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을 몇마디 말로 요약할 수는 없다.

3공과 5. 6공을 거친 군부, 정치관료 출신 정치집단인 ‘구여권’이 120여명에서 여·야 합쳐 22명으로 줄었다는 점이 우선 눈길을 끈다. 이는 한국일보에 연재중인 김성우 에세이의 결론처럼 ‘걸레 같은 사람들’의 어느정도 예정된 퇴진인지 모른다.

3공 세력의 주류였던 공화당계는 3명만이, 5공때 22명이던 군 출신은 6명이 가까스로 의원직을 지키게 됐다. 경기대 석좌교수인 이문영 박사의 표현대로 “이제는 옛것을 벗어 버리자”고 4·13 총선은 가르켜주었다.

‘옛것’과‘걸레’를 버리게 만든 4·13 총선 흐름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한국일보의 유권자 조사로는 그 영향력이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이 가장 커 36.9%로 나타났다. 20대는 47%, 30대는 46.4%, 학력이 높을수록 비율이 높았다.

그렇다면 시민단체의 이 운동에 가속력를 불러일으킨 것은 무엇일까. 워싱턴 포스트의 더그 스트러크 특파원은 4월15일자 서울발 기사에서 “인터넷이 한국의 선거문화를 바꿨다”고 설명했다. 총선시민연대가 지목한 86명의 낙선 대상자중 58명이 떨어진 것이 바로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주여 앞으로 한국 선거문화에서 인터넷이 더 큰 영향과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고려대 언론학 교수이자 한국 사이버 언론학회 회장인 오택섭 박사는 “이번 총선에서 낙선운동을 주도한 인터넷이 언론매체의 하나임을 증명했다”고 분석했다. 시민단체들의 웹사이트 운동을 총괄했던 이경숙 간사는 “우리는 여지껏 없던 유권자들에게 토론의 장을 마련해 줄 수 있었다. 그것이 의견을 나누는 유일한 마당이었다”고 자평했다.

여지껏 한국 선거문화에 없던 후보자들의 신상에 대한 공개가 가능했던 것은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가 이미 구축돼 있었기 때문이다. 박재창 숙명여대 교수는 “15대 총선에서 인터넷의 영향력은 미미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는 인터넷망이 구축돼 있어 시민운동이 그 망을 이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총선시민연대가 짧은 시간내에 600여 단체를 연결할 수 있었던 것도 인터넷을 통해 ‘의견’과‘회의’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시민연대는 각 단체의 컴퓨터로 인터넷 망을 구성했으며 중앙선관위도 자체 사이트를 가동했다.

한국일보 조사로는 전체 유권자 3.300여만명중 8.3%인 283만명이 사이버 선거운동 사이트를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접속자는 30대가 14,4%, 40대가 10,5%, 20대가 8,1%로 드러났다. 직업별로는 화이트 컬러(19,6%), 권역별로는 수도권(10,3%)이 높았다. 사이트 접촉은 선관위 사이트가 41,9%로 가장 높았고 정당 홈 페이지는 36%, 시민연대는 9,3%에 그쳤다.

선거 바로 전날 선거 사이트의 접속자는 하루 110만명에 이르렀다. 오택섭 박사의 지적처럼 “총선시민연대가 낙선 대상자를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하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현상 이었다. 박재창 교수는 “토론문화가 없는 한국에서 이미 채팅으로 나름의 토론문화를 형성한 네티즌들에게 시민연대와 선관위의 후보자 정보는 한국 선거문화를 바꿔 놓을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한국인터넷정보센터가 총선직전인 3월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인터넷 이용인구는 매달 90만명씩 증가해 현재 7세이상 국민 3명당 1명꼴로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한달에 한번 이상 인터넷에 접속한 사람 수를 기준으로 한 인터넷 사용인구는 이제 1,393만명에 이른다.

미국 ABC TV뉴스는 4월 20일 “한국의 인터넷 산업은 ‘숨겨진 보석’이며 현단계에서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중 가장 분명하고 귀중한 투자 기회를 갖춘 나라는 한국 뿐이다”고 보도했다. ‘한국의 인터넷’은 투자 측면에서만 ‘숨겨진 보석’이 아닐 것이라고 스트러그 특파원은 내다보고 있다.

아시아에서, 특히 중국이나 북한, 1인 독재국가, 군사정권하에 있던 국가의 언론은 독자들에게 믿을 만한 뉴스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게 아시아의 특징이다.

4·13총선의 ‘인터넷 혁명’은 그런 국가들에게 새로운 민주화 모델을 제시할 것이다. 앞으로 선거에서 TV의 중요성은 낮아지고 인터넷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언론이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을 때 국민은 다른 매체를 찾는다는 점을 이번 총선은 가르켜주고 있다.

입력시간 2000/05/03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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