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T-2000] 흔들리는 정책, 국민은 누구를 믿어야 하나

IMT-2000을 향한 레이스가 벌어지고 있다. 사업자 선정이 끝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6개월. 새천년 꿈의 통신 세계를 기대하며 10여년 넘게 준비해온 IMT-2000이 불과 6개월 후면 본격적인 카운트다운에 돌입하게 된다.


정보통신부의 고민

사업자 선정기준 발표가 불과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금, 주무부처인 정보통신부는 아주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 어떻게 정책을 짜느냐에 따라 ‘역사의 영웅’이 될지 아니면 ‘죄인’으로 청문회에 오르게 될 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난 1996년의 PCS 사업자 선정만 하더라도 정권이 바뀐 직후 주요 정책 결정권자들이 모두 공직을 떠나거나 청문회에 서야 했다.

주무부처가 이처럼 고민에 빠져있다 보니 애가 타는 것은 IMT-2000 예비 사업자들이다. 일찍부터 IMT-2000 사업권에 출사표를 던진 기업들은 물론 물밑에서 이를 준비중인 업체까지도 요즘 정부의 눈치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다.

정부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앞으로는 또 어떤 ‘깜짝쇼’를 벌일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는 분위기다. 일부 사업자들은 “정통부보다 재정경제부나 청와대의 심기가 더 중요한 변수가 아니냐”며 아예 ‘바깥 기운’ 살피기에 더 주력하고 있다.

“정부가 주무부처로는 정보통신부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중요한 정책은 바깥에서 나오는 것 같다”며 진원지를 찾느라 여념이 없다. IMT-2000이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사안임에는 분명하지만 이곳저곳 눈치를 살펴야 하는 예비 사업자의 고충은 분명 정통부의 고민, 그 이상이다.


주파수경매제는 비상시의 대비책?

정부와 사업자가 이처럼 보이지 않는 갈등을 겪게 된 첫번째 이유는 주파수 경매제다. 지난 5월16일 안병엽 정보통신부장관이 “IMT-2000 사업자 선정방식으로 주파수 경매제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정부와 사업자간의 갈등은 시작됐다.

특히 ‘정부의 공적 자금 부족’이 공공연한 비밀이 되면서 주파수 경매제는 정부와 사업자 모두에게 ‘뜨거운 감자’가 되기에 충분했던 것. 당초 안 장관의 기자간담회는 IMT-2000에 대한 항간의 무수한 소문과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경매제 불배제론으로 주파수 경매제를 공론화시키며 논란만 증폭시켰다.

통신업체들은 안 장관의 발언이 전해지자마자 경악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여론도 들끓기 시작했고 코스닥 시장에는 정보통신주의 잇따른 하한가로 최악의 상황이 연일 계속됐다. 정통부 자유게시판에는 주파수 경매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이어졌고 ‘장관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도 컸다.

상황이 날로 악화되자 정부는 이번에 슬그머니 한발을 빼는 제스처를 취했다. 지난 19일 안 장관은 APEC 정상회담차 출국하기 하루전 갑작스레 기자간담회를 자청, “주파수 경매제는 원론적 검토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주파수 경매제도 의미있는 변수”라고 주장하던 사흘 전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정통부의 말바꾸기가 이렇다 보니 일부 사업자는 아예 “재경부나 청와대의 눈치를 살피는 게 빠를 것 같다”며 안테나를 바깥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주파수 경매제가 제기된 배경이 ‘정부의 공적 자금 부족’이었고 정통부의 경매제 불배제론은 결국 외풍을 의식한 비상시 대비책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사업자 선정 일정 지켜질까

IMT-2000 예비사업자의 고민은 사업자 선정 일정에서도 계속된다. 정통부가 6월말까지 선정기준을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이 또한 얼마나 지켜질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정통부는 “늦어야 1-2주일일 뿐 전체 일정에는 변동이 없을 것”이라며 선정일정의 확고부동함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자들의 갈증이 여기서 해소될 리 없다. 정부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실제 발표 일정이 6월말이 될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 8월, 9월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모 이동통신업체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6월말에 큰 줄거리는 발표한다 하더라도 구체적인 세부내용 발표를 미룬다면 별 소용이 없다”며 “사업자들은 세부 지침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파수 경매제만 해도 그렇다. 정부가 제안서 심사제로 사업자 선정 방식을 정한다 하더라도 출연금에 대한 세부지침이 완료되지 않으면 사업자들의 불안을 떨치지 못한다. 정책의 이면에 ‘출연금 상한선 폐지’라는 또하나의 경매제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자들은 올 연말 누가 사업권을 따게 될지 모르지만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으려면 선정 일정도 지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선정기준이 흔들리고 일정이 뒤집어지면 사업자의 손실도 커진다는 지적이다.


최후의 딜레마 IMT-2000 표준

IMT-2000 기술표준은 사업자 선정의 마지막 보루다. 국제 경쟁력은 물론 로열티 협상과 통상마찰을 포함, 다양한 외교 현안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IMT-2000 사업자 선정 이슈중 국익과 직결되는 사안이 바로 표준문제다. 정보통신 서비스 및 제조업체들은 표준문제와 관련, 업계의 물밑 정보전이 가장 치열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업계와 정부 모두 눈치 보기를 거듭하며 마지막까지 탐색할 것이란 분석이다.

IMT-2000 표준은 특히 최근 일본 IDO와 DDI가 동기에서 비동기로, 비동기에서 다시 동기로 말을 갈아탄 데서 알 수 있듯이 외교적 협상 의제로까지 비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보통신 업계는 “국내외 여건상 가장 경쟁력 있는 정부 방침은 복수 표준”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복수표준은 IMT-2000 관련 공청회 및 토론회에서 이미 수차례 제기된 내용이어서 업계 일각에서는 정답으로 인정받고 있는 상태.

정통부 역시 “표준에 대해 정부가 공식 발표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라고 밝히며 복수표준을 유력한 대안으로 암시하고 있다. 책임있는 한 관계자는 “정부의 보이지 않는 조정과 업계의 정보전이 무성해질 것”이라고 언급, 복수표준 도입이 당연한 귀결임을 귀띔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정부의 속시원한 대답이 없는 상황에서 참여업체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비동기 두 개, 동기 한 개’로 지침을 정했다”는 것부터 “마지막까지 CDMA 동기식으로 밀어붙일 것”이라는 관측 등 소문과 추측도 무성하다.

고민의 시작은 역시 PCS 사업자 선정 당시로 올라간다. 정부가 CDMA 단일표준만을 허용하면서 퀄컴과의 로열티 협상 등 숱한 문제가 제기됐다. IMT-2000 사업자 선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전세계적으로 비동기 방식이 우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과거 동기방식을 선택했던 ‘원죄’를 지고 있다.

여기에 동기방식의 진원지인 미국의 통상마찰 압력도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사업자들은 정부가 복수표준이나 업계자율을 공식화하든지 아니면 동기와 비동기 중 한가지로 암묵적인 지침을 주든지, 가부간의 결정이 빨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윤경 아이뉴스24 기자

입력시간 2000/05/31 11:22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