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5월20일 개봉)의 시사회를 마치고 감독, 출연배우들과 차를 한잔 나누는 자리에서 안성기는 편안해보였다. 후배들 칭찬부터 먼저 했다.

“마지막 총기난동 때는 은표(중사 역)가 주인공 같아. 눈빛이 달라지는 게 대단하더라구.” “종두 역을 맡은 김승철 저 친구는 한석규와 동국대 연극영화과 동기야. 그동안 연극을 해왔는데 이번에 연기하는 것 보니까 역시 경력이 말해주더라고.” “박신양이도 전혀 스타 티 내지않아 좋더구만.”

자기 연기에 대해서는 잘 설명하려 하지도, 변명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냥 “재미있었다”는 말만 했다. 이전에 겸손하긴 하지만 작품과 제작여건과 상대 배우를 거론하며 자신을 변명하던 것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었다.

물론 그만큼 영화에서 그의 연기가 좋았고, 또 작품 완성도 역시 괜찮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분명 아니었다. 안성기는 영화를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전에는 연기를 어떻게 할까 생각했는데 요즘은 저 영화 속에 내가 어떻게 자연스럽게 지나갈 수 있을까 생각한다.

스타로서의 자기 존재 드러내기가 아니다. 배우란 그것이 주연이든 조연이든 영화 속의 한 인물로 잠시 사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만이 가질수 있는 여유와 힘이라고 할까. 그는 조연도, 작은 영화도 마다하지 않는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구멍’, ‘진실게임’이 그랬다. 이중에는 그가 아니면 만들어지지도 못했을 작품도 있다. 당연히 그런 영화는 적은 돈, 열악한 인력구조, 스타부재로 흥행에 실패했지만 그는 아쉬움을 표현했지 후회는 하지 않았다.

그가 출연해 영화가 만들어짐으로써 ‘진실게임’은 하지원이란 신인 여배우를 탄생시켰고 ‘구멍’은 의식의 흐름을 좇은 실험성을 시도했다.

어쩌면 안성기 같은 존재는 이제 자신의 영광보다는 이런 역할을 하는 게 더 아름다울 수 있다. 할리우드의 알 파치노나 로버트 데니로, 때론 브루스 윌리스 등 대배우들도 그렇다.

성격파 배우로서, 독특한 장르를 개척하는 감독으로 후배들이 성장하도록 돈을 생각하지 않고, 출연하거나 스스로 몸을 낯춰 조연이 된다. 그것이 오히려 자신의 연기세계를 넓히는 ‘복’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포루’, ‘식스 센스’, ‘나인야드’를 거치면서 브루스 윌리스는 액션스타에서 깊이 있고 섬세하고 독특한 성격파 배우로 바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안성기 역시 비슷하다. 늘 도식적인 코미디, 소시민의 모습에서 ‘인정사정 볼것 없다’와 ‘킬리만자로’를 통해 그는 중년의 3류 인생의 추레함과 피곤함과 따듯함을 가진 인물로 거듭 태어났다.

2년만에 ‘오, 수정’으로 연기자로 돌아온 문성근에게도 자연스러움이 보인다. 그것은 그가 지난 2년동안 영화운동과 거리에서,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목소리를 높이다 배우란 거울 앞에 다시 섰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편안하게 내 이야기처럼 연기했다”고 했다. 10년전 그가 처음 드라마에서 실제처럼 행동하는 연기로 우리를 놀라게 했던 것처럼.

그 역시 ‘오, 수정’에서 조연이었다. 그러나 그 일상같은 연기가 없었다면 주연인 정보석의 과장과 어눌한 위선은 영화가 목표로한 냉소로 전달되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도 그는 영화운동가로서의 욕심을 버리지 않고있다. 그러나 영화출연에 관한 한 공명심이나 물욕이나 명예욕을 버렸다고 한다. 욕심을 버린 중년 배우의 모습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이 영화를 아름답게 한다.

이대현 문화부 차장

입력시간 2000/05/18 20:46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