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⑨] 바이오 컴퓨터

한줌의 세균이 컴퓨터 연산을 한다. 프로그램된 세포를 당뇨병 환자의 체내에 주입해서 혈류를 검사하고 인슐린을 생산하게 한다. 살아있는 세포가 화학공장을 운영하고 맥주를 만든다. 이는 영화 속의 몽상이 아니라 눈 앞에 곧 펼쳐질 바이오 컴퓨터의 세상이다.

우리는 지금 컴퓨터가 주도하는 정보통신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그런 만큼 정보통신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컴퓨터의 변신을 요구하고 있으며 실리콘 컴퓨터의 한계에 도전하는 새로운 시도가 줄을 잇고 있다.

양자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미래의 컴퓨터가 바로 ‘바이오 컴퓨터’(생물 컴퓨터)다. 실리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세포를 프로그램해 연산, 기억, 저장이 가능한 컴퓨터시스템을 만든다는 발상이다.

바이오 컴퓨터는 프로그램된 세포 하나만 있으면 간단한 영양물질로 수십억 개의 복제품을 만들 수 있어 엄청난 비용절감이 가능하다.

또한 펜티엄 PC는 여러 개의 전선 중 하나만 끊어지면 모든 작동이 중단되지만 바이오 컴퓨터는 각각의 독립된 세포가 연합해서 움직이므로 그런 염려가 없어 안정적이다. 수백만의 세포가 죽어도 그 기능을 계속하는 인간 두뇌가 좋은 예다.

보스톤 대학의 콜린과 가더너는 ‘플립플롭’(flip-flop)이라는 ‘유전자 스위치’를 만들었다. 유전자 스위치는 서로 상반되는 두 개의 유전자로 만들어졌는데 하나가 활성화되면 다른 것은 순간적으로 비활성화한다는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이들은 또한 MIT 인공지능실험실의 나이츠 교수와 함께 대장균 속에 집어넣은 5개의 유전자 스위치에 대해 지난 1월 과학잡지 ‘네이쳐’에 발표한 적이 있다. 가더너 박사는 유전자 스위치를 ‘유전자 애플릿’이라고 표현했다(애플릿은 컴퓨터 용어로서 작은 프로그램을 나타내며 일반적으로 자바 프로그램 언어에서 사용된다).

가더너는 “컴퓨터에서 애플릿이 완성된 프로그램에 결합해 작동하듯 유전자 애플릿 여러 개를 조합하면 더욱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는 세포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슐린 수송을 예로 들자면 첫번째 유전자 애플릿은 당뇨병 환자의 혈류에서 당의 함량을 감지하고 그 결과에 따라 두번째 애플릿은 인슐린의 합성을 조절하며 세번째 애플릿은 그 결과를 시스템 외부에 전달, 과학자가 인슐린 생산에 관한 다른 행동을 하도록 명령하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바이오 컴퓨터의 형태다.

현재 유전자 스위치(플립플롭)에 대한 특허가 준비중이며 투자자와 최초의 바이오 컴퓨터 밴처회사 설립을 협상중이라고 한다.

최소한 5년 이내에 생물·화학전에 사용되는 식품오염과 독극물을 감지하는 장치를 개발할 것이며 이 벤처의 궁극적인 목적은 혈우병과 빈혈증 같은 질병을 다룰 수 있는 ‘유전자 애플릿 네트워크’를 인체에 설치하는 유전자 치료 기술의 개발에 있다.

실리콘 프로세서가 더이상 축소될 수 없을 때 더 빠른 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수많은 소형 컴퓨터를 연합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1000분의1초의 속도로 외부자극에 반응하는 인간 두뇌의 신경세포 연결을 토대로 서로 연결된 수백만 개의 소형 바이오 프로세서 시스템이 그 해답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포와 세포끼리의 의사소통과 세포와 대형 컴퓨터 사이의 의사소통에 관한 기술의 개발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서 한 세포가 빛을 내는 형광물질을 만들면 인접한 세포는 그 빛을 감지하는 형태의 의사소통이다.

만약 각각의 세포가 자기의 역할을 알고 전체가 의사소통이 가능한, 조직화한 앙상블로 움직인다면 복잡한 연산을 수행하고 또 인간 두뇌의 기능에 근접하는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직 바이오 컴퓨터 연구는 시작단계에 있고 두뇌 신경세포의 작용 메커니즘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신경세포의 실제적인 조작과 활용은 아직 어렵다.

하지만 향후 30년이면 발달신경생물학의 지식을 활용하여 신경세포로 만든 바이오 컴퓨터가 등장하고 기후의 예측과 같은 집중적인 연산도 가능할 정도의 무서운 정보처리 속도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입력시간 2000/05/23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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