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상으로 읽는 삼국지(이학사), 매니아를 위한 삼국지(청양) ‘소설은 허구이며, 삼국지는 소설’이라는 사실을 실감시키는 책이 나왔다. 조조, 유비, 제갈공명 등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인물의 실제 모습과 삼국시대의 역사적 진실을 중국 사상사의 맥락에서 새롭게 조명한 두 권의 책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나왔다.

‘사상으로 읽는 삼국지’(이학사)에서 저자인 야마구치 히사카즈(山口久和)는 유학이 관리가 되는 지름길인, 처세의 학문으로 변해버린 후한(後漢) 시대의 사상적 흐름을 토대로 삼국지를 재해석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조조는 기존의 유교적 질서에 철저하게 반항한 개혁가였다. 조조는 당대에 거의 필적할 자가 없을 정도로 지식과 재주가 뛰어났지만 환관의 손자라는 신분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멸시를 받았다. 따라서 조조는 어려서부터 유학이 지배하는 후한 사회에 대한 깊은 불만과 반항을 갖게 되었다.

조조의 사고와 행동을 규율하고 있는 것은 냉철한 합리주의에 기초한 법가적 이념이었다. 위, 오, 촉의 쟁패를 다룬 정통 사서인 ‘삼국지’를 저술한 진수(陳壽)는 조조에 대해 “신불해와 상앙의 법술을 구사했다”며 평가하고 있다.

결국 삼국시대의 시대상황을 통해 바라볼 경우 조조는 외척과 환관의 발호와 동탁의 폭정으로 이어지는 후한 말기의 혼란을 종결시키고, 중원에 조그마한 안녕을 가져온 인물인 셈이다.

반면 저자는 유비를 후한 200년의 비뚤어진 유교가 낳은 ‘최대의 위선자’라고 정의한다. 유비는 학문도 얕고 별 재주도 없었지만 언제나 인의를 말하고 한나라 왕실부흥의 대의를 외쳤다.

그러나 유비의 실제 행적은 이와 다르며 그가 형주를 차지하고 익주를 탈취하는 과정은 위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명말 청초의 대학자인 왕부지는 “형주를 영유하기까지 유비는 정견도 없이 여러 장수 사이를 전전할 뿐이었고 처음부터 한나라 왕실에 원수가 되는 동탁을 무찌를 자세도 갖고 있지 않았다.

영토의 확장에 얽매여 한나라 왕실부흥 따위는 염두에도 없었다. 조조가 위왕을 칭하자 자신도 멋대로 ‘한중왕’이라 부르고, 조비가 헌제를 폐하고 제호를 침창하자마자 늦었다는 듯이 자신도 제위에 올랐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유비에게 특이한 인간적인 매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협객의 무리와 의협적 추종자가 항상 유비를 둘러싸고 있었다.

제갈공명이나 관우, 장비가 대표적이다. 조조에 비해 지모나 재략이 걸출하지 못했던 유비가 후한 말기 혼란기에 천하쟁탈의 싸움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인간적 매력을 효과적으로 연출하고 그 모자란 부분을 보완한 이들 ‘고굉(股肱)의 신하’가 있었기 때문이다.

‘매니아를 위한 삼국지’(청양)는 소설 ‘삼국지연의’에 실려있지 않은 구전문학을 정리한 책이다. 따라서 이 책에는 ‘삼국지연의’에서는 보지 못하던 여러 영웅의 다른 면모를 볼 수가 있다.

유비가 늘 염체없이 관우와 장비에게 술을 얻어먹었다는 것, 장비가 단순하고 무식하지만은 않았으며 제갈공명을 상대로 ‘지혜대결’을 벌였다는 것, 관우가 유비의 부인과 불륜의 관계를 가졌다는 것 등 다소 황당한 300여편의 뒷얘기가 담겨 있다. 굳이 내용의 진위를 따지지만 않는다면 재미있게 읽어볼 만한 책이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5/03 19:07


조철환·주간한국부 ch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