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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일본] 텐노(2)

일본 헌법은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1조), ‘천황의 국사에 관한 모든 행위는 내각의 조언과 승인을 필요로 하며 내각이 그 책임을 진다’(3조)고 했다. 천황은 국가와 국민통합의 상징일 뿐 실권을 갖지 않는다는 ‘상징 천황제’의 법적 근거다.

실은 일본사를 통해 극히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 천황은 늘 상징적 지위에 머물렀다. 처음에는 호족 집단, 나중에는 무사 집단이 천황의 권력을 제약했다.

일제의 국가 신도(神道)는 천황을 현인신(現人神)으로 떠받들었지만 실제 권력은 관료집단과 군부가 장악했다. 역성(易姓)혁명에 의한 왕조 교체가 없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천황의 상징적 지위에서 기인했다.

4세기~7세기초의 야마토(大和)정권 시절 부족연맹체의 수장인 역대 ‘오키미’(大王·大君)는 거대한 능묘를 만들었다. 긴 사다리꼴 뒤에 원형의 봉분이 이어진 열쇠구멍 모양의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은 가장 큰 ‘닌토쿠료’(仁德陵)의 경우 길이가 486m, 봉분의 높이가 35m나 된다. 엄청난 노동력과 토목기술을 동원해야 한다는 점에서 오키미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거대 고분이 오키미의 독점물이 아니어서 다른 ‘기미’(君·王)나 실력자도 앞을 다투어 조성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치열한 경쟁과 견제 속에 있었던 오키미의 모습이 떠오른다.

바로 직전인 3세기의 일본에 대해 ‘위지 왜인전’(魏志 倭人傳)은 “30여개 소국이 그중 하나인 야마타이(邪馬台)국의 여왕 히미코(卑彌呼)의 종교적 권위에 복종하고 있다”고 적었다.

당시 일본사의 무대인 규슈(九州)와 혼슈(本州) 서부에 부족연맹체로 넘어가는 느슨한 연맹체가 이미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중앙집권적 왕권이 등장한 것은 645년에 시작된 ‘다이카’(大化·연호) 개신(改新) 이후였으니 300여년이 더 흘러야 했다. 일본사에서 흔히 얘기되는 300여년의 공백 기간이다.

이 시기는 한반도로부터 철기가 대량으로 유입되던 때였다. 철제 무기와 농기구 이용으로 군사력·농업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달, 왕권이 제사권과 분리돼 급속히 우월한 지위를 확보하게 마련이었다.

더욱이 이때는 철제 무기를 갖춘 무장 세력이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정착한 때였다. 흔히 ‘북방 기마민족’으로 얘기되는 그 주인공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지만 이들이 일본의 기미와 오키미, 호족집단 등 지배층을 형성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들의 정치통합에 오랜 기간이 소요된 이유는 일본의 지리적 위치와 당시의 항해술 수준에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대규모 무장 집단이 한꺼번에 바다를 건널 수 없었고 뿌리와 계통이 다른 집단이 잇달아 도래했다. 개별 집단의 군사력은 토착민을 압도할 수는 있었지만 다른 집단을 통합할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또 혈연적 유대가 희박했던 것도 통합을 방해했을 것이다.

다이카 개신 이후 오카미의 지위는 크게 높아졌다. 특히 672년 ‘임신(壬申)의 난’을 통해 집권한 ‘텐무’(天武)는 호족들의 간섭을 배제하고 독점적 권력을 강화했다. 일본 학계조차 신라·고구려인설을 주장할 정도로 그의 혈통은 의문 투성이다.

그가 ‘고지키’(古事記·712년 완성)나 ‘니혼쇼키’(日本書紀·720년 간행)의 편찬을 지시한 것도 정통성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다. 특히 정사(正史)라는 니혼쇼키는 신화 시대에까지 ‘텐노’라는 칭호를 적용, ‘만세일계’(萬世一系)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텐무 사후 금세 세력을 회복한 호족 집단은 ‘다이호(大寶) 율령’(701년)에 따라 국정 최고기관으로 설치된 ‘다이조칸’(太政官)을 장악했다. 다이조칸 회의의 결정은 천황도 거부할 수 없었다. 더욱이 8세기 중반 율령제가 흔들리면서 분권 현상은 심해졌고 무인 정권 ‘바쿠후’(幕府)의 등장으로 천황의 권위는 껍질만 남았다.

다만 어느 시대든 천황의 종교적 지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점은 특기할 만하다. 하늘과 땅의 신에게 나라의 안전과 풍요을 기원하는 제사는 최고 지위의 영(靈)이 깃든 존재인 천황의 몫이었다.

이 천황령은 ‘큰 무당’의 대물림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의식에 의해 역대 천황에 이어졌다. 일본의 권력자들은 이런 지위를 침탈하는 대신 타협하는 길을 택했다.

‘인간 선언’으로 현인신(現人神)의 너울을 완전히 벗은 천황에 대한 현재 일본 국민의 존경과 애정은 대단하다. 마사코(雅子) 황태자비의 임신·유산 소동에서 보듯 천황가의 움직임은 늘 화제가 된다.

국민적 마스코트로서 천황의 이미지가 정착해 가고 있으며 일본 국민이 외면할 가능성은 없다. 마스코트는 현대의 부적이다. 굳이 버릴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황영식 yshwang@hk.co.kr>도쿄특파원

yshwang@hk.co.kr

입력시간 2000/06/0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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