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 들어 네웨이핑의 대추격전은 처절하게 전개되었지만 초반에 그르친 판세를 뒤집기는 역부족이었다. 3집승. 우리식으로 계산하면 1집반승. 실수를 운운하기엔 실로 작은 차이임에 틀림없다. 그만큼 피차 완벽에 가까운 명국을 만들었다고 보면 틀림없다.

어쨌든 1국을 승리로 장식한 한국 선수단은 모처럼 긴장된 일상에서 해방되어 호텔내 중국식당으로 향했다. 항주의 특산물인 약주 ‘샤오싱주’를 들면서 마치 이 한판으로 우승을 차지한 것 마냥 건배에 건배를 이었다. “바둑황제를 위하여!”

사람의 심리는 요사한 것이다. 한판을 이기면 천하가 다 내 것인 것 같고 한판을 지면 없던 천하까지 다 빼앗긴 것으로 여긴다. 물론 이긴 쪽에서 앞으로 질 것을 염려하여 일부러 덜 즐거울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첫판 승리가 마치 우승인 양 한국선수단은 즐거워했다.

그랬다. 5번기의 첫판이지만 그것이 어딘가. 만약 다음 판마저 기세로 이겨버린다면 확률은 85퍼센트에 달한다. 그래서 조훈현도 ‘부어라 마셔라’는 아니었지만 가능한 한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이럴 땐 정말이지 술을 한 모금도 못하는 자신이 적잖이 안타까웠다.

같은 시각, 건곤일척의 승부에서 피해자가 된 네웨이핑은 몹시 큰 충격을 받았다. 3일 후엔 제2국이 기다리고 있었으나 이틀간의 시간은 네웨이핑에겐 휴식의 시간이 아니라 두문불출의 속앓이 시간이었다. 승부는 야박하다고 하질 않았나. 조훈현의 축배가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네웨이핑의 가슴은 갈갈이 찢겨가고 있었다.

1989년 4월28일 제2국이 같은 장소에서 벌어진다. 비장한 선수 조훈현만 제외하고 선수단은 발이 땅에 닿지 않을 만큼 흥에 겨운 분위기였다. 계산이 쉬웠기 때문이다. 한판만 잡아준다면 일찌감치 2:0. 8부 능선까지 다다른 게 아닌가.

대국실 앞에선 정겹다고 할까 처절하다고 할까, 묘한 광경도 벌어진다. 아내와 함께 대국장에 도착한 조훈현은 아내의 코치를 열심히 받고 있었다. 아내 정미화는 남편의 옷매무새를 챙겨주기도 하고 양볼을 손바닥으로 서너차례 두드리는 등 마치 ‘칩세컨이 복서의 사기를 북돋워주는’그런 모습이 벌어졌다.

어찌 네웨이핑의 아내 공상밍이라고 가만히 있을 손가. 1국 때 조훈현의 아내가 사찰을 찾아 불공을 드린 것으로 알려지자 공상밍도 2국 땐 사찰을 찾아가 장시간 부처님의 은덕을 빌었다고 했다.

공상밍은 당시 중국의 프로 8단으로 남편과 함께 세계최강의 부부기사로 군림하고 있었다. 현재는 루이나이웨이가 남편 장주주와 더불어 세계최강 부부기사가 되어있지만 당시엔 네웨이핑과 공상밍이 도합 17단으로 세계최강부부였다. 그러나 현재 그들은 이혼상태다.

제2국은 쉽지 않았다. 흑을 든 까닭에 덤 문제가 아무래도 부담이 되어 초반부터 좀 액션이 커지는 건 천하의 조훈현이라도 어쩔 수 없었다. 초반부터 행마가 꼬이기 시작한다. 검토실에선 그래도 희망적인 전망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은근히 부담스런 장면이 이어지자 “어련히 조국수가 알아서 두겠어, 기다려 보자구” 라는 식의 막연한 낙관론만 나돌았다.

조훈현의 손길이 ‘제비’ 이상으로 빠르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이해하려고 했다. ‘반달곰’ 네웨이핑이 워낙 움직이지 않는 까닭에 가드를 내려서 덤비게 할 요량이었다.

조훈현이 재빨리 움직이다 보면 ‘만만디’ 네위이핑도 따라 움직일 것이고 그것은 네웨이핑에게 허점이 생긴다는 의미다. 즉, 내가 먼저 가드를 내릴 테니 먼저 때려보라는 얘기다. 물론 위험한 작전이었다. <계속>


<뉴스와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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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 벌어진 제2회 정맥배 아마명인전 결승에서 샤샤는 아마정상 홍맑은샘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으나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성적을 올려 프로입단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 전국아마대회 준우승이라면 아마7단급의 실력을 갖추어야 가능하며 곧 프로에 맞먹는 실력으로 이해하면 된다.

입력시간 2000/05/0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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