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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태, 어디까지 가나] '대우해체' 남얘기 아니다

재벌체제 구태와 경영권다툼이 화 자초

5월31일 정주영 명예회장, 정몽헌 그룹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등 정씨 3부자의 경영일선 퇴진 선언을 계기로 현대사태의 거센 불길이 잡혀가고 있는 모습이다.

만일 현대사태가 진정국면에 들어서지 못한 채 조금만 더 지속됐다면 ‘IMF(국제통화기금)의 모범생’ 한국은 다시한번 파탄의 늪에 빠졌을 게 틀림없다.

또 정 명예회장도 ‘성공한 뚝심 경영인’에서 국민을 도탄에 빠뜨린 ‘고집불통 노친네’로 세간의 평가가 한순간 전락했을 것이다. 마치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처럼.


대세 거스른 현대호

몽구 회장이 자신을 전문경영인이라면서 회장직 유지를 고수하고 있는데 대해 금융시장이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는 데는 그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걱정에서 비롯된다.

엄밀히 말하면 이번 현대사태는 현대건설, 현대상선 등 일부 회사의 자금난을 바탕으로 현대식 황제경영과 몽구·몽헌 형제간 다툼이 복합돼 현대에 대한 끝없는 불신과 우려의 증폭으로 확대된 사건이다.

재벌체제의 대안을 추구하고 있는 시장의 대세를 거스르는 ‘현대호’에 대한 불신이 몇가지 계기로 도화선으로 폭발한 셈이다.

시장에서 현대그룹의 이상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사실 지난해 하반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년 7월 대우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져 김 회장의 사재와 계열사 자산을 담보로 채권금융기관에 4조원의 긴급자금 수혈을 호소한 뒤 90조원에 달하는 부채를 남긴 채 끝내 그룹해체의 수순을 밟는 것을 시장이 목격하면서부터다.

대우에 한번 물린 금융기관들이 현대를 보는 눈높이를 바짝 낮췄다. 특히 외국계 금융기관은 자세히 알 길이 없는 현대의 재무구조와 캐쉬플로어(현금흐름)에 대한 의심을 드러내놓고 표명했다.

찰랑찰랑대는 파도를 그럭저럭 헤쳐온 현대호는 연초를 즈음해 바야흐로 폭풍우의 항로에 접어들었다. 서울 증시에서 외국인이 현대 계열사의 주식을 무차별적으로 털어냈고 외국인의 이같은 시각은 국내 자금시장에서 곧바로 영향을 미쳤다.

부채비율 축소를 위해 빚갚기에 바쁠 현대그룹이 기아자동차와 LG반도체를 인수한데 이어 수조원이 들어가는 금강산개발 등 대북사업에 나선다는 발표가 자금상황 개선의 기대를 싹둑 잘라버렸다.

급기야 현대 회사들이 해외를 돌며 투자자들에게 “재무구조도 괜찮고 자금상황도 알려진 것 만큼 나쁘지 않다”며 설득했으나 투자자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현대 덮친 삼각파도

이런 와중에 ‘왕자의 난-현대투신증권 문제-자금시장의 난기류’ 등으로 뭉친 삼각파도가 현대호를 덮쳤다.

3월24일 몽구(MK) 회장측은 느닷없이 몽헌(MH) 회장의 측근인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고려사업개발 회장으로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MK측은 정 명예회장의 결재를 내정의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MH측은 몽헌 회장이 현대증권의 최대주주인 현대상선의 최대주주라는 점을 들어 MK측 인사가 무효라고 거부했다. MH측은 곧바로 정 명예회장으로부터 몽구 회장의 그룹회장 퇴진지침을 이끌어내 반격을 가했고 이에 MK측은 정 명예회장의 사인이 담긴 공문을 공개하면서 회장직을 고수했다.

3월27일 정 명예회장이 현대그룹의 몽헌 회장 단독체제로 결론을 내렸다. ‘왕자의 난’은 시장으로 하여금 현대 경영자들이 재벌구조조정 과정에서 실체가 없는 그룹회장이라는 직함을 둘러싸고 형제간에 다투고 있다는 실망감과 함께 돈을 줘서는 안될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한달 뒤인 4월29일 이번엔 현대투신증권의 부실처리 문제가 부각됐다. 정부가 1조4천억원에 달하는 현대투신증권의 부실은 대주주가 책임져야 한다고 발표하자 시장 관계자들은 현대 계열사들이 부실을 떠안게 되는 상상을 그렸다.

그리고 며칠뒤 현대가 몽헌 회장의 사재 일부와 현대전자 등을 비롯한 계열사 자산을 부실처리를 위한 담보로 내놓으면서 시장 관계자들은 상상이 맞아떨어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금융기관은 당분간 현대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 신규자금지원 중단은 물론 자금회수에 앞다퉜다.

여기에 자금시장도 지칠대로 지친 상황에 지속됐다. 삼성그룹의 위성그룹인 새한그룹이 자금난을 못견디뎌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기업들이 단기자금을 주로 조달하는 종금권이 나라종금 부도, 영남종금의 영업정지 등으로 휘청거리고 있었다.

또 회사채 매입세력인 투신권도 부실처리와 자금이탈로 현대 회사채를 거둬줄 형편이 아니었다.


유동성위기, 계열사로 번져

삼각파도는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나쁜 현대건설에 직격탄을 날렸고 다른 우량 계열사로 파급이 확대됐다.

현대건설은 4월부터 5월 중순까지 무려 6,400억원의 자금을 회수당한데 이어 6월말까지 5,000억원어치의 회사채와 기업어음이 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금상황이 한계에 몰린 현대건설은 지난달 20일께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을 찾아와 은행권에서 2,000억원, 투신권에서 3,000억원을 지원해주면 자금위기를 넘길 수 있겠다고 급전을 요청했다.

외환은행은 일단 당좌개설 한도를 500억원 늘려준 대신 정부에 현대의 사정을 통보했고 정부는 차제에 시장불신의 큰 축인 현대의 지배구조 개선을 뜯어고치기로 했다.

외환은행은 5월26일 현대건설의 1차 부도설이 시장에 나돌면서 현대그룹 전체로 사태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계열사 전체의 유동성 확보 방안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5월28일 현대는 현대건설이 5,800억원을 포함해 전계열사에서 사업계획 축소, 일부 부동산 및 주식매각 등을 통해 3조원의 유동성을 마련한다는 자구계획안을 내놓았고 정부와의 밀고당기기 끝에 사흘만인 5월31일 5조9,000억원의 유동성 확보 방안과 정씨 일가 3부자의 경영일선 퇴진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날 금융시장은 현대의 발표를 긍정적으로 평가, 종합주가지수가 40.62 포인트 폭등하고 채권금리도 큰폭 하락했다.

그러나 금융시장에서는 현대가 급한 불은 껐으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현대가 서둘러 시장의 불신을 수용하고 자구계획과 지배구조 개선을 약속했으나 가시적인 실천이 증명되지 않으면 이번 발표는 단지 시간을 연장시킨 효과를 가질 뿐 대우그룹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황정우 연합통신 경제부 기자 jungwoo@yna.co.kr

입력시간 2000/06/0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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