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탐구] 해충퇴치 전문가 최장호씨

“바퀴벌레만 눈에 띄었다 하면 아줌마들은 당장 손으로 탁탁 때려잡잖아요. 하지만 저는 절대 아무데서나 죽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발로 통통 튀겨서 슬쩍 옆으로 보내주지요. 왜냐면 그게 다 우리 재산이거든요.”

말한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함께 소리내어 웃었다. 일명 바퀴벌레 퇴치전문가 최장호(35). 말 그대로 바퀴벌레 잡기가 본업이자 특기다.

방역회사에서 출발한 지 8년간에 쌓은 노하우로 이젠 식당에 가도 자신도 모르게 ‘뭔가 톡 쏘는 듯한 바퀴벌레 서식지 특유의 냄새’를 감지할 수 있고, 방안에 한발만 들여놔도 바퀴벌레가 숨은 곳이 속속 눈에 들어온다.

“바퀴벌레는 3억5,000만년을 살아온 해충입니다. 그것도 원래의 형태와 거의 별 변화없이 그대로 존재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3억5,000만년은 더 너끈히 살고도 남을 끈질긴 벌레죠. 우리 주위에 바퀴벌레가 늘어난 것은 최근 우리 생활 수준이 높아진 이유도 있고, 한동안 ‘돈벌레’라고 해서 잡지 않고 방치해 온 탓도 있습니다. 왜 돈벌레냐면 대개 난방시설이나 입식시설이 잘 된, 주로 잘 사는 집들에서 자주 나타났거든요.”


바퀴벌레에 관한 한 ‘일당 백’

현재 로취버스터즈 한마음환경이란 해충퇴치전문회사를 운영중인 그는 사장이면서 직접 현장도 뛰는 전문가다. 가정, 학교, 식당 등 바퀴벌레가 끓는 곳이면 어디든 출장 박멸해준다.

몇 해전엔 ‘약품엔 누구보다 밝을’ 식품의약청에서도 자체적으로 살균제나 살충제를 쓰고도 안 되었던지 그에게 구제를 요청, ‘싹 쓸어주고’ 왔다.

한번 작업했다 하면 제거효과 99.9%, 유효기간 최소 6개월에서 1년까지 장담하는 최씨지만 의외로 그의 장비는 단출하다. 한 웅큼 정도의 반고체성 약품과 우산살을 고쳐 만든 작은 도포용 막대, 랜턴, 광고전단 등이 든 소형가방 하나가 전부. 그럴 듯한 철제 소독통 하나 없이도 일당백이다.

그 비결은 그가 직접 조제한 약품 100g안에 들어 있다. 행여 비법이 누출될세라 서울 방배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 약품창고에서 불도 꺼놓고 다른 직원들의 눈조차 피해 숨죽이고 만들어낸다는 황갈색의 물질. 심지어 부인에게조차 기밀이다.

“사실 특별한 재료도 없어요. 인체에 무해한 기존의 바퀴제거용 약품을 기본으로 사람이 맛있게 먹는 것들중 약 30가지의 식품을 약 30가지의 방법으로 배합하는 거예요. 예를 들자면 멸치가루같은 것도 들어가죠. 단 한가지로만 계속 쓰면 또 내성이 생겨서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약 1주일마다 주기적으로 성분을 계속 바꿉니다.

사실 시중에 나오는 바퀴박멸제품이 옛날보다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도 이미 바퀴벌레들에게도 내성이 생겨서 그런거거든요. 문제는 바퀴벌레를 얼마나 잘 유인하느냐에 달렸지, 약제 자체의 살충효과가 약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바퀴벌레가 얼마나 맛있게 먹게 하느냐, 그게 관건입니다.”


“식용유 많이 쓰는집에 바퀴가 많더군요”

바퀴벌레의 행동 반경은 사람의 눈에 띈 지점으로부터 멀어봐야 3~4㎙이내다. 한번 집을 지으면 절대 그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 없다. 집을 짓는 곳은 주로 좁은 틈새와 같이 은폐된 장소와 먹이, 물이 있는 곳으로, 이같은 일련의 기초 지식들은 최씨가 갖가지 자료와 실제 현장조사를 통해 얻은 것들이다.

연구 초창기엔 직접 평촌의 한 임대아파트 등 몇몇 아파트 단지를 찾아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관찰 결과, 바퀴벌레가 많은 가구는 몇가지의 두드러진 특징을 보였는데, 대개 아기를 키우는 집이거나 식용류를 많이 쓰는 집이더라는 것이다.

요컨대 아기 분유나 기름류가 바퀴벌레를 꼬이게 하는 주요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직접 바퀴벌레 유인물질을 만들기 시작해 스스로 배합한 시약을 처치해본 뒤 약효에 확신을 얻으면서 본격적인 해충퇴치전문가로 독립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이젠 어느 곳에 가든 바퀴냄새부터 자동으로 맡는다. 평소엔 비위좋은 그지만, 가끔 ‘실력’을 보여주고 싶은 동행이 있으면 마치 투시력을 가진 점쟁이처럼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까지 한순간에 들춰내 이따금 ‘얄궂은 솜씨’를 과시할 때도 있다.

개중엔 달력, 액자뒤에 숨은 것은 물론 심지어 냉장고 문틈 완충고무 사이나 밥통 내부에 있는 것도 찾아낸다. 이것이 가전제품안에 진을 칠 땐 합선과 접촉불량 등 갖가지 고장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중국 음식점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바퀴벌레 천국. 요리의 특성상 주방 곳곳에 남아있는 기름기 때문에 바퀴에겐 최상의 서식지다. 그러면서도 거의 매일 먹다시피 중국음식을 애용하는 최씨는 아예 자신의 회사와 단골로 거래하는 음식점은 일찌감치 ‘청소’를 해 준 뒤 마음놓고 주문, 식사중이다.


내성 생겨서 일반약은 효과 떨어져

고려대 보건행정학을 전공, 대학졸업후엔 잠시 광고사업을 하다가 2년만에 빚만 안고 손을 털었다. 그 후 원래의 전공을 살려 1993년 방역회사로 회귀, 아파트나 공장 등 위생상 의무조항으로 되어 있는 기존의 방역작업을 통해 기본기를 닦았다.

소독통을 들고가 약 2~3분 동안 분무하면 작업끝. 방역회사의 약품은 그 자체로 충분한 해충퇴치 효과가 있지만 문제는 너무 짧은 시간의 소독으로 제 효과를 충실히 낼 수 없다는 것. 턱없이 낮은 소독비에다 대부분 열악한 방역회사의 사정때문에 빚어지는 결과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주민들로부터 해충 극성에 대한 하소연이 잦아들었다. 그때부터 하나 둘씩 관련자료를 찾기 시작했는데 국내는 물론 가까운 일본조차 제대로 정리된 자료가 없어 미국 네브라스카대학이나 유타대학 등의 연구논문까지 뒤졌다.

그리고 나름의 아이디어와 그간에 모은 자료들을 토대로 자작 개발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출장 퇴치를 위해 가정을 돌다보면 저마다 처방한 바퀴벌레 퇴치법도 천태만상. 세간에 특효약이라고 소문이 난 것이면 거의 빠짐없이 모든 가정에 등장했다.

옆집에서 권하더라며 연막탄을 피우거나 붕산을 뿌린 집, 또는 은행잎을 깔아 놓은 집, 최근엔 해충퇴치기를 설치한 집도 심심찮게 보이고, 특히 시중에서 파는 부착식 퇴치약은 어느 가정이든 없는 곳이 없다. 분무형, 튜브형 제품도 자주 눈에 띄는 것들이지만, 최씨에 따르면 그 효과는 회의적.

“바퀴벌레라고 바보가 아닙니다. 연막탄을 피우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연기를 피해 다들 도망가지 그 자리에 있지 않거든요. 연막에 죽는 건 전체의 100분의 1도 안됩니다. 은행잎의 경우에도 오히려 그 잎들 사이에 알을 까고 사는 바퀴도 봤습니다. 효과가 없다는 거죠.

고주파 해충퇴치기도 그 자체론 성능이 좋지만 그 주위만 피한다 뿐이지 그 바퀴가 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근본적인 퇴치법은 모아서 죽이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일반 시중에 나오는 것들은 이미 내성이 생겨서 약효가 떨어지고 있구요.”


복지시설등에 무료 퇴치작업

때로는 바퀴를 꾀려고 발라둔 약품을 멋모르고 사람이 먹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반고체 타입인 이 황갈색 약품이 굳으면 외형상 과자와 비슷하다. 이것을 과자로 오인한 한 아이가 멋모르고 약품 덩어리를 먹어 그 부모가 사색이 되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최씨의 약품 주성분은 히드라메칠론으로 쉽게 말해 그 원액의 독성이 소금보다 낮다고 할 만큼 의학적으로도 안전성이 입증된 거의 무독성 약품.

최씨 자신이 일부러 시식해 본 경험도 있다. 또 언젠가는 애완견이 있는 어느 가정에서 작업을 하고 돌아오자마자 얼마 뒤 그 애완견이 갑자기 비실거리며 죽어간다는 다급한 전화가 날아들기도 했다. 연락을 받고 가보니 사정을 모르는 개주인이 그사이 ‘살충제’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으로 오히려 자신의 약품보다 훨씬 독성이 강한 물질로 위세척까지 마친 상태였다.

처음엔 ‘당신이 뭘 알겠느냐’며 사뭇 고자세로 나오던 수의사였지만 그가 정확한 약품성분을 알려주자 퇴치약의 무해성을 인정했다. 이렇듯 가끔은 뜻하지 않은 낭패를 보는 일도 많다.

“얼마전엔 한 영구 임대아파트에 갔는데 알콜중독자인 아버지에 어머니는 가출해서 없고 초등학교 4학년과 1학년 두 딸, 이렇게 부녀 셋이 사는 집이었어요.

아버지는 어쩌다 돈이 생겨도 곧장 술이나 사 마실뿐 집안살림은 얼마나 황폐하게 내버려뒀는지 단 14평짜리 집의 바퀴벌레를 잡는데 소독용 분무기 세 통을 뿌려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온 천지가 바퀴에다 슬쩍 이불만 들춰도 그 안에서 우글거리더라구요. 그땐 저도 오싹하더군요.”

형편이 어려운 양로원과 보육원 등 복지시설 등엔 요청에 따라 무료 작업을 해주거나 약품을 보내주는 최씨.

현재 52개팀으로 구성된 그의 업체는 무허가업소까지 합치면 3,000여개의 업체가 과당경쟁을 벌이고 있는 해충박멸 분야에서 그 운영형태가 독특한 ‘웃기는 회사’다.

그와 함께 뛰는 전문가들은 이름만 직원일 뿐 모두 프리랜서 사장격. 기존 방역회사에 비해 평균 나이와 사장의 수익배당율이 현저히 낮을 뿐더러 사장조차 자기 발로 뛰지않으면 가져갈 소득이 많지 않게 돼 있다.


“방역방법 바꾸어야 합니다”

그는 수요의 주종을 이루는 바퀴벌레외에 개미와 벼룩, 지네, 이 등 해충 전체를 취급하는 벌레전문 해결사다.

그리고 얼마뒤엔 추가할 또다른 종목을 준비중이다. 그 피해로 치자면 이번엔 더욱 거물급. 국보급 문화재까지 넘어뜨린다는 흰개미를 잡겠다는 것.

그 바쁜 틈사이 언제 만들었는지 이미 새 약품의 공식까지 말끔히 정리해 둔 채 조만간 현장실험만을 남겨두고 있다. 바야흐로 그의 ‘새 재산’ 등록이 목전에 다가온 것이다.

“그런데 답답한건 최근 구제역 파동때 방역방법입니다. 구제역은 벌레때문에 생긴건데 연막기로 잡히나요, 그게. 완전히 밀폐된 공간이 아닌 이상 연막기로 죽일 수 있는 벌레는 한가지도 없습니다.

예전 회사에 있을 때도 경마장에서 모기로 인한 말 전염병이 돌아 대대적인 연막소독을 벌인 적이 있는데 당시 국내에서 가장 비싸고 좋다는 약을 골라 그것도 평소보다 독성을 3~4배나 올려 말이 있는 주변공간을 완전히 차단한 채 연막소독을 했어요.

그런데 2시간이나 지나 문을 열어보니까 처음엔 바닥에 자빠져있던 모기나 파리, 날벌레들이 시간이 좀 지나자마자 금새 탁탁 털고 일어나 다시 날아다니는게 눈에 생생하게 보이더라니까요. 정말 답답한 일입니다.”

정영주 자유기고가

김명원 사진부 기자

입력시간 2000/05/3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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