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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한그룹, 오너 욕심에 무너졌다

방만한 경영, 안이한 상황인식으로…

5월19일 현재 자산기준으로 국내 27위 대기업 새한그룹이 맥없이 무너졌다. 5월16일 과감한 구조조정을 발표했던 새한그룹은 불과 사흘만에 밀려드는 자금상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주채권은행인 한빛은행에 워크아웃(기업개선 작업)을 신청했다.

새한그룹의 구조요청에 대한 채권은행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한빛은행 등 6개 주채권 금융기관은 5월19일 새한그룹의 요청을 수용키로 합의했다.

한빛은행은 이날 오후 4시30분부터 1시간30여분 동안 한빛은행 본점에서 새한그룹 각 계열사별로 6개 금융기관이 참석한 가운데 주채권단 회의를 열어 새한그룹의 워크아웃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이날 ㈜새한의 주채권단 회의에는 산업, 하나, 조흥, 국민, 한빛은행과 서울보증보험 등 6개 기관이 참석했고 새한미디어의 주채권단 회의에는 하나, 신한, 서울, 한빛은행과 현대캐피털, 서울보증보험 등이 각각 참석했다.


능력없는 오너, 과다한 시설투자

금융계에 따르면 새한그룹의 부채 규모는 2조3,900억원인데 이중 금융권 부채가 1조4,200억원, 무보증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은 9,700억원이다.

주력 계열사인 ㈜새한의 총부채는 1조8,250억원이며 ㈜새한미디어의 부채는 제1금융권(1,950억원)과 제2금융권(1,500억원)을 합쳐 총 5,650억원에 달한다.

그렇다면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의 차남인 고 이창희씨의 부인(이영자 회장)과 아들(이재관 부회장)이 오너인 새한그룹이 불행한 운명을 맞은 이유는 뭘까.

새한그룹의 급작스런 몰락은 아직도 한국에서 ‘족벌경영’, ‘방만한 경영’ 등 재벌 체제의 구습이 해결되지 않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선 새한그룹은 IMF체제를 전후해 쓰러진 숱한 기업과 마찬가지로 능력없는 오너의 방만한 경영 때문에 위기를 맞게 됐다.

새한그룹의 소유 경영자들은 주력사업인 섬유사업이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도 대규모 시설투자를 감행, 위기를 자초했다.

㈜새한의 경우 1995~1998년중 구미2공장에 1조원을 투자했으나 섬유산업의 부진이 계속되면서 지난해 일본 도레이사에 1조원짜리 공장을 6,000억원에 매각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이에 따라 지난해에는 매출 1조1,900억원에 554억원의 적자를 면치 못했다.

한때 세계 비디오테이프 시장을 석권했던 새한미디어 역시 시장침체로 1999년에 매출 3,636억원에 382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증시분석가들은 “비디오산업이 활황세를 타던 1995년 당시 불과 2~3년 뒤의 경기변동을 검토하지 않은 채 금융기관에서 돈을 얻어 과다하게 시설투자를 감행한 것이 결정적인 타격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미봉책으로 일관, 더 큰 화 불러

새한그룹 사례는 또 아직도 ‘기업 사유화’의 과욕에서 벗어나지 못한 재벌문화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실제로 올들어 자금난이 날로 심화하면서 새한그룹은 족벌경영이 한계상황에 이르렀는데도 불구하고 5월16일 ‘눈가리고 아웅’식의 미봉책을 내놓았다.

즉, ‘이영자 회장’의 퇴진이라는 어정쩡한 카드만 나왔을 뿐 실질적 오너인 이재관 부회장 체제를 고수하려는 입장을 거두지 않았다. 겉으로는 ‘전문 경영체제’를 도입하겠다고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도입시기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는 등 오너의 희생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역력했다.

경영실패의 책임을 져야할 이영자 회장과 이재관 부회장이 여전히 이사회 멤버로 남는다는 발상이나 최소한의 ‘성의표시’인 사재출연까지 거부하는 등 오너의 상황판단은 안이하기 그지 없었다.

사실 새한그룹 오너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2월8일 ㈜새한 노조 장유신 위원장과 전국건설노련 이용식 위원장 등은 이재관 부회장과 이영자 회장을 세금포탈, 횡령 등의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이들은 고발장에서 “이 부회장 등이 1996~1998년 이중계약을 통해 200억원대의 회사자금을 횡령하고 서울 모교회 건축자금 33억원을 회사자금으로 편법 증여하는 등 각종 비리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한국 경제의 앞날에 대한 불길한 주장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돌발적으로 터진 새한그룹 사태는 미완의 재벌개혁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다.

조철환 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입력시간 2000/05/26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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