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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태, 어디까지 가나] 해볼건 다 해본 왕회장… 씁쓸한 퇴장

“몽헌 회장이 취임해도 중요한 일은 모두 저와 의논할 것이니 여러분은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3월27일 현대그룹 경영자협의회가 열린 현대그룹 계동사옥 대회의실. 현대 직원 사이에선 ‘왕회장’으로 통하는 정주영 명예회장이 특유의 느릿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 명예회장의 이 한마디로 ‘왕자의 난’으로 불린 몽구, 몽헌 두 아들의 경영권 싸움은 단번에 진압이 됐고 세상 사람은 다시 한번 정 명예회장의 존재를 각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처럼 강력하던 정 명예회장도 세월과 시장의 힘앞에는 어쩔 수 없었다. 1947년 현대토건으로 출발, 국내 1위의 현대그룹을 일궈낸 정 명예회장은 현대그룹 유동성 사태를 계기로 ‘왕회장’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한국 근대화 한가운데 섰던 인물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빈곤한 농촌국가였던 한국이 불과 40여년만에 공업국가로 탈바꿈한 ‘압축성장’의 한 가운데에 자리했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스스로 “현대를 통해 기업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다했다”고 자부할 정도로 건설, 조선, 자동차, 철강, 기계공업 등 우리나라의 중공업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영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현대를 이끌어 온 정 명예회장의 시작은 미약하였다. 1915년 강원도 통천에서 가난한 농부의 장남으로 태어난 정 명예회장은 네번의 가출 끝에 상경, 막노동꾼으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희대의 경영자였던 그가 경영자의 반열에 올라섰던 것도 스물넷에 ‘경일상회’라는 쌀가게를 차린 뒤였다.

정 명예회장은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는 1950년대와 1980년까지 한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따라서 ‘사업상의 기회’가 열려 있는 곳에 과감히 투자해 성공을 이끌어냈다.

정 명예회장은 1950년대 건설업에 손을 댄 것을 계기로 성공의 밧줄을 잡을 수 있었다. 1950년대 당시 전쟁으로 피폐한 한국 땅에 가장 필요했던 것은 건설산업이었고 도로·항만 등 사회간접시설 건설은 현대그룹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한강인도교 공사와, 1968년 세계 최단시간 완공이라는 기록을 세운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1976년의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 등은 정 명예회장 특유의 ‘밀어붙이기’식 스타일이 빛을 발한 대표적 성과다.

세계 10대 메이커로 성장한 자동차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정 명예회장은 1966년 포드사와 자동차 조립생산계획을 맺고 합작 형태로 승용차를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곧바로 포드와 결별하고 독자적인 국산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마침내 1976년 최초의 국산 모델인 포니를 출시, 세상을 놀라게 했고 1986년에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숙원이었던 미국 시장에까지 진출하는 업적을 이뤄냈다.


쌀가게에서 금강산관광까지

물론 정 명예회장에게도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1992년 대선에 출마한 것은 그의 일생에 중대한 고비였으며 대선 패배는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왔다. 정치권의 압력은 거세게 닥쳐왔고 금융기관의 현대그룹 옥죄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정 명예회장은 1992년 이후 3년 이상을 형을 선고 받은 죄인으로 지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3~4년간의 은둔기를 거친뒤 정 명예회장은 대북 사업을 지렛대로 화려하게 전면에 복귀했다.

특히 소떼 1,000마리를 몰고 휴전선을 건너는 그를 보며 세상은 “역시 정주영”을 외쳤고 그는 꿈에서만 상상하던 금강산 관광을 실현시켰다.

정 명예회장은 1990년 후반이후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자신이 일궈온 사업을 동생과 아들들에게 물려주는 작업에 착수했다.

동생인 정세영 전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에게는 현대산업개발을, 공부를 잘해 유난히 자랑스러워 했던 아들 몽준에게는 현대중공업을 물려주는 등 가부장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방식으로 경영권을 이양해왔다.

그러나 올해 초 몽구, 몽헌 형제의 경영권 다툼이 불거지면서 현대그룹의 위기는 빙산의 일각을 드러냈고 마침내 정 명예회장은 일선에서의 영원한 은퇴를 선언하게 됐다.

인간 정주영, 그는 한국 근대사에 있어서 그 공(功)이 그 과(過)를 능가하는 몇 안되는 기업가로 기억될 것이다.

조철환 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입력시간 2000/06/0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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