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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급부상… 종착지는 어디?

한나라당의 5·31 전당대회는 2002년 대권레이스에 한나라당이 내세울 ‘대표선수’가 이회창 총재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이회창, 김덕룡, 강삼재, 손학규 등 4자대결로 치뤄진 총재경선에서 이 총재는 66.3% 의 압도적 득표로 군소후보의 도전을 가볍게 제압하고 차기대권을 향한 항해의 닻을 올렸다. 하지만 이 총재 측근들의 마음은 여전히 편치 않은 것 같다.

승승장구해야 할 이 총재의 대권가도에 예상치 못한 걸림돌이 등장할 징후가 이번 전당대회에서 엿보였기 때문이다. 불길한 징후는 다름 아닌 박근혜 부총재의 당선이다.

전당대회 이전부터 당운영을 놓고 이 총재와 사사건건 각을 세우던 박 부총재의 당선은 이 총재에게는 곧 새로운 비주류의 등장을 의미한다.


11.8%의 의미

박 부총재가 이번 부총재 경선에서 얻은 득표율은 11.8%. 당초 점쳐졌던 최다득표는 아니지만 그동안 실증되지 않았던 박 부총재의 대중적 지지도를 사실로 확인해준 것만은 분명하다.

더구나 주류측이 박 부총재의 1위를 막기 위해 대의원 단속에 나서는 등 제동을 걸었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는 터라 박 부총재가 차지한 득표율의 의미는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박 부총재는 경선을 통해 당내에 뚜렷한 입지를 마련했다. 이 총재로서도 대의원의 지지를 얻고 있는 선출직 부총재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총재의 한 측근도 “총재단 회의가 여전히 협의체 성격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선출부총재와 지명부총재의 비중은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박 부총재의 위상변화를 점쳤다.

더구나 박 부총재가 계속 제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서 돌아올 경우 당내 모든 비주류를 물리치고 대권가도를 향해 독주하고 있는 이 총재에게 잠재적 경쟁자로 떠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록 당원들만 참여하는 당내 경선이지만 전국적인 차원에서 이뤄진 투표에서 박 부총재가 얻은 11.8%라는 득표율은 차기 또는 차차기 주자로 진입하는 발판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 부총재의 경선승리에 대해 일각에서는 여성 정치인의 위상변화를 앞당기는 쾌거라는 평가도 있다. 어쨌건 국내 정치사에서 ‘당의 배려’없이 자생적 득표력만으로 주요 당직인 부총재를 거머쥔 것은 박 부총재가 사실상 첫 케이스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1997년 대선을 계기로 정치에 입문한지 4년밖에 안된 정치신인이 거둔 성과로는 놀랍다.

그동안 박 부총재의 대중적 인기에 대해 아버지 박정희 전대통령의 ‘후광’이라는 질투 섞인 눈총도 있었지만 이제는 독자적인 정치인의 꿈을 펼만한 기틀을 마련한 셈이다.


비주류 박근혜의 앞날

그렇다면 ‘정치인 박근혜’는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까. 정치권 안팎에선 ‘여성 대통령’ 운운하며 벌써부터 성급하게 대권가도와 연결짓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시중에는 택시기사와 점술인 등을 중심으로 “다음 대통령은 여성”이란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최근 “여권에서 점술인 등을 동원해 시중에 ‘여성 대통령’ 운운하며 박 부총재의 업그레이드 작전을 펴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됐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여권이 국회 개원과 더불어 민주당-자민련 공조복원 움직임을 본격화하며 자민련, 무소속 의원을 한데 아우르는 ‘한나라 대 비한나라 연합’의 구도까지 공공연히 내비치고 있어 한나라당은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박 부총재가 당을 뛰쳐나가 비한나라 연합에 참여하는 것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박 부총재도 성급하게 대권 운운하며 발빠른 행보를 할 것 같지는 않다. 내심 부총재 경선 1위를 토대로 사실상 수석 부총재를 노렸지만 이 총재측의 견제 때문에 무산된 것으로 해석하고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움직이자’는 신중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이 총재에게 대항할 수 있는 공력을 더 키워야 한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지금으로선 박 부총재는 전당대회를 통해 더욱 심화된 김덕룡 전부총재와 이 총재의 갈등을 이용하는 카드를 선택할 것 같다. 즉 박 부총재와 더불어 당내 비주류 연대를 모색하며 비주류의 구심점으로 확실한 자리매김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박 부총재의 한 측근도 “당을 위해서 할 말은 하고, 부총재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주류 박근혜의 앞날

이 총재측도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간 상황이다.

이 총재측의 한 측근은 향후 박 부총재에 대한 예우문제에 대해 “경선부총재인 만큼 대접할 것은 확실히 대접할 것”이라며 “더구나 대선을 앞두고 뚜렷한 스타군단이 없는 한나라당으로선 박 부총재의 대중적 인기를 철저하게 이용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분간 이 총재와 박 부총재는 ‘가깝고도 먼 사이’가 될 것이라는 암시다.

앞으로 남은 2년반 동안의 차기대권 가도는 무수한 변수에 의해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박 부총재로서는 세월을 낚으며 때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함부로 뜻을 내비쳐 칼을 맞느니 ‘운기조식’하며 틈새를 노리는 것이 더욱 현명한 처세술이다.

결국 앞으로 이 총재로서는 싫든 좋든 박 부총재와 어색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끊임없이 자신쪽으로 당기는 ‘당근과 채찍’전략을 구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같은 상황은 어쩌면 이 총재에게는 위기이자 기회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나치게 빨리 당내 대권구도가 정비되면 이 총재로서도 불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의 한 측근은 “어쩌면 박 부총재의 입김 강화는 앞으로 이 총재에게 약이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박천호 정치부 기자 toto@hk.co.kr

입력시간 2000/06/06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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