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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 상호주의에 입각한 원칙 마련

말도 많고 탈도 많을 것으로 보이는 남북 정상회담 시나리오가 확정되어 가고 있다. 정상간의 만남에 따른 형식과 절차는 남북 양측의 체면과 위신에 직결된 민감한 사안인 만큼 정부가 여기에 쏟는 세심함은 유달리 각별하다.

하지만 회담 직전까지 의전문제 등을 둘러싼 남북간 신경전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상회담 준비기획단은 회담장소 및 일시, 체류일정, 경호, 의전 등 실무사안 대부분을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5월31일 평양으로 출발한 선발대가 북측 실무진과 만나 실무현안을 확정하게 됨에 따라 선발대는 이같이 확정된 실무안을 지닌채 평양으로 향했다.


동등성에 기초한 '주고 받기'

정부는 정상회담 실무 시나리오를 작성하면서 몇가지 원칙을 마련했다. 첫째는 정상회담 형식 등은 양측의 동등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예로 회담장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동시에 입장하거나 초청자인 김 국방위원장이 회담장에서 김 대통령을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상호주의 원칙도 감안됐다. 북측이 남측에 만찬을 마련한다면 남측도 김 대통령 주재 만찬을 할 수 있어야 하고 2-3회의 정상회담 중 적어도 한차례는 남측이 초청자의 입장에서 진행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남북간의 이질성이 현저히 드러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양측이 서로 양보하는 지혜를 발휘하자는 원칙도 세워졌다.

남측은 정서적 거부감이 있는 주체사상탑 등 이념적 조형물을 방문하지 않는 대신 북측을 자극할 수 있는 의전 등을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남북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는 번거로운 일정과 의전이 자연스럽게 제외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을 염두에 두고 남측의 분야별 시나리오를 일별할 경우 가장 관심이 가는 대목은 체류일정이다. 우리측의 체류일정은 정상회담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남측 선발대는 2-3회의 상봉 및 회담 횟수를 우선 확정하게 된다.

북측은 남측 선발대에게 회담 횟수에 관한 입장을 전달할 것으로 보이며 선발대는 서울과 교감한 뒤 남측의 방안을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남측은 3회의 회담을 선호하고 있다.


일정, 분단위로 확정

선발대는 김 대통령의 체류일정 잠정안을 기초로 실제상황을 가정한 뒤 리허설을 벌일 계획이다. 김 대통령의 동선을 그대로 재연해 이동시각 등을 재고 경호 포인트를 확정하는 이 작업으로 김 대통령의 일정은 분(分)단위로 확정된다.

김 대통령의 일정을 분단위로 확정하는 것은 돌발적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 북측이 일정에 관한 특별한 요구를 해올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1998년 10월과 1999년 10월 이뤄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김 국방위원장의 면담이 예상치도 못했던 시간(밤 10시)과 장소(함흥)에서 진행된 점을 감안하면 이럴 수 밖에 없다.

선발대 활동을 통해 김 대통령의 방문지도 최종 선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평양 일원을 방문할 경우 역사성, 민족적 동질감을 고려해 방문지를 선택하겠다는 입장이다. 평양 인근의 고구려 고분과 을밀대, 부벽루 등 유적지가 방문지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체류일정 못지않게 예민하게 다뤄질 분야는 회담, 만찬 등과 관련한 실무절차.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릴 것으로 보이는 정상회담에서 양측 정상의 입장순서, 악수, 좌석배치, 인사말, 포토세션 등이 민감하게 조율될 것 같다.

초청자인 김 국방위원장이 미리 와서 김 대통령을 맞을 것인지, 비교적 단신인 김 국방위원장과 김 대통령의 악수하는 모습을 어떻게 연출할 것인지, 배석자는 몇 명으로 할 것인지, 사진기자들에게 어떤 표정으로 악수를 할 것인지 등을 양측 실무진이 고민하고 있다.

양측은 이러한 장면을 연출하면서 국제적 관례를 참고하되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해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양측 정상이 동시에 입장하고 반가운 표정으로 악수를 나누는 장면이 연출될 공산이 큰 것으로 보인다.

또 남측 요구대로 남측 주최의 정상회담 및 만찬이 개최된다면 어느 장소에서 개최되고 어떠한 북측 인사가 초청될지 등도 관심거리다.

국제적 관례에 따르면 방문측 정상이 묵는 숙소나 제3의 장소가 회담장으로 선택되고 있어 김 대통령의 예상 숙소인 백화원초대소나 평양 일원의 호텔에서 회담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또 김 대통령 주최 만찬이 마련된다면 평양 고려호텔 등 1급호텔에서 진행될 확률이 높다.


영접 등 의전문제가 관건

한편 남북 양측은 정상회담 배석자를 자유롭게 선정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이 반드시 대칭되는 인물을 배석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에 양측 정상은 회담 내용과 관련 있는 인물을 배치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측에서는 김용순 비서가, 남측에서는 박재규 통일장관, 황원탁 청와대외교안보수석 등이 유력시된다.

아울러 의전 문제 전문가들은 양측이 가장 신경을 곤두세울 대목으로 영접 등을 둘러싼 의전문제을 꼽고 있다. 김 대통령이 순안공항에 내릴 경우 어떤 비중의 북측 인사가 영접하며 영접절차는 어떤 내용일지 등에 대한 협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순안공항에 나올 북측 인사는 홍성남 총리, 김용순 노동당대남비서가 유력하며 영접행사는 북측인사들과의 간단한 악수 및 환담 등으로 제한될 공산이 크다. 예포나 의장대 사열, 국가 연주 등은 생략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이 국가간의 관계가 아니라 특수관계라는 점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회담장에서는 양측의 국기는 전혀 배치되지 않게 된다. 김 대통령에 대한 경호업무의 경우 근접경호는 남측이, 외곽경호는 북측이 맡는 방식으로 손쉽게 교통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남측 선발대 단장인 손인교 남북회담사무국장은 “북측은 준비접촉 과정에서 ‘김 대통령을 최상의 예우로, 최대한 편히 모시겠다’고 여러차례 공언해온 만큼 체류일정과 의전 등을 둘러싼 심각한 신경전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30년간 남북회담을 통해 ‘방문측은 초청측의 안내에 따른다’는 전통을 세워온 만큼 이번에도 이러한 관례를 지키면서 남측의 입장을 반영시키겠다고 덧붙였다.

이영섭 정치부 기자 younglee@hk.co.kr

입력시간 2000/05/3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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