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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건설, 직원들의 반란

고병우회장 퇴진운동, 일부에선 '배후'에 의심

1980년 이후 한국인에게 5월은 분명히 ‘항쟁의 계절’로 기억된다. 20년전 광주에서 민주항쟁이 일어났고 독재 정권에 대한 학생의 항쟁이 뜨거웠던 1980년대에는 1년 12개월 중에서도 특히 5월에 그 열기가 더욱 고조됐다.

그런데 10여년이 흐른 지금 비슷한 상황이 재계에서 다시 나타나고 있다. 형제끼리의 경영권 분쟁에 대한 ‘개미군단’의 분노로 현대그룹의 주가가 폭락하는가 하면 2세에게 경영권을 변칙상속하려는 삼성그룹의 시도가 시민단체에 의해 제동이 걸리고 있다.

요컨대 재벌 체제에 대한 일반인의 항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분위기 탓일까. 5월 들어 비록 워크아웃 상태이지만 한때 10대 그룹의 반열에 들었던 동아건설 그룹에서 이전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흔히 ‘황제’에 비유되는 막강한 권한을 지닌 최고경영자가 부하 직원에게 탄핵을 받아 몰려날 위기에 빠지는가 하면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쥔 은행에 대해서까지 반기를 들고나섰다.


"무능한 경영, 고회장 물러나라"

동아건설 직원들의 ‘회장 축출’ 운동이 시작된 것은 지난 5월2일. 이창복 사장이 월례조회에서 “고병우 회장이 내부분열을 조장하고 1998년 취임이래 2년동안 뚜렷한 경영성과를 내지 못해 퇴진운동을 전개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어 동아그룹 부서장들과 노동조합도 일제히 성명서를 발표해 “고 회장이 자신의 퇴진운동을 벌였던 노조와 합의를 이룬 뒤 노조의 배후로 지목된 김기우 감사의 해임을 시도하는 등 부하 직원을 불신하고 있다”며 역시 반기를 들었다.

이와 관련, 동아건설 관계자는 “전체 직원의 80% 이상이 고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결의문에 서명했다”고 밝히고 있다.

동아건설 직원이 건설부 장관까지 지낸 화려한 경력의 고 회장을 몰아내려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무능력이다.

고 회장 퇴진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동아건설 강우명 상무는 “건설회사 최고경영자의 가장 큰 덕목은 대형공사의 수주”라며 “고 회장은 최고경영자로서의 권위만 요구할 뿐 공사수주를 위해 마땅히 나서야 할, 궂은 역할에는 언제나 몸을 사린다”고 비난했다.

강상무는 “최근 현대, 동아, 대우 등이 함께 참여한 대북 경수로사업에서 현대와 발주처인 한전이 동아건설을 따돌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도 고 회장은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1998년 6월 10만주의 스톡옵션을 받는 조건으로 취임한 고 회장은 이후 눈에 띄는 경영수완을 보이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히려 최근에는 경영실패라는 말을 들어야 할 정도의 상황까지 전개되고 있다.

즉, 매월 160억원의 이자비용이 지출되는 채권단과의 채무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동아건설의 재무적 부담을 덜어줄 유일한 희망이며 한때 동아건설의 자회사였던 대한통운이 동아건설과의 관계청산을 요구하고 있다.

강우명 상무는 “대한통운 지분을 5.3% 밖에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고 회장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방적으로 대한통운의 매각을 발표하는 등 신중치 못하게 처신해 이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주채권 은행에도 "반기"

동아건설 부서장들은 고 회장의 퇴진과 함께 주채권 은행인 서울은행에 대해서도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강도높은 요구를 꺼냈다.

이들은 고 회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성명서에서 “서울은행에서 파견된 K모 경영관리단장이 현장시찰을 핑계삼아 상가를 분양받기 위해 돌아다니거나 자신과 친분이 있는 협력업체를 추천하는 등 사익을 챙기려 한다”며 K단장의 교체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때 자신을 모셨던 부하들로부터 탄핵을 받고 있는 고 회장의 입장은 어떨까. 또 주채권 은행인 서울은행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고병우 동아건설 회장은 부하들의 반란에 대해 “경영권에 대해 채권은행단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만큼 진퇴여부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직원들의 반발로 출근을 하지 않고 있는 고회장은 “내년까지 임기가 부여된 회장직을 맡았다”며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회장으로서 해야 할 일은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고회장의 한 측근은 최근 사태를 불순한 의도를 가진 세력의 소행이라고 비난했다. 즉 1998년 고 회장의 취임이후 투명한 경영을 시도, 그 성과가 나타나자 구태를 벗지못한 일부 임원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직원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퇴진운동 순수성에 의문 제기하기도

서울은행 등 채권단도 고회장을 퇴진을 요구하는 직원들의 요구를 부분적으로는 인정하면서도 그 진의와 배후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특히 K모 단장에 대한 부서장들의 퇴진 요구에 대해 “근거도 없는 명예훼손”이라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한편 채권은행 일부에서는 동아건설 사태의 배후에 최원석 전회장이 개입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이 벌어진 뒤 동아건설 노동조합원들이 최원석 회장의 집 앞에서 최 회장의 ‘경영복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며 고 회장 퇴진운동의 순수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동아건설 사태가 무능한 최고경영자에 대한 일반 직원의 생존권적 차원의 ‘항쟁’인지, 아니면 불순한 의도를 가진 음모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동아건설의 정상화가 그만큼 멀어지고 있는 것 만큼은 확실하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입력시간 2000/05/18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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