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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재상 떨어뜨린 '명의 신탁'

5월19일 오전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실을 나온 박태준 총리의 승용차는 예정됐던 발명의 날 기념식장이 아니라 청와대를 향했다.

박 총리의 사임 여부에 촉각을 세우고 있던 총리실 출입기자에게 박정호 총리공보수석은 “발명의 날 기념식 외에 오후에는 존 하워드 호주총리와 면담일정이 잡혀있다”고 말했다.

유임가능성에 대한 추측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박 총리는 이미 18일 저녁 한광옥 청와대비서실장에게 대통령과 면담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고 19일 오전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사표를 제출했다.

김 대통령도 박 총리를 위로했지만 바로 사표수리를 발표했다. 자민련과 공조복원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김 대통령으로서는 박 총리를 놓치기가 아쉬웠지만 사안의 성격상 더이상 머뭇거릴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배신감 안겨준 ‘재산은닉’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조가 파기된 이후 자민련의 곱지 않은 눈길에도 불구하고 총리역을 꿋꿋이 수행해온 박 전총리의 모습에 많은 사람이 그런대로 신뢰감을 표시했지만 17일 서울 행정법원의 판결을 계기로 드러난 그의 과거는 배신감을 안겨주고 있다.

박 전총리는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사정의 표적이 돼 일본으로 도피, 주위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살아 많은 사람으로부터 정치적 박해자라는 동정을 받았지만 이번 판결을 계기로 터져나온 그의 재산 규모와 은닉방법은 모두가 연출된 ‘쇼’라는 의혹마저 받게 됐다.

행정법원에 따르면 박 전총리가 명의신탁한 부동산은 서울 중구와 강남구에 소재한 땅과 건물 등 모두 6건이고 이중 취득가액이 밝혀진 3건은 58억원에 이르고 있다.

재판과정에서 박 전총리는 이중 서울 을지로의 토지와 건물지분을 1985년 부인 장옥자씨와 공동명의로 3억7,000만원에 매입했고 1988년 재산관리인으로 알려진 조모(60)씨 명의로 소유권을 이전했다가 1990년 6월 8억원에 팔아 4억3,000만원의 차익을 남겼음이 드러났다.

매매대금 중 7억원은 가명계좌나 조씨 명의의 계좌에 넣어두었다가 역삼동 땅을 구입하는데 사용했다. 신사동과 오장동 건물 등 4건은 조씨 명의로 등기해 임대사업을 통해 임대료를 받아왔다.

박 전총리는 1997년 부동산실명제법 시행을 앞두고 조씨 명의로 된 부동산의 명의를 모두 가족 명의로 돌려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재판의 발단은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국세청은 포항제철에 대한 전면적 세무조사를 벌여 박 전총리가 1988년~1990년 포철회장직을 이용해 31개 협력업체에서 56억원의 뇌물을 받아 부동산매입 등에 사용했다는 혐의를 잡아내고 박 전총리를 검찰에 고발하는 한편 탈세혐의로 68억원의 증여세와 종합소득세를 부과했다.

이에 대해 박 전총리의 가족들은 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했으나 6억원의 종합소득세 부과처분 취소청구소송은 패소, 1997년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됐다.

이에 따라 세무당국은 실소유자가 박 전총리로 밝혀진 부동산의 등기상 소유자인 조씨에게 추가로 20억원의 증여세를 부과했다.

그러나 조씨가 1998년 “정당하게 취득한 부동산을 박 전총리의 은닉재산으로 간주해 증여세를 부과한 것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낸 것이 결국 박 전총리의 사퇴로 이어지게 된 셈이다.

행정법원은 “6건 모두 명의신탁이고 이중 4건은 증여세 회피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세무당국의 세금부과는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나머지 2건에 대해서도 증여세 회피목적은 아니지만 공직자로서 재산취득 사실이 공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명의신탁을 했다고 판단했다.


수십억원대 부동산 명의신탁 의혹도

총리실은 판결이 나오자 “부동산 구입시기인 1980년대에는 많은 사람이 제3자 명의로 해두는 명의신탁이 공공연했다”며 “공직자가 된 이후 재산관계는 떳떳하다”고 해명했다.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동정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산 해운대에도 수십억원대의 부동산을 처남과 자녀 명의로 신탁해놓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어 분위기를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포항제철 재직 당시 협력업체로부터 받은 거액의 돈을 정교하게 돈세탁한 뒤 부동산취득에 사용했다는 사실까지 다시 들춰지고 있다.

당시 국세청이 검찰에 고발한 뇌물액수는 56억원. 대검 중수부는 수사를 벌인 결과 56억중 21개업체로부터 39억7,000만원만 대가성 있는 뇌물로 인정했다.

그러나 박 전총리가 일본에 도피중이어서 검찰은 기소중지한 채 뇌물을 준 기업체 대표 2명과 포철간부 2명만 구속기소했다. 박 전총리는 1994년 10월 모친상을 당하는 바람에 귀국했다가 검찰조사를 받고 39억7,000만원 수뢰와 7,300만원 횡령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박 전총리는 한차례 재판도 받지 않고 1995년 8월 광복 50주년 기념 특별사면을 받았다. 따라서 뇌물로 받은 돈도 추징되지 않고 박 전총리의 개인재산으로 굳었다.

이 사건은 민자당내 대통령후보 경선과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사사건건 부닥친 데 대한 대표적인 정치 보복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판단에 따라 서둘러 덮어버린 전형적인 사건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당시 국세청의 조사결과마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세무당국은 이번 재판과정에서도 문제의 부동산 구입자금 출처에 대해 흐름도까지 그려 재판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흐름도에 따르면 모 강업회사 대표로부터 받은 5억원 중 부동산 구입비용으로 쓰인 1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4억원이 골프장 부지 구입에 투자됐다가 다른 돈과 합쳐져 조씨와 처남, 장모, 장녀 명의의 차명계좌 등을 거쳐 부동산 구입자금으로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이 박 전총리에 대한 자금추적을 샅샅히 했다는 방증이다.


포철신화명예 곤두박질

국세청은 더이상의 언급을 회피하고 있지만 재판에 제출된 자료만 봐도 박 전총리가 친인척 및 포철직원의 가·차명 계좌를 이용해 장기간 치밀하게 돈세탁했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일례로 1989년 5월 협력사로부터 받은 1억원을 1년3개월동안 ‘가명계좌-아들 명의의 금전신탁-조씨의 D투자금융 어음관리계좌(CMA)-협력사 사장 박모씨의 CMA-10만원짜리 자기앞 수표’로 분할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1990년 8월 역삼동 카센터 구입비로 사용됐다.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정치적 동기에 의해 시작됐지만 이번 행정법원의 판결을 볼 때 조사결과까지 조작됐다고 주장하기는 힘들게 됐다.

그러나 박 전총리는 대국민사과문을 통해 모든 것이 부덕의 소치이자 주변을 관리하지 못한 책임이라고 전제하면서도 “1993년 정치적인 이유로 나 자신은 물론 주변의 여러 사람까지 대대적 사찰을 받은 적도 있지만 큰 잘못이 없었던 관계로 이제껏 양심에 부끄럽지않게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고 말해 억울함을 감추지 못했다.

박 전총리는 포철신화의 장본인이자 수차례의 정치적 역경에도 불구하고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재상직에 올랐으며 일하는 총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부동산 명의신탁 실태가 낱낱히 드러난데다 국민정서를 도외시한 듯한 대응으로 그가 지금껏 쌓아온 명예가 날개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송용회 주간한국부 기자 songyh@hk.co.kr

입력시간 2000/05/2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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