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마케팅·원자재 비교우위 없으면 백전백패

“월급은 적고 물가는 비싸 살기가 어렵다. 개발바람에 외국인이 몰려와서 물가를 올려놨다. 하루 24시간 일하고 다음날 쉬는 식으로 일한다. 한달에 버는 돈이 1,500~2,000위엔(21만원~28만원)이다. 아내와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하나 있는데 늘 쪼들린다. 방값 부담은 적다. 6층짜리 다세대 주택에서 월세로 살고 있다. 국가보조금 덕분에 한달 방값은 80위엔(1만1,200원)만 내면 된다.”

상하이(上海)에서 5년째 택시운전을 하고 있다는 인(殷·40)씨의 이야기다. 인씨의 수입은 그래도 다소 많은 축에 속한다.

상하이의 노동자들이 받는 평균 월급은 1,100위엔(15만4,000원)에 불과하다. 실제로 택시기사는 중국에서 고소득 인기직종에 든다. 상하이는 중국 전체 소비액의 36.3%를 차지하는 화동 경제권의 핵심. 이같은 상하이에서도 현재의 유효수요 능력은 그리 높지 않다.


물가 비싸지만 사무실 임대료 등은 싸

상하이 물가는 비싸다. 서울 물가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일반 노동자의 임대주택을 비롯한 아파트, 사무실 임대비용과 매매가격은 예외적으로 전국 수준에 못미친다. 왜일까.

1990년대 중반, 열풍처럼 일어난 ‘묻지마 개발’의 결과다. 한때 ‘전세계 타워크레인의 절반이 중국에 몰려 있고, 중국내 타워 크레인의 60% 이상이 상하이에 있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우후죽순으로 지어진 건물이 입주자를 못만나자 값이 추락하는 것은 당연지사. 택시기사 인씨도 “대부분 아파트와 빌딩이 비어있다”고 말했다.

지난 수년간 중국을 괴롭히고 있는 내수부진은 상하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보조 감축과 효율성에 초점을 둔 국유기업 개혁에 따른 영향 때문이다. 한국 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상하이무역관 이종일 관장의 설명.

“중국인이 잔뜩 움츠리고 있다. 비록 수입은 늘고 있지만 국유기업 개혁 등으로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소비를 안하고 있다. 눈앞의 소비보다는 미래를 대비하자는 생각에서다.” 1996년 1월 문을 열었던 신세계 백화점과 코오롱 고급 소매법인이 철수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중국을 현재로만 판단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엄청난 성장잠재력이 중국시장의 매력이고 이 잠재력을 보고 투자자와 기업이 몰려든다.

한국에게 상하이는 전혀 낯설지 않은 곳이다. 한국총영사관과 KOTRA, 부산시 무역사무소, 한국 지자체 무역사무소, 상공회의소 사무실 등 5개 국·공·사립 기관이 활동중이다.

산업은행, 한빛은행, 삼성화재보험 등을 비롯한 10개 금융기관이 지점이나 사무소를 열고 있다. 종합상사 등 상사 지사만 149개에 이르고 각종 투자기업도 지난해 말 현재 322개에 달했다.


엄청난 성장 잠재력, 투자자·기업 몰려

상하이항을 통한 한중 무역액은 지난해 41억달러. 1998년에 비해 11억달러가 늘었다. 수출이 24억3,000만달러고 수입이 16억7,000만달러로 한국이 7억6,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전체 한중 무역액수 중 16.4%가 상하이항을 통해 이뤄졌다. 한국의 주요 수출품목은 철강재, 화학제품, 의류 원부자재, 전자부품 등 생산용 원부자재였다.

상하이는 대기업의 주요 프로젝트 기지다. 삼성전자가 상하이 배후의 장쑤(江蘇)성 싱가포르 공단에 4억달러를 투자했으며 포철특수강도 장쑤성에 2억4,000만달러를 투자했다.

한솔제지는 1억3,200만달러를 들여 상하이 바오산(寶山)에 제지공장을 추진중이다. 상하이가 내수시장과 아울러 한국기업의 생산기지로서 자리를 굳히고 있는 셈이다. 한국기업은 1993년 삼성건설이 중국시장에 진출한 이후 건설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포스코개발이 푸동(浦東)지역내 38층짜리 주상복합건물 공사를 1억6,000만달러에 수주했고 한라건설도 푸동에서 1억달러어치 공사를 따냈다.

한국기업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분은 유통업이다. 1996년 12월 이마트가 4,600평 규모의 매장에 소매업을 허가받은데 이어 이랜드, 백양, 한일합섬, 쌍방울 등이 도소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미개척 분야가 훨씬 많다.

KOTRA측은 기존의 에이전트와 수입업체 중심의 원부자재 수출 위주에서 탈피해 소비재를 중심으로 한 유통진출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형 연쇄슈퍼와 까르푸, 메트로 등 양판점, 백화점, 홈쇼핑 업체를 대상으로 한 유통망 공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KORTA 이종일 관장은 “철저한 관료주의 국가라 주요 프로젝트가 베이징(北京)에서 결정되지만 비즈니스는 역시 상하이에서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금융업 미래 여전히 불투명

중국이 외국기업에게 제한을 강화했던 금융업에서도 다소 숨통이 트이고 있다. 산업은행과 한빛은행 상하이지점이 올 3월 중국 당국으로부터 인민폐 영업허가를 받아 7월중으로 영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민경동 산업은행 상하이지점장은 “인민폐 영업을 할 경우 (달러위주 영업보다)환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어 한국기업에게 유리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계 은행은 현지에서 직접금융 뿐 아니라 기업에 대한 보증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다.

민 지점장은 그러나 30대 기업에 대한 국내규제가 해외까지 연장돼 이윤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상하이에서 가장 사업을 잘하는 기업은 대기업이다. 하지만 국내 여신규제가 여기서도 적용돼 불리한 점이 많다. 우리(한국계 은행)가 보증을 해주면 훨씬 싼 이자로 기업이 대출을 받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규제때문에 비싼 이자를 물고 돈을 빌려야 한다.”

규제가 일부 완화했다해서 금융업의 미래를 낙관해서는 곤란하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전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앞길은 불투명하다.

우선 은행 예대금리가 모두 규제에 묶여있다. 은행간 자율경쟁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주상하이 한국영사관의 천용 재경관은 “중국이 WTO 가입 후에도 가장 늦게 개방할 분야가 금융업”이라고 말했다.

국유기업에 대한 부실대출에 꽉 물린 국유은행이 외국계 은행과 자율경쟁에 들어갈 경우 도산은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 한국 금융기관이 대거 진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중국시장 쉽게 생각하면 다친다

천 재경관은 중국진출을 꾀하는 한국기업에게 “중국을 시장의 크기로만 보지말라”고 강조했다. 그의 이야기.

“중국진출을 위해서는 적어도 몇년간의 시장조사와 함께 KOTRA나 영사관 등의 충분한 자문을 얻어야 한다. 계약도 반드시 변호사를 대동해 첫 단추를 잘 끼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국에서 사업을 ‘꾸안시’(關係)만 갖고 할 수 있는 건 결코 아니다.

윈-윈 전략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 적법절차를 우선 하고 우리 기술을 몇년 뒤에는 중국에 전수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한국기업의 중국 러시에 대해서도 주의를 촉구했다. “연안지방은 이제 저물가·저비용의 메리트가 없다.

이젠 서부지역에 관심을 둬야 한다. 하지만 연안지방에 기반을 두지 않고 서부지역으로 진출하는 것은 자살행위다. 중국진출을 위해서는 내수시장을 목표로 할 것인지, 가공수출을 목표로 할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내수시장을 겨냥할 경우 원자재는 반드시 한국서 가져와야 한다.

원자재까지 현지조달할 경우 금방 중국기업에 추월당하게 된다. 결론은 간단하다. 기술, 마케팅, 원자재 세가지 중 비교우위가 하나라도 없는 기업은 진출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

상하이=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5/1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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