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세게 운도 좋군.”

천하제일의 명산 금강산에, 그것도 절색의 미녀 미스코리아들과 함께 간다는 사실에 주변의 남자들은 내게 이런 부러움과 시샘의 눈길을 던졌다. 선상에서의 환상적인 패션쇼, 이어진 후보들의 재기발랄한 장기자랑, 뱃전에 부딪치는 하얀 파도의 포말…. 설레는 첫 북한 방문은 이렇게 시작됐다.

북한 고성의 장진항에 입항하는 순간, 자욱한 연무 사이로 어슴프레 보이는 천불산과 온정리 마을 풍경은 짜릿한 긴장감을 던져주었다. 남한의 여느 항구와 별 다를 바 없는 풍경. 하지만 그곳에서 마주친 북한 민간인과 관리원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금강산에서 만난 22세의 여성 관리원은 남한의 세련된 미녀들을 보고 애써 부러움을 감추려는 듯 다소 빈정거리는 말투로 “한국 여성답지 않다”고 폄하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그의 태도에서 ‘이제 이들도 남측과의 경제적 격차를 스스로 인정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북한 사람과 다소 친해지면서 안 놀라운 사실은 6월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그들의 엄청난 기대감이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을 당시 남측이 들썩였던 것처럼 마치 머지않아 통일이라도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정상회담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간부보다 민간인일수록 더욱 컸다.

마지막 날 평양모란봉교예단의 공연을 관람한 후 버스 안으로 돌아온 미스코리아 후보들은 하나둘씩 눈물을 닦았다. ‘행여 억류되는 것 아닌가’하고 처음 가졌던 걱정이 이제는 북한 동포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부푼 기대감 속에서 시작된 금강산 방문은 이런 아쉬움만 남긴 채 막을 내렸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0/05/17 16:24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