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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스타열전⑬] 안철수 바이러스 연구소(下)

안철수 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 소장의 사업 구상에는 한점의 티도 보이지 않는다. 순수하고 깨끗하다.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면 일반인에게 백신을 무료로 나눠주는 안소장의 고집스런 경영철학에 고개가 쉽게 끄떡거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직원 70여명의 생계를 책임지는 최고경영자가 아닌가? 눈앞에 큰 수익을 보고도 못본체 한다면 이미 최고 경영자의 자격이 없다.

그러나 안소장은 그런 비판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머리 속에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일반인에게 돈을 받고 백신을 팔면 당장은 수익을 올릴 수 있겠지만 그럴 경우 우리 사회 전체로는 몇 천억원의 피해를 보게 됩니다.

개인 컴퓨터가 안전해야 정부나 기업, 사회 전체가 안심할 수 있어요. 개인에게 무료 배포하는 것도 결국은 백신을 산 기업·정부를 도와주는 셈이지요.”

IT TIMES의 이성복 기자는 “안철수 연구소가 일반인에게 돈을 받았다면 300억원쯤은 벌었을텐데 그 욕심을 버렸기 때문에 존경받는 기업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파이를 먼저 키운' 경영철학

소프트웨어를 굳이 돈주고 사지 않았던 1988년께 안소장이 개발한 백신을 PC통신에 띄워 누구든지 쉽게 다운로드받게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후 오랫동안 외롭게 새 버전을 개발해온 그가 사업 차원에서 연구소를 차린 것은 1995년 3월.

그의 고집이 나온 것은 그 때부터다. 재정적 어려움이 연구소를 덮쳤으나 무료 배포의 고집을 꺽지 않았다. 미국 맥아피사가 1997년 1,000만 달러에 연구소를 팔라고 제의를 해왔지만 역시 거절했다.

“첫 3년간은 정말 힘들었어요. 얼마라도 받고 팔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어요. 그러나 그럴 순 없었어요. 한글과컴퓨터를 보세요. 처음엔 돈을 많이 벌었으나 지금 남의 손에 넘어가 있잖아요. 한컴도 개인에게 프로그램을 무료로 배포했으면 시장이 더욱 커져 몇년전의 그 아픔은 겪지 않았을 겁니다.”

그의 판단은 정확할 것이다. 안 연구소가 백신은 물론 바이러스 캘린더(특정한 날짜에 출몰하는 바이러스 목록을 기재한 달력)를 만들어 무료 배포했으나 1999년에만 무려 5배 성장했다.

백신 무료 배포가 시장을 그만큼 키워놓은 탓이다. ‘파이를 먼저 키워야 한다’는 그의 경영철학은 미국의 와튼스쿨(펜실베이니아 경영대학원)에서 배운 것. 그는 그곳에서 벤처기업 경영에 필요한 테크노 NBA(기술공학석사)학위를 받았다.

한때 “벤처기업의 90%는 망할 것”이라는 발언으로 심한 설화를 겪었던 그가 최근 날개없는 추락을 계속하는 첨단기술주의 장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 할 조정단계입니다. 벤처업계의 체질개선에 도움이 되겠죠. 여전히 벤처의 앞날은 밝습니다.”


"벤처기업은 벤처 다워야"

그러나 현재의 벤처모델에는 불만이 많다. “벤처기업이 너무나 영업외 이익에 몰두하고 있다”는 게 최대 불만사항. 핵심 역량을 강화하는 쪽에 자금과 인력을 쏟아붓지 않고 자기 분야와 전혀 무관한 곳에 투자하거나 인수합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경영마인드는 스스로 자기 사업에 성공할 자신이 없다는 반증이라고 그는 단정했다. “벤처기업은 벤처다워야 합니다. 우선적으로 영업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주력해야지요. 그리고 그 이득을 조직 구성원과 골고루 분배한다는 2개의 원칙에서 벗어난다면 욕먹는 재벌기업과 뭐가 다릅니까?”

그는 벤처업계에서 못말리는 원칙주의자다. 더욱이 누구보다 인생을 치열하게 살았고 그러다가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다온 그가 더 심한 말인든 못할까 싶다. 죽음의 문턱까지 간 사연은 이렇다.

1995년 3월 창업을 한 뒤 와튼스쿨로 유학을 떠났다. 사업을 시작했으면 제대로 해야한다는 생각에서다. 유학 2년간 공부하랴, 바이러스 연구소 챙기랴, 두가지 일을 하다보니 이틀에 하루꼴로 밤을 새워야 했다.

테크노 NBA를 받고 귀국한 게 1997년 10월 30일. 가족의 안부를 물을 틈도 없이 바이러스 관련 세미나장으로 달려갔다.

이튿날을 세미나장에서 씨름한 뒤 집으로 돌아와 쓰러졌다. 급성간염. “복수가 차고 하늘은 노랗고,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환자복을 입고 병실에서 밖을 내려다 보면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다행히 차도가 좋아 3개월만에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었다.

그의 병은 1988년부터 7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3시부터 6시까지는 바이러스 퇴치 프로그램 개발을, 오전 8시부터 밤 9시까지는 의대 공부를 하는 이중생활을 한데 따른 결과였다. 미국에서도 이틀에 한번꼴로 밤을 새웠으니 강철로 만들어진 몸이 아닌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사업다각화와 네트워크화가 과제

주변에서는 그를 천재라 부른다. 의학공부 하나만 제대로 하더라도, 또 바이러스 퇴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만으로도 천재 소리를 들을텐데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그는 손을 내저었다.

“일본에 히로나카 헤이스케라는 천재적인 수학자가 있어요.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드상 수상자인데 그가 이런 말을 했어요. ‘나는 재능이 없는 사람이어서 남보다 항상 2~3배 시간을 들일 각오를 하고 있었다.’ 스스로는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믿었는데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어요. 인생의 스승으로 삼고 있지요.”

경영방식에서는 조직력이 강한 마이크로소프트사와 인본주의 경영이 돋보이는 휴럿 패커드, 철저한 리스크 관리 경영으로 유명한 앤디 그로브의 인텔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고객 감동과 스피드 경영, 해외 진출 등 3가지 경영 원칙을 정한 안 연구소의 당면 과제는 백신 기술을 기반으로 한 사업 다각화와 네트워크화다.

이미 데스크톱 컴퓨터의 정보를 암호화하는 보안 시스템인 앤디(EnDe)를 개발, 첫걸음을 순조롭게 뗐고 보안회사 코코넛을 중심으로 한 종합 보안 서비스 네트워크 사업도 순조롭다. 리눅스 관련 합작법인인 아델리눅스를 통해서는 소프트웨어, 솔루션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또 IBM쪽에서 해외사업 경험이 많은 이경봉 사업본부장을 부사장으로 영입, 중국과 일본, 미국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한의사 전창선이 본 안철수

안철수 소장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벽돌 부수기’등 게임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강인한 승부욕 또한 그만이 갖고 있는 것이다.

안소장은 고등학교 시절이나 지금이나 광적으로 책을 읽는다. 수업시간에 가끔 허리를 펴고 머리가 조금 숙여진 부동자세를 취하곤 했는데 얼핏 보면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으나 사실은 책상 밑으로 SF소설을 읽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책을 읽으면서 삶에 대해 보다 넓은 이해와 통찰력이 형성된 것 같다. 그의 도덕적 판단력과 겸손의 미덕은 이처럼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처음에 그렇게 돋보이지 않았다. 고3이 되면서 두각을 나타내더니 서울의대에 합격했다. 그 과정은 안 소장의 공부나 일처리 방식을 보여주는데 이를테면 집을 지을 때 기초공사에 시간과 공을 들인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기초를 튼튼히 한 뒤 일을 시작해 효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뚝배기가 냄비에 비해 늦게 끓지만 일단 데워지면 냄비에 비길 바가 아닌 것과 같다. 안소장은 공부든, 바둑이든, 컴퓨터든 모두 같은 방식으로 접근했다.

그는 특유의 공부 방식으로 컴퓨터 언어를 분석, 파악하고 익혔을 것이므로 바이러스의 감염이나 진행, 경과를 누구보다도 명확히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안 소장은 컴퓨터 바이러스에 관해서는 코흘리개 어린 애의 유치한 질문이라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일일이 답변해준다. 남의 부탁도 좀체로 뿌리치지 못한다.

연구소를 차린 후 그 바쁜 와중에도 고장난 486 컴퓨터를 고쳐주곤 했다. 거절을 못하는 천성 탓이다. 이제는 제 잘난 맛에 좀 뻐길 때도 됐는데 여전히 겸손하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2000/05/31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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