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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카페⑩] 유전적 차별 금지법

“유전적 결함이 있는 사람은 저희 회사에 지원할 수 없습니다. 유전자 검사결과를 반드시 첨부하여 주십시오.”

혹 이 말이 당연한 듯이 느껴진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세상의 각종 차별에 대하여 찬성하거나 묵인하는 냉소적인 부류일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지금 질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장차 당신에게 ‘혹시나 일어날 지도(!!) 모르는’어떤 유전병에 대하여서도 기업이 당신을 해고하거나, 보험회사가 보험가입을 거부할 수 있다는 데 있다.

6월 중순이면, 세계 수천 명의 과학자들이 10여년간 연구한 인간 게놈 지도의 초안이 완성된다. 인간의 모든 유전정보가 노출되는 것이다. 인간의 달 착륙에 버금가는 대역사로 평가받을 만하다. 암의 정복과 무병장수, 맞춤의약 시대 등 의학의 혁명적인 진보와 아울러 갖가지 희망에 찬 기대가 난무하고 있다. 이미 과학자들은 DNA를 통하여 건강과 질병에 대한 예측 이상을 알 수 있다. 혈액 검사만으로도 누가 헌팅턴 병에 쉽게 걸릴지, 누가 유방암의 발생 가능성이 가장 높은지를 집어낼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쯤에서 또 다른 염려의 목소리가 높다는 사실을 주시해야 한다. 각 개인의 유전적 정보가 드러남에 따라, 소위 유전적 ‘우위’와 ‘열등’을 두고 빚어질 사회적인 차별 현상에 대한 염려가 그것이다.

유전적인 행운아와 유전적인 불운아를 구별짓는,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질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1997년에 개봉된 영화 <가타카>(Gattaca)에서는 유전적 완전함이 고용의 전제조건이 된 세상을 잘 묘사하고 있다. 드디어 그러한 세상이 눈앞에 왔다는 당혹감인 것이다.

유전자 검사에서 당신은 10년 안에 헌팅턴 병에 걸릴 확률이 50%라고 나왔다. 정신적 퇴보로 이어지는 이 두뇌병을 치료할 약이나 방법은 아직 없다. 회사는 막대한 보험료를 걱정하고, 어느 날 당신은 갑작스레 직업을 잃고 만다.

이러한 염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현실에 아주 가까이 와 있다. 많은 외국 회사가 채용시에 에이즈와 매독과 같은 검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보험회사도 가입자의 유전병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가족의 의료 기록을 당연한 듯이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 10~15년이면 더욱 많은 종류의 유전자 검사가 개발될 것이고 유전자 검사는 예방 보건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질병의 가능성을 알고 그 대처방안을 미리 알게 될 것이니 정말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정보가 공개되기 시작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997년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13%의 회답자가 가족의 질병 기록이나 유전자 검사로 확인된 질병의 가능성 때문에 자신이나 가족이 직업을 거절당했다고 대답했다.

미국 노동부가 1,000명을 조사한 결과, 65%가 자신들의 유전자 검사 결과가 고용인이나 보험회사에게 알려질 경우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유전적 차별에 대한 두려움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싹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5월 중순 미국의 한 여성은 자신의 유전적 결함을 알고 자신을 해고했다며 전 고용주를 ‘고용기회균등법 위반’으로 연방법원에 제소하기에 이르렀다.

미국 의회가 1996년 건강보험에 관한 법률에서 “단체보험인 경우, 개인의 유전적 정보를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수 없다”는 법률조항을 신설하기는 했지만 아직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 4월 클린턴 대통령은 “피고용자의 고용, 해고, 승진에 유전적 정보의 사용을 금지한다”는 연방정부의 행정명령에 사인했다. 미국의 약 20개 주가 역시 유전적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키기는 했다.

그러나 미국의 관련 시민단체들은 5월 8일 ‘유전적 평등을 위한 연합’(The Coalition for Genetic Fairness)을 결성하고 유전적 차별에 대하여 국민을 보호할 보다 폭넓은 연방법의 재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유전적 차별에 대한 두려움이 이미 우리의 발 앞에 와 있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도 유전적 차별 금지법에 대한 폭넓은 입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너무 늦기 전에 말이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lifegate@chollian.net

입력시간 2000/06/0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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