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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고간 승부사

노름판에서 말하는 ‘석’에 관계되는 일이었다. 운명을 마감할 뻔 했던 제4국에서 웃지 못할 편파판정이 일어나 조훈현의 심기를 건드린 바 있다.

네웨이핑의 응원단이랄 수 있는 현역 중국기사인 화이강이 초읽기를 한 것. “기분이 묘하더라구요. 내가 둘 차례엔 숨막힐 듯 빨리 불러제끼더니. 글쎄, 네웨이핑이 둘 땐 슬로비디오지 뭐예요.”

단장 윤기현은 운명의 제5국에 앞서 기량 이외에 승부에 영향을 미칠만한 소재는 모조리 제거하려고 나섰다.

뿐만 아니라 인근 동남아에 거주하는 교민이 응원단으로 대거 싱가폴로 입성했고 각 신문·방송사 특파원이 집결해 한국응원단에 합세했다. 이제 조훈현은 네웨이핑에 비해 꿀리는 부분이 없었다. 기세에서도 지지 않은 것이다. 하기야 인화(人和), 지화(地和), 시화(時和)가 모두 준수하므로 조훈현은 충분히 힘을 낼 수가 있다.

그의 나이 37세면 천하를 호령할 힘이 있는 나이. 재주가 넘쳐나는 한국인 중 최고의 실력자니 세계를 제패한다고 해서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사람이다.

또 중국 땅보다는 백배는 좋은 싱가폴 땅이 좋은 터. 얼마전 벌어졌다는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에서도 한국에 우승을 안겨준 땅이요, 싱가폴 바둑대회에서도 우리 교민이 우승했다고 한다.

1989년 9월5일 운명의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아마도 바둑계 사상 이렇게 플래시가 폭죽처럼 터진 적이 또 있었을까.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한판이었다.

육중한 덩치가 꼭 별명처럼 반달곰인 네웨이핑이 백돌을 한움큼 올려놓는다. 최종국은 다시금 돌을 가린다는 규정이니 또다시 누가 백돌을 들 것인지가 관심사였다. 모두가 침을 삼키며 네웨이핑의 손바닥 밑의 백돌의 수를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모두 16개.

조훈현은 흑돌 하나를 올려놓았으니 맞추질 못한다. 그럼 흑을 들어야한다는 얘기가 아닌가. 네웨이핑은 간단히 의사를 밝힌다. “백을 주시오.”

조훈현은 당시 흑을 쥐어도 나쁘질 않았다고 한다. 사실 막판에 몰렸던 매치를 극적으로 한판 따라붙은 게 어디인가. 사실 앞선 4국에서도 흑을 들고 당당히 이겼던 바 있다. 그때의 승인이 과연 무었이었는가.

자신을 철저하게 벼랑 끝까지 몰아놓고 사력을 다해 그 사지(死地)를 벗어나려는 의지를 보이자 바둑은 저절로 앞서가고 있었다. 한마디로 조훈현은 자신과의 싸움을 확실히 이기기 위해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사소한 덤 2집의 차이 때문에 바둑을 소심하게 두고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다. 2집이면 승률을 10%는 좌우할 수 잇는 요인. 그러나 그 이득을 과신하다 그르친 경우가 사실 더 많았다. 응씨배에서 치러진 10국을 조사해보니 덤이 7집반인데도 불구하고 흑의 승률이 60%였다.

결국은 자신의 맘을 자신이 챙길 수 잇느냐가 관건이지, 사소한 덤 2집은 문제가 안된다는 결론이다. “그래, 지옥 문턱까지 갔다온 내가 여기서 무얼 망설일 것인가. 맘껏 두어보자.”

낯익은 포진을 들고나온다. 하나는 화점에, 하나는 멀찍이 소목에 두어 또한번 붙어보잔다. 조훈현은 이 포진으로 제2국과 4국에서도 구사한 바 있다. 흑을 들었을 때마다 두었다는 얘기다. 2국에서는 패했고 4국에서는 이겼다. 이 포석마저도 결승을 치르자는 얘기다.

느낌이 온다. 이런 기백이면 조훈현은 자기 바둑을 구사한다. 이기고 지고는 나중 문제다. 승부사의 고집이랄까, 지금도 조훈현은 이창호에게 수없이 같은 포진을 구사하고 패하고 또 달려든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긴다. 독하다. 네웨이핑이 꼬리를 슬슬 내린다. <계속>


<뉴스와 화제>

· 이세돌 32연승에서 스톱

‘불패소년’ 이세돌이 마침내 연승행진을 마감했다. 유창혁 9단마저 꺾어 32연승을 기록해 사상 3번째 대기록을 성공한 후 입단 동기 조한승 3단에게 신인왕전에서 의외의 일격을 맞은 것.

조한승 3단은 17세로 이세돌 못지 않은 기대주인데 작년말 이세돌이 10연승을 기록할 적에도 연승행진에 제동을 걸어 ‘원망’을 받은 적이 있었다. 만일 그 당시 이세돌이 이겼더라면 최고기록인 43연승까지 다다를 수도 있었다.

· 본인방전 서울서 치른다

본인방 조선진이 금의환향하여 서울서 본인방 방어전을 치른다. 5월24, 25일 양일간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대만의 도전자 왕밍완을 상대로 도전 7번기 제1국을 치른다.

일본 타이틀전이 한국에서 도전기를 치르기는 이번이 두번째인데 1985년 조치훈이 기성 타이틀전을 다케미야와 가질 때가 처음이다. 아무래도 한국기사가 타이틀 보유자라서 이런 매치가 결정된 듯.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0/05/2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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