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 제터마을(祭基洞), 즉 옛날 농사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제기동의 선농단 서쪽에 보제원(普濟院)이 있었다. 그 옛날 서울에는 4개의 ‘원’(院)이 있었는데 이 보제원도 동활원, 서활원, 홍제원과 같이 누(樓)가 딸린 집이었다고 한다.

우리 땅이름에는 더러 ‘원’(院)자가 붙은 지명이 있다. 이를테면 서울만 하더라도 보제원을 비롯, 홍제원 이태원 계생원 잠원 장수원 일원 등이 있었다. 또 나라안 곳곳에 퇴계원 인덕원 광혜원 사리원 조치원 장수원 신례원 등이 있었다.

이와 같이 ‘원’(院)자가 들어간 지명은 대개가 옛날 ‘나라에서 경영하는 여각(旅閣)’이 있어 길손이 머물고 가던 숙박소였거나, 아니면 역(驛), 역참(驛站)이 있었던지 아니면 나라에서 세운 구휼기관이 있던 곳이다.

특히 제기동에 자리했던 보제원은 조선시대의 구휼기관으로서 백성들의 건강을 보살피던, 오늘날의 보건소와 비슷한 곳이었다. 그래서 길손의 건강과 빈민자의 질병을 치료해주었는가 하면 매년 3월3일과 9월9일에는 나라에 공훈이 많은 공로자와 늙은이, 또 중신까지 불러 진맥도 하고 건강을 돌봐주었던 것이다.

그 보제원이 자리했던 곳의 주변 일대에 언제부터인가 한약재를 취급하는 약재상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상가를 이루더니, 오늘날은 제기동과 용두동 일대 23만5,000평방미터에 한의원 3백24개소, 약국 3백12개소, 한약 도매업체 57개소, 한약 수출업체 99개 등 한약과 한방 관련업체 8백99개소가 운집해 옛 보제원의 상징성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약령시장’하면 수년전까지만 해도 대구 약령시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경동 약령시장이 동양권을 압도하고 있을 정도다. 때 맞춰 경동 약령시장이 지난 1995년 10월25일을 기해 세계 최대의 한약재 전문시장으로 도약하기 위한 ‘경동 약령시 선포식’을 갖고 시장의 현대화를 추진, 새로운 면모로 탈바꿈했다.

그 내용을 보면 경동 한약상가를 세계적인 명소로 키우고 홍보하기 위해 중국 최대의 약령시장인 하북성 안국시의 동방약성과의 정보교류와 자매결연, ‘한약재 전시회및 약효 설명회’, ‘약재를 이용한 음료 시음회’, ‘한약썰기 경진대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

그밖에도 조선조 때의 구휼기관이 행하였던 것처럼 무료 진료행사도 가끔 시행하고 있어 그야말로 경동 약령시장에 들리면 푸짐한 눈요깃 거리가 즐비하다.

옛 ‘보제원’(普濟院)이 뜻하는 ‘넓게(普) 구제(求濟)한다’는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그 자리에 동방의 경사가 될, ‘경동(慶東) 약령시장’이란 명칭이 결코 우연만이 아닌 것 같아 오늘을 살아가는 의술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입력시간 2000/05/03 19:28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