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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세상읽기] 영화제 거품

칸 영화제 취재를 위해 프랑스로 떠나며 다짐했던 것 하나. “영화제의 거품을 빼자.”

영화제에는 항상 거품이 있다. 세계 유명 영화제만 아니라 국내 영화제도 마찬가지다. 경쟁 영화제는 거장과 스타들을 들먹이며 자신의 영화제에 나온 작품이 최고 수준이라고 떠벌리고 “올해에는 특히 수준이 높다”고 말한다.

비경쟁 영화제도 “정말 영화제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수작을 모았다”고 자랑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내용보다는 포장에 신경쓰고 질보다는 양에 치중한다. 영화제는 축제니까 과장과 들뜬 분위기는 당연하다.

올해 칸 영화제도 눈과 귀와 혀가 즐거운, 재미있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본선에 올렸다고 말했다. 부산 국제영화제는 해마다 세계 유명영화제 출품, 수상작을 모으기에 급급하고 얼마전에 끝난 전주 국제영화제는 디지털 영화, 아시아 독립영화, B급 영화를 모아놓고 ‘마니아라면 이 정도는 알고, 보고, 즐겨야 한다’는 식으로 떠벌렸다.

매체들도 덩달아 춤을 춘다. 잔치에 일부러 재뿌릴 이유가 없으니까. 또 그것이 한국 영화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애국심에서.

그 애국심은 우리 영화가 참가한 세계 유명 영화제에서 더욱 힘을 발휘한다. ‘거짓말’이 경쟁에 나간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가 그랬고, ‘춘향뎐’을 비롯해 5편이 나간 이번 칸 영화제가 그랬다.

국내 언론이 전하는 보도대로 라면 ‘거짓말’은 분명 상을 타야 했고 ‘춘향뎐’역시 감독상 하나쯤은 문제없어 보였다. 베니스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거짓말’을 격찬했고 영화제에 참가한 각국 언론이나 비평가 역시 싫은 소리보다는 좋은 말만 했다.

칸 영화제도 다르지 않았다. ‘춘향뎐’ 상영이 끝나고 10분간 계속된 기립박수, 4일에 걸쳐 세계 언론이 40여 차례나 임권택 감독을 인터뷰했다.

기자회견장에서 몇몇 외국 기자들도 우리 영화 관계자들을 극찬. “칸 영화제가 ‘춘향뎐’을 위해 이렇게 오랫동안 한국 영화를 기다려온 것 같다.” “시사회 때 중간에 자리를 드는 사람이 많은데 ‘춘향뎐’처럼 자리를 뜨는 사람이 적은 경우도 없었다.”

꼭 수상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심지어 정지우 감독의 ‘해피엔드’조차 마지막 끔직한 폭력으로 치닫는 내러티브(서사구조)가 특이하다는 말을 듣고는 ‘황금카메라상’을 욕심내기도 했다.

기립박수가 영화제의 오랜 예우고 비판보다는 늘 칭찬이 앞서는 게 영화제인데. 수상이 한두 명의 열렬한 지지자만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불과 30여명의 썰렁한 기자회견장의 모습 보다는 참석자들의 칭찬에 더 비중을 둔 것도 착각인지 모른다.

어쩌면 올림픽경기 현장 같았다. 객관적 전력보다는 그날의 컨디션에 더 기대하고 싶은, 가장 좋은 상황만을 계산해 메달 가능성을 점치는. 그것이 한국인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인 것처럼.

칸 영화제가 처음 받아들인 감독보다는 이미 인정돼 있는 ‘자기 식구’를 더 챙긴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일이다. 그래서 거꾸로 그런 유명한 사람들을 칸 영화제의 권위와 힘으로 이용한다는 사실 조차 ‘춘향뎐’에서는 예외이기를 바랐다.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탄 ‘어둠속의 댄서’의 라스 폰 트리에 감독과 주연여배우 비욜크, 남우주연상과 기술상을 받은 ‘화양연화’의 왕자웨이 감독과 양조위의 기자회견에 몰려든 세계 언론의 관심도 ‘춘향뎐’의 수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수 없기를 바랐다.

결과를 보고 허탈과 배신감만 커졌다. “작품이 그만큼 안 좋으니까”라는 말은 하면서도 심사위원의 판정을 한번쯤 의심하게 만들었다.

한국 영화는 특히 유명 영화제에 약하다. 그만큼 수상이 적었다는 얘기고 그렇기 때문에 동경 또한 크다. 칸 영화제 진출과 수상이 한국 영화의 목표의 전부인 것처럼 난리를 치고 어떻게 하든 한국 영화가 수상하길 바라는 마음으로만 영화제를 보는 것도 우리가 가진 허상이다.

이번에 칸에서도 우리 모두는 그 미몽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대현 문화부 차장 leedh@hk.co.kr

입력시간 2000/06/0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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