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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는 이미 '제2의 IMF'

금융권에 대한 극도의 불신, 돈흐름 완전차단

‘피그말리온’(Pygmalion),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키프로스의 왕이다. 신화에 따르면 피그말리온은 조각의 명인이었는데 어느날 자신이 직접 상아로 조각해 만든 여신상의 아름다움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피그말리온은 밤과 낮을 계속해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상아로 된 조각상을 인간으로 만들어달라고 간청했다. 피그말리온의 정성에 감복한 아프로디테는 마침내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피그말리온은 그 여인과 결혼해 파포스라는 딸을 낳았다.

심리학자들은 간절한 기도로 조각상을 사람으로 만든 피그말리온의 전설을 본따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즉, 부모나 교사 등 후원자가 높은 기대를 갖고 간절히 원하는 것만으로도 자녀나 학생은 힘을 얻어 훌륭한 성적을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


시장 불신, 유동성 위기로 번져

그런데 한국 경제에도 ‘피그말리온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불과 1~2개월 전부터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한국 경제가 불안하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퍼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경제 불안이 현실화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0년 1·4분기중 실질 GDP는 12% 이상 성장했지만 이후 금융시장에 불안감이 팽배해지면서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마침내는 대기업의 유동성 위기로까지 번지고 있다.

실제로 요즘 금융시장은 분위기로만 볼때 ‘제2의 IMF’상황이나 다름없다. 2000년 1월4일 1,059.04로 출발했던 종합주가지수는 ‘IMF 주가’인 650선까지 하락했으며 삼성, LG, SK그룹 등 ‘3대 그룹’을 제외하고는 회사채 발행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처럼 금융불안이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 바로 불신감이다. 한국·대한투신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이 지연된데다가 현대투신의 보유주식 매각과 증자를 골자로 한 자구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냉담해지면서 ‘일단 돈을 챙겨놓고 보자’는 극도의 불신이 금융시장에 흘러넘치고 있다.

더구나 7월1일 시행예정인 채권 시가평가제와 임박한 은행권 구조조정에 대한 의구심은 ‘돈의 흐름’을 완전히 차단해 버렸다.

금융시장의 막연한 불안은 실물로도 번지고 있다. 삼성의 위성그룹인 새한그룹이 워크아웃에 내몰렸고 “설마”하던 현대그룹의 위기도 현실로 다가왔다.

특히 지난 3월말 ‘왕자의 난’으로 시장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린 현대그룹은 제2금융권의 무자비한 여신회수가 이뤄지면서 현대건설, 현대상선 등이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져있는 상태다.


설마하던 현대그룹 위기, 현실로

이에 따라 정몽헌 현대회장이 최대재벌의 총수라는 자존심을 구기고 5월26일 주채권 은행인 외환은행을 찾아가 김경림 행장을 만나 긴급 구조요청을 해야 했다. 정부 당국과 채권은행도 일단은 ‘현대그룹 사태’의 조기진화로 방향을 잡고 있다.

정부와 채권단은 5월26일 현대건설 등에 강도높은 자구노력과 지배구조 개선을 전제로 최소 4,000억원의 자금을 긴급 지원키로 했다. 현대그룹의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은 현대상선과 현대건설에 당좌대월한도를 증액하는 방식으로 각각 500억원씩 총 1,000억원을 지원했고 한빛, 조흥, 주택은행 등도 각 500억원씩을 지원키로 했다.

현대그룹도 구조조정 차원에서 2003년까지 마무리하기로 했던 현대중공업 등 계열분리를 올해말까지 모두 완결하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경영일선에서 완전 퇴진키로 했다.

하지만 한번 신뢰를 잃은 현대에 대한 시장의 분위기는 여전히 냉랭하다. 이용근 금감위원장은 5월27일 “현대문제는 정몽구-몽헌 형제의 경영권 다툼에 따른 신뢰도 추락에서 기인한다”며 정 명예회장의 완전 퇴진은 물론 자금난에 책임이 있는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이창식 현대투신 사장 등 경영진의 교체를 요구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최근의 상황이 ‘심리적 위기’에 불과하지 않으며 본질적 상황변화와 지지부진한 구조조정 때문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경상수지 흑자가 2000년 들어 대폭 감소하고 있으며 올 들어 산업생산의 증가속도가 둔화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4분기중 산업생산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3.4%나 증가했지만 월별기준으로는 1.03%(1월), -0.9%(2월), -1,7%(3월)로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서 평가절하 움직임도

한국 경제에 대한 국제 금융시장의 평가절하 움직임도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변화다. 국제적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우리나라의 구조조정에 대한 부정적 견해와 함께 위기재연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고 미국의 신용평가기관 톰슨뱅크워치가 한빛, 조흥, 외환은행 등 국내 은행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또 지난해 이후 줄곧 안정세를 지켜온 외평채 가산금리도 미국의 금리인상과 동남아 경제의 불안이 맞물리면서 4월말 이후 급상승하고 있다. 5월17일 현재 5년만기 외평채 가산금리는 1.796%로 1999년말(1.090%)에 비해 0.7%포인트 이상 높아진 상태이다.

신경제의 거품을 걷어내기 위해 미국이 고금리 정책을 펴고있는 것도 한국 경제가 단순히 심리적인 요인때문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미국은 인플레를 견제하고 자본의 미국내 유입을 촉진하기 위해 지난해 6월이후 연방기금 금리를 6차례 인상(4.5%→6.5%)하면서 세계의 고금리현상을 선도하고 있다. 이는 침체된 국내 증시의 유일한 지지세력인 외국인 투자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가능성을 그만큼 높여주고 있다.

한국 경제를 흔드는 원인이 정부 주장대로 ‘심리적’인 것인지, 아니면 일부의 우려대로 본질적이고 중대한 상황 변화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느슨해진 분위기를 다잡아야 할 때인 것만은 틀림없다.

조철환 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입력시간 2000/05/3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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