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테크노 바' 지하로 숨은 마약

“요즘은 약을 먹는 손님도 없을 뿐더러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만 보이면 당장 쫓아냅니다.”(서울 홍대앞 M바 웨이터)

5월18일 밤 11시 서울 홍익대 앞 M 테크노바. 5평 남짓한 플로어에서 20대 전후의 학생 10여명이 ‘한가롭게’ 테크노 댄스를 춰 ‘광란의 레이브(rave) 파티’의 온상으로 알려진 테크노바의 명성을 무색케 했다.

고막을 찢을 듯한 음악을 제외하곤 조명, 테이블, 커텐 등 실내장식도 일반 디스코텍보다 검소하고 차분했고 떼로 몰려 괴성을 지르며 춤을 추는 전형적인 춤판의 열기도 없었다. 이들은 그저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두 팔을 흐느적거리며 ‘오징어 테크노’를 즐겼다.


“검찰 수사로 파리 날려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추는 ‘도리도리 댄스’는 철 지난 퇴물. 도리도리의 퇴장과 함께 엑스터시(일명 도리도리)와 LSD도 사라진 것일까.

테크노댄스를 추는 학생 중에는 마약은 커녕 술 마시는 모습도 보기 힘들었다. 5,000∼7,000원인 맥주 한병을 놓고 마시는둥 마는둥 두어 시간은 족히 즐긴다. 춤을 출 때는 춤에 빠지고 테이블로 돌아와서도 남들의 춤을 골똘히 바라볼 뿐.

종업원도 술 나르기 보다는 춤추기에 바쁘고 간간이 술병을 들고 다닐 때도 걸음새가 그대로 댄스 스텝이다. 엑스터시와 LSD의 그림자는 전혀 볼 수 없었다.

M바 웨이터 L씨는 “4월 검찰 수사 이후 손님이 대폭 줄었다”며 “언론이 신촌과 강남 테크노바 손님의 30%가 마약 경험이 있다고 보도했지만 요즘은 마약하는 손님이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엑스터시 있어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경찰서 가실랍니까”라고 응수하는 인근 N바 DJ K씨는 “이젠 유학생 안와요. 술에 많이 취한 손님조차 쫓아내는 판에 마약은 생각도 못해요”라고 ‘당당히’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한번 맛보면 쉽게 끊기 힘드니까 언제 어디선가 다시 나타날겁니다”라고 조심스레 내다봤다.

“도리도리, 요즘도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을 거예요.” 축제 뒷풀이차 테크노바에 들렸다는 S대 연극영화과 3학년 Y(24·여)씨의 말이다. Y씨의 설명에 의하면 테크노바의 마약 유통경로는 이렇다.

테크노바나 락카페 한 군데를 찍고 ‘출근’하다 보면 어느새 ‘잘 논다’는 소문이 돈다. 디스코텍과는 달리 테크노바의 규모는 10평 내외로 비좁기 때문에 단골끼리는 알음알음으로 친해지기 마련.


‘잘 논다’ 소문나면 ‘약꾼’들 접근

이때쯤 되면 ‘약꾼’들이 은밀히 다가온다. “약 필요하냐”며 꾼이 접근해와 화장실 등 으슥한 곳에서 거래가 이뤄진다. LSD 1조각에 2만원, 엑스터시 1정에 6만원 등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다. Y씨도 “얼마전 바에서 자주 보던 한 여학생(?)이 ‘공짜로 줄테니 엑스터시 한번 해보자’며 화장실까지 따라와 추근덕거린 적이 있어요”라고 털어놨다.

‘약을 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알약 형태인 엑스터시는 술에 넣고 녹여 마신다. LSD는 가루로 만들어 손가락 위에 놓은 뒤 코로 흡입해 환각효과를 극대화한다. 25㎍ 정도의 환각제를 은박지 위에 놓고 가열, 연기를 마시는 방법도 은밀히 유행했다.

Y씨에 따르면 일단 약을 하면 곧 티가 난다. 엑스터시 등을 복용하면 몸이 못견디게 간질간질해지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탕을 먹거나 서로 안마를 해주는 풍경이 연출된다. 다음 순서는 야광스틱 흔들기. 야광스틱을 눈 앞에서 흔들어주면 본격적으로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어 광란의 춤판이 이어진다.

이와 같은 레이브 파티는 미국의 예일대, 하버드대 등 명문대 학생도 즐기고 있고 한국 교포들이 밀집해있는 LA의 오렌지 카운티에서 성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검찰 수사 이후 꼬리를 감췄지만 아직도 서울 용산구 이태원 D바에서 종종 레이브 파티가 벌어진다고 ‘춤꾼’들은 전한다.

그러나 통상 마약 복용 후에 따르는 절차로 알려진 퇴폐적 성관계는 엑스터시와 LSD의 경우에는 드문 편이다. 엑스터시 등을 먹고 테크노댄스를 즐긴 후 ‘깔끔하게’ 헤어지는 것이 보통수순이다. 문제는 엑스터시 등 마약과 함께 술을 마실 때 나타나는 증상.


“마약 사라졌다 단정할 순 없다”

Y대 법학과 2학년 L(24)씨는 도리도리를 해봤다는 선배의 말을 인용, “홍대 앞 M바가 한창 뜰 때, 춤을 추다 옆사람과 친해져 자연히 합석하게 됐는데 누군가 약을 내놓아 공짜로 돌려가며 마셨다”고 들었다며 “그 선배는 정신이 붕붕 뜬 채 밤새 춤을 췄고 멍한 상태가 2∼3일 계속됐다”고 말했다.

L씨와 그의 친구 4명은 “테크노바가 아무리 마약 거래처로 비쳐진다고 해도 젊은이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춤추고 술 마시기에는 이곳 만한 데도 없다”며 “조만간 세상의 눈총이 약해지면 또다시 레이브 파티가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Y씨는 “어차피 꾼들은 학생처럼 평범한 복장을 하고 다니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바 분위기만 보고 마약이 사라졌다고 단정할 순 없다”라며 “엑스터시 등이 새로운 마약이니까 이렇게 공개된 곳에서 유행할 수 있었던 것이고 이제 검찰 단속으로 유명해졌으니 잠시 지하로 숨었다가 곧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사회부 기자

입력시간 2000/05/26 19:56


김태훈 사회부 onewa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