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서울 동작동(銅雀洞) 국립묘지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해와 달이 이 언덕을 영원히 지켜 주리라!’ 민족의 성역인 동작동 국립묘지. 1955년에 조성된 국립묘지는 142만㎡(43만 평)의 대지 위에 16만여 위(位)의 순국 선열과 호국 영령이 잠들어 있는 민족의 성역(聖域)이다.

정문에 들어서면 돌진하는 용사의 상이 참배객을 압도한다. 마주 보이는 곳에는 현충문(顯忠門)과 현충탑(顯忠塔)이 우뚝 서 있고, 현충탑 안에는 한국전쟁당시 호국용사들 가운데 시신을 찾지 못한 10만2,000여 위(位)를 위패(位稗)로 봉안(奉安)하고 있다.

현충탑을 중심으로 동서 묘역(東西墓域)에는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묘소를 비롯하여 상해임시정부 요인, 애국지사, 국가유공자, 경찰관, 예비군 등 영현(英顯) 5만여 위가 신분별로 안장되어 있다.

주요시설로는 순국선열 및 호국 영령들의 활동상이 담긴 영화를 상영하는 현충관, 유품과 전리품을 전시하는 유품 전시관, 사진을 전시하는 사진 전시관 등이 있다. 그 밖에도 군데 군데 호국 영령들의 장한 넋을 기리기 위한 각종 기념탑과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한강이 굽어 보이는 이 동작동 언덕에 서면, 만해(卍海) 한용운 선생의 시 ‘알 수 없어요’가 떠오른다.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 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한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시냇물은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는 곱게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어 어두운 밤을 지켜주는 등불처럼, 조국을 위해 산화(散華)한 이들 거룩한 영령앞에서 환생(環生)의 뜻을 되새겨 보는 동작동 국립묘지.

그런데 나라가 암울했던 일제 치하에서 ‘알 수 없어요’를 절규하던 3·1운동 독립투사 33인 가운데 한분인 한용운 선생이 이 국립묘지에 묻혀 있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동작(銅雀)이라는 말은 우리 말로 노고지리(새). 즉 종달새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동작동 국립묘지를 두고 풍수지리(風水地理)상으로 금계포란(金鷄抱란,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형국이란다.

금닭은 곧 봉황이다. 주작(朱雀)을 뜻한다. ‘구리(銅)’빛 얼굴의 산화(散華)한 영령(英靈)들이 주작의 ‘작(雀)’ 품속에 잠든 것도 동작(銅雀)이라는 땅이름과 그리 무관하지 않는 것 같다.

이흥환 한국땅이름학회 이사

입력시간 2000/06/0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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