열전
   인터넷 세상
   신동의보감
   땅이름과 역사

[인터뷰] 리처드 크리스텐슨 주한 미 부대사

"좋은 이웃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리처드 크리스텐슨 주한 미국 부대사(55). 한국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이 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인 반면 평범한 한국인에게도 친근하게 와닿는 몇 안되는 미국인 중 한 명이다.

그는 1996년 8월 한국에 부임한 이후 IMf 외환위기와 대북관계 등 한반도 주변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웠던 시기에 주한 미대사관 부대사를 지내면서 한미 관계를 돈독히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까지 능청스러울 정도로 능숙하게 구사하는 그는 각종 현안이 있을 때마다 언론에 나가 양국의 이해를 넓히는데 노력했고 대학생과 토론을 벌이기도 하는 등 한국민과 접촉을 꺼리지 않았다. 7월말이면 미국으로 돌아가는 크리스텐슨 부대사를 만났다.


한국생활에 대한 소감이 어떻습니까.

"서운합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뒤 꼭 11년을 한국에서 보냈습니다. 그동안 친구도 많이 생겼는데 떠나게 되니까 너무 섭섭합니다."


재임주에 가장 힘들었던 일은 뭡니까.

"제가 천성이 워낙 낙천적이어서 그런지 별로 힘든 기억은 없었더요. 그러나 노근리 사건이나 한미행정협정 등 사안이 있을 때마다 한국민이 미국에 대해 회의적으로 바라봐 섭섭했습니다. 특히 음모론이 나올 때는 착찹합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보아도 감탄할 정도로 그럴 듯한 음모론이 나돌기도 합니다."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 SOFA)이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키는 가장 큰 요인 아닐까요.

"분명히 말하지만 문제가 있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인정합니다. 조만간 한미간에 협상이 벌어질 겁니다. 그러나 오해하는 부분도 많아요. 지난해 미군이 저지른 강력 범죄는 22건이었는데 모두 한국측이 재판권을 행사했습니다. 나머지는 교통 사고 등 경미한 범죄였기 때문에 한국측이 재판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뿐입니다.

흔히 독일과 비교를 하는데 통계방식의 차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독일에서는 강력 범죄만 통계에 넣고 사소한 범죄는 아예 집계도 안합니다. 그래서 독일은 재판권 행사 비율이 높게 나오지만 한국의 경우 교통사고까지 포함해서 그중에 강력 범죄에 대한 재판권 행사를 따지니까 당연히 비율이 낮게 나오는 거죠.

그러나 한국에서도 강력 범죄에 대해서는 모두 한국측이 사법권을 행사합니다. 한국 법무부에 확인해 보세요."


기소전에는 미군피의자의 신병을 넘겨 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 아닙니까.

"맞습니다. 인정하고 있습니다. 아직 협상이 시작되지 않아 분명한 말은 할 수 없지만.... 아무튼 이번 협상에서 이 부분에서 상당히 진전이 있을 거승로 기대합니다. 미국측도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미군기지에 대한 임대료 징수와 환경오염 개선책도 시급하다는 지적인데.

"미군기지 임대료는 세계 어디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한국의 민간단체들이 제기하 는 환경문제에 대해 경청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환경에 대해 그 어느 나라보다 엄격 한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한 미군기지의 환경문제는 현재 소위원회가 구성돼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논의하면 되지 구태여 협정 개정까지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한미행정협정이 다른 나라에 비해 현격이 불리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독일 일본과 비교해 방위비 분담금은 한국이 훨씬 적다는 점도 감안해야 합니다."


주차위반 과태료를 물지 않아 용산구청과 마찰을 빚기도 했습니다.

"주한미군의 방침을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사자에게 과태료를 납부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용산구청의 요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도 이번 주에 종로구청에 가서 과태료를 내야 합니다.

주차위반으로 두 번 걸렸거든요.(웃음) 우리는 한국의 중앙정부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도 좋은 이웃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크리스텐슨 부대사는 4년전 대사관 직원에게서 700달러를 주고 산 11년 된 프라이드를 타고 다닌다. 구두쇠라서가 아니라 차가 작으면서도 단단하고 좁은 골목길도 잘 빠져나간다는 이유에서다. 서해교전이 터졌을 때는 외교안보수석을 만나기 위해 이 차를 몰고 청와대에 갔다가 경호원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단다.)


비자발급 절차는 개선됐다고 생각하십니까.

"한번 물어볼께요. 비이민비자 신청자중 거부율이 얼마나 될거 같아요?(기자가 "20~30%쯤 되지 않냐"고 대답하자 그는 "땡"이라며 익살스럽게 웃엇다.) 틀렸습니다.

작년에 비이민비자 기각율은 9%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비자문제가 골치 아프긴 한데 많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비자담당 직원에게 친절을 강조했고 직원들의 태도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미국 대사관에 들어올 때는 고압적일거라는 선입견을 갖기만 나갈 때는 다릅니다. 미대사관에서 '출구조사'해보세요. 제 예측 틀리지 않을 겁니다."(웃음)


한미관계도 질적인 변화가 있는데.

"외교라는 것은 제로섬게임이 아닙니다. 양국의 이해가 공통되는 부분을 늘리는 것이지요. 한국이 잘 되면 미국에게도 이익입니다. 서로 견해가 다를 때두 있지만 한국과 미국은 오랜 친구라는 기본적인 인식이 돼 있기 때문에 해결책을 찾는데 그다지 어려움은 없습니다. 통상문제도 그래요. 단기적으로는 마찰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양측에 모두 도움이 됩니다."


보람 있었던 일은 없습니까.

"제가 부대사로 있는 동안 한국이 외환 위기를 겪었습니다. 아주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우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당분간 시장개방 이야기는 하지 말자. 지금은 한국 여제가 일단 회생해야 하고 우리는 그것을 도와주어야 한다'고요.

그래서 1997년 12월부터 이듬해 초까지 시장개방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세계가 놀랄 정도로 빠르게 외환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두 번째로 대북한 관계인데요, 그 어느 정권때보다 한국과 미국은 긴밀하고 생산적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이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한국의 역대정권은 미국이 대북관계에서 앞서나가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아마도 한국이 그동안 강대국에 의해 휘둘려왔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의 대북 외교방향을 지지했습니다.

이제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김대통령이 미국의 대북외교관계에 여유를 준 것입니다. 우리는 그 여유를 좋은 방향으로 활용할 겁니다."


시간 남으면 어떻게 보냈습니까.

"저는 '강남파'가 아니라 '강북파'였습니다. 어쩐지 강남은 저한테 맞지 것 같아요. 틈나면 전통한옥이 많이 있는 거리나 재래식 시장을 돌아다녔습니다. 재래식 시장은 너무 너무 좋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저는 중부시장이나 영천시장 같은 데를 갑니다. 그러면 한국의 기가 느껴지고 기분이 금방 좋아집니다. 제가 한국에서 맛있는 식당 찾는 비결 하나 알려줄까요. 꾸질꾸질한 식당에 들어가면 됩니다. 거기서 찌개나 전골을 시켜서 먹으면 성공확율이 높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가면 무슨 업무를 하게 됩니까.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만 제 희망은 한 1년간 외교 관련 연구소에서 공부하는 겁니다. 제가 워낙 무식해서."(웃음)


다음번에는 주한 미국대사로 돌아오는거 아닙니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주한 미국대사는 정치적으로 임명됩니다. 1967년도에 내가 처음 한국땅을 밟은 데가 목포였는데 다시 기회가 있으면 목포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할 계획도 있습니다. 윤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때 벌써 미래의 한국 대통령이 나올지역을 알고 찾아갔으니 대단한 예견력입니다.

"그것도 음모론인가."(웃음)


한국사람 다 된 미국사람

"떠나면서 한국민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없냐."고 물었더니 크리스텐슨 부대사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민은 정말로 위대한 민족입니다. 특히 한국의 젊은이들은 인상적입니다. '의리 빼면 시체'라든지 효도와 같은 한국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자유로운 현대적 가치관을 동시에 갖추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을 보면 너무 초롱초롱 빛납니다. 나는 그들이 앞으로 한국을 어떻게 이끌고 갈지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크리스텐슨 부대사는 인터뷰가 끝난 뒤 사무실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과 1994년 주오키나와 총영사 시절 카터 전대통령을 수행해 북한 김일성 주석, 송호령 아태평화위 부위원장, 강석주 외무성제1부상 등과 회담했을 때 찍은 사진 등을 일일이 설명해주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이 스물 두 살때 목포항 부근에서 찍은 사진.(그는 위치까지 정활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영화배우를 뺨치는 잘생긴 얼굴이어서 "지금의 모습과 너무 다르다"고 말했더니 크리 스텐슨 부대사는 "사람들이 '삼청교육대라도 갔다 왔냐'고 농담을 합니다."며 웃었다.

기자를 배웅하면서 "내가 미국으로 돌아가기전에 소주나 한잔 하자"고 제의하는 크리스텐슨 부대사를 보면서 도대체 이 사람이 미국사람인지 한국사람인지 혼동될 정도였다.


1967년 시작된 한국과의 인연

크리스텐슨 부대사가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완전히 우연이었다. 고교시절 존 F 케네디 대통령에 열광해 그가 창설한 평화봉사단에 가입했다.

해외 봉사활동 지역으로 인도를 신청했다가 담당자의 추천에 따라 1967년 전혀 알지도 못한 한국땅을 찾으면서 한국과의 긴 인연이 시작됐다. 목포에서 영어 교사로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전라도 사투리를 익혔고 그때 가르친 제자들과는 아직도 만나고 있다.

1973년 외교관 시험에 합격한 뒤에도 한국을 첫 부임지고 택했다. 이때 이화여대생이었던 정화영씨를 만나 결혼했으며 지금은 버지니아 주립대 4학년인 딸 제니퍼와 서울 외국인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 앤드류 등 1남1녀를 두었다.

주한미대사관 정치군사담당 1등 서기관과 국무부 한국과 부과장 등 경력이 말해주듯 크리스텐슨 부대사는 미 국무부내에서 한국을 가장 잘 알고 사랑하는 공무원으로 꼽힌다. 전라도 사투리 뿐만 아니라 고사성어나 속담실력도 웬만한 한국사람보다 낫다는 평이다.

송용회 주간한국부 기자 songyh@hk.co.kr

입력시간 2000/05/26 15:28



 

◀ 이전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