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밤 늦게 퇴근해 집에서 습관처럼 컴퓨터앞에 앉고 나서 깜짝 놀랐다. 컴퓨터 바탕화면이 온통 일본 애니메이션 ‘포켓 몬스터’의 인기 캐릭터중의 하나인 ‘피가츄’로 도배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사이 부쩍 자기만의 컴퓨터를 사달라며 떼쓰고 있는 초등학교 1학년 맏아들의 작품이었다.

몇달전부터 일주일에 한번씩 오는 선생님을 통해 집에서 컴퓨터 공부를 하고 있는 녀석은 이제 어느 정도 자신이 붙었는지 감히 아빠의 컴퓨터에 이같은 ‘과감한’ 작품을 남기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내가 좋아해 설치했던 바탕화면 대신 녀석의 ‘작품’이 유치하고 정신없게 요란을 떨고 있는 것을 보고 순간 당황했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 기분이 좋아졌다. 아들의 행동은 적어도 다음의 몇가지 상황을 만족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인터넷에 접속했다는 사실이다. 초고속망에 가입한 상태에서 항상 컴퓨터를 켜놓고 있기 때문에 해당 아이콘만 클릭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지만 그래도 어린 놈이 ‘겁도없이’ 인터넷 접속을 시도했다는 점이 기분이 좋았다.

또한 스스로 웹상에서 ‘북마크’를 통해 포털사이트를 찾아가 자신이 원하는 사이트를 검색했다는 점이 대견했다. 좋아하는 그림을 다운받아 스스로 바탕화면으로 설치한 것은 자기 엄마보다 10배 정도 나은 컴퓨터 실력을 과시한 것이다.

모두 컴퓨터 선생님한테 배워서 가능한 것이었겠지만 분명한 것은 아들이 최근 컴퓨터와 인터넷에 매우 호감을 갖고 친숙해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엊그제는 아들 녀석이 왠지 풀이 죽어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혼자서 신나게 컴퓨터를 쓰고 있는데 갑자기 고장난 듯이 컴퓨터가 꼼짝도 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당황한 녀석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빠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걱정스럽게 기어드는 목소리로 “컴퓨터를 고장냈다”고 고백했다.

아이가 너무 겁을 먹고 있는 것같아 나는 “걱정하지마, 큰 일 아니니까. 아빠가 할 때도 가끔 그래. 컴퓨터가 말을 안들으면 그냥 껐다 켜면 돼”라고 말해주며 안심시켰다. 그제서야 아들은 생기를 되찾으며 컴퓨터 앞에 다시 앉았다. 아들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장래희망을 묻자 컴퓨터 전문가가 되겠다고 했다고 한다.

좋던 싫던 앞으로 도래하는 인터넷 시대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어린이다. 아이들에게 인터넷은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들이 인터넷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어린이의 연령을 끌어내리는 경쟁을 펼치고 있는 것은 미래의 주인공에 대한 배려의 뜻도 담겨 있다.

아이들 컴퓨터 교육에 관심이 있어 유심히 관찰한 결과 어린이가 컴퓨터와 인터넷에 친숙하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흥미를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았다.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컴퓨터 교육을 시키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도 재미와 나름대로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것 같다.

주위의 컴퓨터 전문가들에게 어떻게 컴퓨터와 친해졌냐고 묻자 그들은 대부분 “게임을 통해서”라고 대답했다.

인터넷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을 통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면 어떨까. 아이들은 한번 재미가 들면 그다음 부터는 가만히 놓아둬도 알아서 인터넷을 체득할 것이다.

인터넷 속에 그들이 좋아하는 ‘피카추’가 있다면, 또 공룡 등 흥미진진한 관심의 대상이 있다는 것을 알면 인터넷은 금방 아이들의 친구가 될 수 있다. 인터넷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과 컴퓨터와 인터넷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참고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사이트는 다음과 같다. 밀림탐험과 곤충탐험, 정글탐험, 물속탐험 등 과학적 지식을 재미있는 그림과 함께 소개하는 키드 익스플로러(www.kidexplorer.co.kr), 가상 공룡박물관 VR Dino(www.vrdino.co.kr), 소년한국일보(www.hk.co.kr/kid/kid.htm), 청소년들의 고민을 온라인으로 상담해주는 한국청소년 상담원(www.kyci.or.kr) 등이다.

김철훈 hk뉴스포탈 컨텐츠부장

입력시간 2000/05/01 15:51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