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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들여다보기] 호텔과 로비

워싱턴 DC에는 프리미엄이 붙는 주소가 있다. ‘펜실베니아가 00번지’라는 것이다. 펜실베니아가 1600번지가 바로 백악관이고 이 길을 따라 동쪽으로 가다보면 국회의사당을 만나게 된다.

그 길을 가면서 주변의 웅장한 건물을 눈여겨 보면 백악관에 바로 붙어있는 재무성과 가장 최근에 지은 로날드 레이건 국제무역센터를 비롯하여 법무성, FBI, 대법원 등이 있어 어찌 보면 미국 권력의 핵심이 펜실베니아가를 따라 죽 늘어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유명한 로펌이나 로비회사 등은 비싼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펜실베니아가의 주소가 있는 사무실을 얻으려고 한다.

백악관을 떠나 의사당 쪽으로 한 블록 정도 가면 오래된 석조 건물이 있는데 바로 윌라드 호텔이다.

역시 펜실베니아가의 주소를 가지고 있다. 들어가 보면 색색의 타일로 모자이크 처리된 바닥에 두툼한 카페트가 깔려 있는 로비가 높은 천장을 바치고 있는 굵은 기둥과 함께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바로 그 로비가 ‘로비스트’라는 말을 탄생시킨 곳이다. 남북전쟁 당시 의사당과 백악관 사이에 적당한 장소가 없어 이 호텔의 로비에서 의원과 행정부의 공무원이 만나 의견을 나누었다.

따라서 그들을 자연스럽게 만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자주 이 호텔 로비에 나타나 어슬렁거리게 되었는데 이들을 일컬어 로비스트라고 했다.

아직도 그 전통을 이어가는지 윌라드 호텔의 로비는 언제나 정장을 한 사람들로 북적댄다. 뿐만 아니라 호텔의 식당인 윌라드 룸은 점심시간이면 잘 차려입은 신사숙녀들로 가득 찬다.

개중에는 1996년 대선에서 클린턴을 상대했던 밥 돌 전상원의원 등 전·현직 상·하원의원이나 연방법원 판사들도 종종 눈에 띈다. 높은 천장과 고풍스러운 가구는 19세기 후반의 미국으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며 전형적인 빅토리아 양식으로 중후하게 꾸며져 있다.

이러한 점심 모임의 성격을 반영하듯 아예 의회가 쉬는 추수감사절 휴가나 여름휴가 때는 점심시간에는 아예 문을 닫는다.

윌라드 호텔에는 옥시덴탈 그릴이라는 식당이 또하나 있다. 입구를 들어서면 우선 클린턴 대통령이 웃으면서 맞아준다. 유화로 된 커다란 초상이다. 이어서 카터, 케네디 등 역대 대통령의 초상이 몇점 걸려있다.

식당 내부는 온통 사진들로 도배돼있다. 유심히 살펴보면 미국 정치에 문외한인 사람도 알만한 정치인, 언론인, 방송인, 군인 및 작가의 사진이다. 역시 정치인의 사진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곳 역시 점심 때만 되면 정장한 많은 신사숙녀들이 모여 워싱턴의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다.

이와 같이 미국은 이미 150여년이 넘는 로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워낙 다양한 인종과 문화로 이루어진 사회이다 보니 로비는 필수적인 정치문화의 한 행태로 굳어져 있다. 워싱턴의 로비 단체와 로비스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요사이 가장 주목을 받는 총기 규제에 관한 로비에서부터 서부 사막지역에 있는 인디안 부족에게 카지노 사업권을 인정하라거나 푸에르토리코를 주로 승격시키라는 로비까지 그 내용이나 주체도 다양하다.

하지만 한가지 공통적인 것은 모든 로비스트들은 정부에 등록돼있고 로비 내용 및 비용을 전부 공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음성적 금전거래나 뇌물을 통한 문제해결을 로비라고 생각하는 우리 나라와는 다른 개념이다.

로비스트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 로비에 대한 한국의 부정적 인식을 설명하고 “도대체 미국의 로비스트는 어떤 일을 하느냐”고 종종 물어본다. 그들은 한결같이 “로비는 뇌물공여가 아니라 정보제공”이라고 대답한다.

다양한 이익집단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입법이나 정책결정 과정에 반영시키고 싶어하지만 모든 이익집단이 정책결정 과정의 메커니즘을 충분히 이해하고 못하기 때문에 정보전달자로서 로비스트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입법기관이나 정책결정자도 모든 부분에 걸쳐 전문적 내용을 다 파악하고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로비스트들이 제공하는 정보가 훌륭한 자료로서 도움이 된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이해관계의 반대편에 선 이익집단에서도 똑같이 로비를 하기 때문에 정보가 어느 일방에 유리하게 왜곡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국의 로비스트도 적지 않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적어도 정치 메커니즘에 있어서 윤활유의 역할은 충실히 해내고 있는 것 같다.

박해찬 미 HOWREY 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parkh@howrey.com

입력시간 2000/05/26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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