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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나" 여권은 벌써 차기게임

16대 총선 이후 여권에 새롭게 부는 바람이 하나 있다. 바로 ‘차기 대권 바람’이다. 선거기간 간간히 나왔던 ‘차기 대망론’이 곳곳에서 공공연히 터져나오고 있다.

여권의 맹주인 김대중 대통령 자신이 차기와 관련해 터닦기를 하고 있다는 징후도 여러 곳에서 보이고 있다. 요즘 여권 인사들이 모인 자리의 최대 화제는 차기 문제다.

시기적으로만 따져보면 현재의 차기 논의는 분명히 ‘과속’이다. 김 대통령의 임기가 3년 가까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차기 논란은 곧바로 김 대통령의 통치권 누수로 이어져 조기 레임덕을 낳을 소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전 정권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벌어질 해의 초입에서나 차기 문제가 공론화할 정도로 조기 차기 구도 논의는 금기시됐었다.

그러나 현 여권은 이전과 분명히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적극적으로 차기 논의를 부추기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를 막무가내로 막으려 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김 대통령의 직계 사단인 동교동계 인사들 조차 “지금 차기를 말할 때냐”며 짐짓 정색을 하면서도 관심을 감추지 않는다.


DJ, 절묘한 용병술로 레임덕 방지

왜일까. 우선 김 대통령으로선 “누가 뭐래도 임기말까지 여권은 내가 얼마든지 장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김 대통령은 임기만료 1년여를 앞두고 레임덕에 빠졌던 김영삼 전대통령과는 다르지 않겠느냐” “김 대통령은 권력재창출을 위해 ‘나를 밟고 가라’고 할 수 밖에 없었던 5·6공 대통령들과 달리 차기 대선까지 여권을 확실히 장악, 대선에서 적극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게 여권 핵심 인사들의 전언이다.

김 대통령의 독특한 용병술도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김 대통령은 누구에게도 힘을 집중시키지 않고 이를 철저히 분산시키는 용인술로 유명하다. 차기 문제에 있어서도 조기에 특정인에게 힘이 몰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역으로 일찍부터 여권 내에서 여러 사람이 경쟁을 벌여 누구도 우월적인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게 김 대통령의 의도가 아니냐는 시각이다.

다음으로 여권이 처한 정치역학적 현실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다음 대선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는 호남·충청권의 지지를 기본적으로 얻고 영남권의 거부감을 희석시킬 수 있는 인물이 주자로 나서야 하는데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인재풀을 미리부터 넓게 확보해 놓기 위해 차기 논의를 방임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배경이야 어떻든 현실 정치판에선 이미 10명에 가까운 중진 정치인이 자천타천으로 여권의 차기 구도와 관련해 지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중 가장 앞서 있다는 평을 받는 사람은 이인제 상임고문. 15대 대선에 출마해 얻은 500여만표가 고정자산이다.

여기에 지난 16대 총선서 민주당의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던 충청권에서 무려 8명의 당선자를 내 ‘이인제 바람’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확실히 입지를 굳혔다. 그는 민주당 선대위원장을 맡으면서 총선을 전후해 김 대통령과 여러 차례 독대할 기회를 갖기도 했다.

이는 그에게 김 대통령과 인간적인 신뢰관계를 쌓을 수 있는 잇점을 안겨주었다. 이 고문이 동교동계의 장형인 권노갑 상임고문과 가깝게 지내는 것도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권 고문은 사석에서 이 고문을 “무척 예의바른 사람”이라고 칭찬하는가 하면 “하루에 한번 정도는 꼭 연락한다”고 스스럼없이 밝힌다.


자천타천으로 ‘대망’품어

이 고문이 ‘공인된’ 차기주자라면 당내의 세는 이 고문보다 오히려 더 강할지 모르나 스스로는 전혀 차기주자 티를 내지 않는 ‘다크호스’가 있다. 바로 동교동계 핵심중 한 사람인 한화갑 지도위원이다.

한 위원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가 어떻게 차기감이 되느냐”고 말한다. “김 대통령이 호남 출신이기 때문에 다음 대통령은 절대로 호남이 될 수 없다. 따라서 호남 출신(전남 신안)인 나는 차기를 생각할 수도 없는 사람이다”라는 게 그의 얘기다.

그러나 당내에선 “한 전총장의 잠재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5월22일 민주당 총무 경선에 나섰던 한 의원은 “총무경선 득표를 위해 지방을 두루 다녔는데 의외로 한 전총장의 지지자들이 적지 않더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당장 경선이 치러진다면 이인제 고문보다 어쩌면 한 전총장이 더 많은 득표를 할지 모른다”면서 “한 전총장 자신은 부인하지만 주변 사람에 의해 대통령후보 경선전에 나오는 상황도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 외에 공인된 차기 주자감으로는 수도권에서 김근태 지도위원과 정대철 당선자, 영남권에서 노무현 김중권 지도위원을 들 수 있다. 김근태 의원은 ‘개혁적 클린맨’, ‘재야투사로서의 민주화 경력’ 등을 앞세워 당내 소장파의 적잖은 지지를 얻고 있다. 김 의원 본인도 최근 경제 문제에 대해 자주 깊은 관심을 표명하는 등 대권주자감으로서의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대철 당선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DJ의 꿈나무’중 한 사람으로 여겨져왔던 대권후보감. 현정부 초기 사정작업의 그물에 걸려 이미지를 크게 상했지만 16대 총선에서 고토를 회복함으로써 다시 꿈을 펼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9월 전당대회 이후 ‘변수’많아

노무현 의원과 김중권 전 청와대비서실장은 민주당의 최대 약점중 하나인 영남권에 어필할 수 있는 후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노 의원은 선거과정에서부터 이미 공공연히 차기에 대한 희망을 피력했으나 낙선함으로써 기세가 한풀 꺾인 듯 하다. 김 전실장의 경우 여권내 TK세의 대표주자로서 역시 차기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으나 역시 낙선한 게 부담이다.

하지만 김 전실장은 지역구 재검표를 통해 부활할 여지가 남아 있어 주목된다.

이들과 함께 여론의 주시를 받는 인물은 이한동 총리서리와 정몽준 의원, 고건 서울시장 등이다. 이 총리서리는 자민련 소속이어서 민주·자민련 양당의 합당이 전제되지 않는 한 여권 대권주자로 나서기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 총리서리의 측근에 따르면 이 총리서리 자신은 궁극적으로 양당이 합당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알려졌다. 따라서 앞으로 이를 위해 이 총리서리가 어떻게 움직이느냐를 주시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정몽준 의원은 최근 민주당 입당설이 나돌면서 여권의 차기 구도와 관련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아직 미정상태이긴 하지만 그의 여권 합류 가능성은 여전히 농후해 이것이 현실화할 경우 당장 9월 전당대회에서의 최고위원 경선에서부터 ‘파란’이 일어날 개연성도 충분해 보인다.

고건 시장은 여권내 호남세력에 의해 “호남이 그냥 물러설 수는 없지 않느냐”는 차원에서 차기주자감으로 거론된다. 일부에서는 “고 시장 본인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호남출신이라는 점이 오히려 고 시장에게는 최대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신효섭 정치부 차장 hsshin@hk.co.kr

입력시간 2000/05/3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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