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사이언스 카페에서 무슨 용병설인가? 뜻밖의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현대 과학기술의 대부분이 군사적 목적에서 시작되고 발전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첨단과학(하이테크)은 용병이다.

이러한 출생의 근원 때문에 과학기술은 인류의 사회·문화에 그토록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는지도 모른다. 개인의 차원에서건 국가의 차원에서건 보다 강한 무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어쩌면 약육강식의 자연섭리를 모범적으로 수행하는 인간의 본능적 모습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왠지 꺼림칙함이 없지않다.

1차 및 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 군비경쟁의 과정에서 축적된 군사과학기술이 점차 민간산업화하면서 레이더 원자력 정보통신 인터넷 컴퓨터 위성통신 우주항공 등 소위 21세기 프론티어 분야의 씨앗이 됐다.

실제적인 예를 보자. 과학자 앨런 튜링은 2차대전 당시 암호사령부에 배속되어 1943년 12월 ‘콜로서스’라는, 암호만을 전문적으로 깨는 세계 최초의 연산 컴퓨터를 만든다(세계 최초의 디지털 컴퓨터로 잘못 알려진 본 노이만의 ‘애니악’보다 2년 앞섰다).

1944년 봄 영국은 ‘콜로서스’를 이용해 독일군의 교신 암호를 푸는데 성공, 6월6일 2차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끈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감행했다. 전쟁이 컴퓨터의 발달을 가속화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레이저추적 무기가 처음 발달된 것도 베트남 전쟁 때였다. 걸프전에서 과학무기의 가공할 위력을 보인 ‘스마트 폭탄’. 전쟁기간에 투여된 전체 폭탄의 겨우 7%에 불과한 스마트 폭탄이 80%의 전략적 목표를 폭파시키는 위력을 나타낸 것이다. 막대한 국방예산이 과학에 투여된 결과다.

그런데 첨단사회로 접어들면서 전쟁의 양상도 달라지고 있다. 첨단과학이 보편화하면서 국경도 이념도 없는 무작위적 테러와 전쟁의 무기로 인터넷과 나노과학 등 첨단과학이 새로운 용병으로 등장하고 있다.

야후 등 세계적 웹사이트를 연쇄공격하여 쑥대밭을 만든 해커들, 컴퓨터 시스템을 통째로 파괴해버릴 수 있는 ‘웜 바이러스’를 유포시킨 중학생의 철부지 행동, 중국과 대만의 웹사이트 상호공격, 대통령선거를 앞둔 페루 중앙선관위에 대한 해커 공격 등은 사이버 전쟁과 테러의 생생한 실례들이다.

사이버전의 대표적 무기는 컴퓨터 바이러스. 최근에는 전자기파를 발생시켜 수백대의 컴퓨터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엠프(EMP)폭탄 등 하드웨어를 공격하는 무기도 개발초기 단계에 있다. 영국의 군사전문잡지 제인스디펜스 위클리의 폴 비버는“인명피해가 적다는 장점 때문에 사이버 무기의 개발은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이라크 쿠바 이란 등 10여개 국가들이 상당한 수준의 사이버 전쟁 능력을 개발중이다. 특히 중국은 인민해방군내에 정보전쟁을 전담할 제4의 기구 창설을 검토중이며 미국도 오는 10월 콜로라도주 우주사령부의 사이버전쟁 프로그램을 강화할 계획이다. 일본 방위청도 사이버 공격에 대비, 2000년에 13억엔을 책정하고 공격과 방어 양면에서 연구를 추진하기로 했다.

최근 우리나라 국방부도 사이버전쟁에 대비하여 사이버전문 병사의 모집광고를 낸 것은 시대의 흐름을 잘 반영한 것이다. 개인의 호기심 차원을 벗어나 막대한 인력과 예산으로 개발될 사이버 공격 및 방어무기는 멀지 않은 미래에 또한차례 인류사회를 전쟁에 상응하는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을 것이다.

또한 21세기에는 본래 의학용으로 구상되던 극소형의 로봇이 군사적으로 이용될 전망이다. 인공지능을 갖춘 코만도 전사인형이 인간을 공격하는 영화 ‘스몰솔저’가 현실화한다는 말이다. 미 국방부 산하 첨단방위연구소(DARPA)는 길이 15cm의 초미니 무인첩보기를 개발중이며 곤충을 포함한 동물의 초능력을 무기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21세기에도 과학기술은 인류의 궁극적인 행복과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이면에 전쟁을 위한 파괴적 용병의 기질을 함께 갖추고 있는 것이다. 예기치 않은 재앙의 예방을 위해서도 인류가 하나된 마음으로 하이테크의 칼끝을 주시하여야 할 일이다.

입력시간 2000/05/03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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