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011)의 신세기통신(017) 조건부 인수로 이동통신 시장이 본격적인 M&A 열풍에 휩싸이게 됐다. 지난해 12월21일 선두업체 SK텔레콤이 포철 소유의 신세기통신 주식 51.19%(코오롱상사분 23.53% 포함)를 인수하면서 불거진 이 문제는 겉으로는 ‘골리앗 한 명과 다윗 3명의 대결구도’로의 개편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 사업권 획득을 앞둔 전초전 성격이 더 짙다.

1997년말 영업개시 이후 한치의 양보없는 치열한 싸움을 펼쳐왔던 한국통신프리텔(016), LG텔레콤(019), 한솔엠닷컷(018) 등 개인휴대통신(PCS) 3사가 공정위의 최종 결정을 앞두고 이례적으로 ‘행정소송 불사’등의 한 목소리를 낸 것만 봐도 이번 결합이 업계에 미칠 파장이 얼마나 큰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4개월여간의 장고 끝에 내려진 이번 공정위 결정은 ‘세계적 추세인 기업합병을 통한 경쟁력 강화’와 ‘독과점 피해 방지’라는 서로 상반된 명분을 교묘히 엮은 절충식 해법이다. PCS 3사에게는 SK텔레콤의 시장 점유율을 50% 이하로 묶어놓음으로써 통합으로 발생할 피해를 다소나마 줄여주었다.

SK의 입장에서는 점유율 강제 인하와 자회사인 SK텔레텍의 단말기 생산량 제한이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올 9월부터 시작될 IMT-2000 사업권 선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SK텔레콤은 양사 합병으로 높아지는 57%의 점유율중 7%를 강제로 털어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지만 실제로 이 정도는 불량가입자를 솎아내는 수준에서 해결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따라서 SK텔레콤측이 공정위의 이번 결정에 재심을 청구하는 등의 사후 제스처를 쓰고 있지만 내심은 ‘얻을 수 있는 것 만큼은 얻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이동통신업계 인수·합병 세계적 추세

이동통신 시장은 올해 말을 성장의 최고점으로 보고 있다. 이미 가입자수가 지난해 말 2,300만명으로 유선 가입자(2,100만원)를 초과한데다 올해 말에는 매출액도 11조2,000억원으로 유선통신(10조3,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그럼에도 셀룰러폰인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을 제외하곤 아직까지 적자 구조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동통신업계의 공룡인 SK텔레콤은 지난해 세전 기준 4,000억원, 신세기통신은 150억원의 흑자를 낸 반면 PCS 3사는 적게는 956억에서 많게는 2,3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적자를 기록했다. 업계 선두사가 흑자 경쟁사를 합병해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는 점에서 PCS 3사로서는 긴장하지 않을수 일이다.

따라서 이번 셀룰러 시장 통합은 필연적으로 PCS 업계에 ‘빅뱅’의 소용돌이를 몰고 올 전망이다. 특히 올해 말 IMT-2000 사업자가 선정될 경우 각 사업자별로 3조5,000억~5조원의 추가 투자가 소요되기 때문에 기업 합병을 통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외국에서도 영국 보다폰 에어터치사가 4월12일 독일의 만네스만을 인수했고 지난해에는 월드컴이 MCI를 인수하는 등 이동통신간의 M&A를 통한 대규모 인수·합병은 이미 세계적인 대세가 된지 오래다.

지난해 말부터 M&A 대상에 오르고 있는 한솔엠닷컴을 둘러싼 한국통신프리텔과 LG텔레콤의 인수 경쟁도 더욱 가속도가 붙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자금력에서 우위에 있는 한통이 기선을 잡는 듯 했으나 ‘공기업의 민간 기업 인수’라는 여론에 부딪혀 한발 뒤로 물러난 상태다. 이 틈을 타 LG텔레콤이 한솔엠닷컴측과 깊은 선까지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솔측은 올해 초부터 로고와 회사명까지 바꾸는 대대적인 CI작업을 벌이며 양측을 상대로 몸값 올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태다.


하나로통신 지분경쟁이 변수

여기에 또하나의 변수가 하나로 통신의 지분 경쟁이다. 하나로 통신은 앞으로 전개될 21세기 인터넷 정보통신의 시대에 없어서는 안될 기간 망(網) 사업자다.

그러나 앞으로도 수년간 천문학적인 규모의 추가 자금이 투자되어야 된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통신 사업자들로서는 남주기는 아깝고 내가 갖기엔 부담이 되는 ‘계륵’(鷄勒)과 같은 존재다.

국내 통신시장은 한국통신, SK텔레콤, LG텔레콤 3강 체제로 굳혀져 가고 있다. 이들 모두 하나로통신의 인수 생각은 있지만 엄청난 비용 때문에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 이야기가 나오면서 LG가 빨바른 행보를 취하고 있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데이콤 지분을 포함해 하나로 통신 지분의 15.15%를 갖고 있는 LG는 최근 LG화재를 통해 하나로의 지분 약 4%에 해당하는 1,000만주를 추가 매입했다. 그러자 3강중 유일하게 유선망이 없는 SK텔레콤이 ‘혹 하나로통신이 LG로 넘어가는 것 아닌가’하는 우려를 표명하며 잔뜩 긴장하고 있다.


향후 재벌기업 구도 바꿀 '전쟁'

이러한 이동통신업계의 모든 이합 집산의 최종 목표는 물론 올해말 결정될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 사업권 획득이다.

현재 IMT-2000 사업권 경쟁에 공식적으로 뛰어든 곳은 △한국통신과 자회사인 한국통신프리텔 △SK텔레콤과 자회사인 신세기통신 △LG텔레콤과 LG 계열사인 데이콤 △온세통신 하나로통신 서울이동통신을 주축으로 15개 기간 통신사업들로 구성된 한국IMT-2000㈜ 등 4대 연합군으로 압축되고 있다.

만약 이들중 IMT-2000 사업자 선정에서 제외되는 사업자는 타 경쟁사에 흡수 통합돼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사업권 확보를 향한 4대 연합군의 사활을 건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 한솔엠닷컴이 자사를 IMT-2000에서 ‘캐스팅보트’로 활용하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주무부서인 정통부는 아직 몇개의 IMT-2000 사업자를 선정하느냐는 것도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현재 기술적으로는 최소 3개에서 최다 5개 사업자까지 허용이 가능하다.

영국의 경우 최근 5개 사업자로 결정을 내렸고 가까운 일본은 3개 사업자 선정을 검토중에 있다. 국내에서는 정치적 논리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은데 종전 PCS 사업자 선정 때의 경험을 토대로 볼 때 5개는 너무 많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현재로는 3~4개 사업자로 좁혀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21세기는 정보통신의 시대다. IMT-2000은 이런 정보통신의 최종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향후 국내 재벌 기업의 구도도 바로 정보통신의 성패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사활을 건 ‘그들만의 전쟁’의 막이 오른 셈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0/05/04 19:47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