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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나라 피지의 '요상한 쿠데타'

인종갈등이 원인, 대통령 각본설도 흘러나와

‘과격 시위가 인질극으로, 인질극이 쿠데타로, 다시 군부에 의한 진짜 쿠데타로…’.

5월 19일부터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헌정중단 사태가 국제사회를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정권이 전복됐다는 점에서 ‘쿠데타’라고 하는 게 무난하고 외신들도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쿠데타로 보기엔 지나치게 허술한 면이 많고, 그렇다고 단순한 헌정중단 사태로 치부하기엔 돌아가는 상황들이 그보다는 훨씬 심각하다. 이 모든 것의 밑바닥에는 피지공화국의 태생적 딜레마인 ‘인종갈등’이 그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소총으로 무장한 7명이 빌미 제공

발단은 무장한 일단의 특수부대 출신자들의 인질극에서 비롯됐다. 5월19일 수도 수바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도중 AK-47 소총으로 무장한 복면 괴한 7명이 국회의사당을 급습, 마헨드라 초드리 총리 등 정부요인 30여명을 인질로 잡았다.

주모자는 조지 스페이트란 인물로, 피지계 야당인 피지정치당(SVT) 소속 의원인 샘 스페이트의 아들이다.

사건 직후 피지에서 외부로 통하는 모든 전화가 차단됐고 부모들이 학교에서 자녀를 데려와 피신하는 등 주민 수천명이 수바를 탈출했다. 또 시가 행진중이던 5,000여명의 피지계 원주민 시위대중 일부는 의사당 주변 상가에서 방화와 약탈을 자행하는 등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스페이트는 곧 성명을 통해 “현 정부는 전복됐고 피지 통치권은 내 손에 있다”고 발표한 뒤 야당의원 라투 티모시 실라토루를 총리서리로 임명하는 등 과도정부 수립을 선언했다.

최고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라투 시르 카미세세 마라 대통령은 법질서 회복을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긴 했지만 자신이 인질로 잡힌 것도 아닌데 왠지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다.


군이 나서며 상황 급변

이틀 후인 21일 스페이트는 ‘민족주의’와 ‘원주민 우대정책’을 표방, 야당지도자들의 지지선언을 얻어냈다.

다음날인 22일에는 스페이트가 직접 의사당 밖으로 나와 주변을 포위중이던 경찰관들과 커피를 마시는 여유까지 보였으며 경찰 차량으로 시내를 순시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라 대통령은 “초드리 총리가 풀려나더라도 새 총리를 뽑겠다”고 밝혀 주위를 더욱 어리둥절하게 했다.

26일 스페이트를 필두로 한 인질범들이 무장병력을 대동하고 의사당앞에서 가두행진을 벌인데 이어 28일 그의 지지자들이 수바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이 살해되고 TV방송국이 파괴되는 등 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속으로 치달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7인의 쿠데타’는 성공한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29일 드디어 군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또다시 급반전된다. 피지군 총사령관인 프랭크 바이니마라마 제독은 이날 군병력을 동원, 전략적 주요 거점들을 중심으로 수바 전지역을 장악한 뒤 피지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는 또 이날 오후 6시부터 48시간 동안 통행금지를 선포한 뒤 위반자에 대해서는 발포 및 사살명령을 내렸다. 마라 대통령은 이날 하야했다.

통금령은 하루만인 30일 해제됐으나 군부는 모든 인종이 동등하게 권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현행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지난해 선거에서 인도계 초드리 총리의 압승을 가능케 했던 다인종 헌법을 무력화시킴으로써 인도계가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싹을 아예 잘라버린 것이다.


군 총사령관 "내가 대통령"

바이니마라마는 이어 31일 “새 헌법이 제정되고 총선거가 다시 실시될 때까지 2~3년간 대통령으로 통치하겠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진짜 쿠데타가본색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는 또 하야한 마라 대통령의 사위인 나이라티카우 전 군사령관을 임시정부의 총리로 지명했다.

이와 함께 1987년 두차례 쿠데타를 시도, 1999년까지 총리를 지낸 시티베니 라부카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란 얘기들이 흘러나왔다. 군부는 또 인질범들에 대한 면책특권과 새 내각 참여 보장 등 스페이트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줌으로써 인질 석방이 임박한 것처럼 기대됐다.

하지만 인질극 14일째에 접어든 6월1일 스페이트는 군부의 이같은 권력장악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인질 석방을 거부, 사태는 계속 꼬여만 갔다.


뿌리깊은 민족갈등

배경 및 전망 앞서 지적했듯이 다소‘황당’하기까지 한 이 모든 사태의 근본 원인은 뿌리깊은 민족갈등에 있다.

197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피지의 81만3,000명 인구중 피지계 원주민은 51%, 인도계는 44%를 차지하고 있다. 인도계들은 식민지때 노동자로 건너와 피지 독립 후 정치·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다.

반면 대부분의 토지는 토착 원주민으로 구성된 ‘토지소유자 공동체’에 의해 소유·관리되고 있다. 인도계는 1976년 개정된 토지임대차법에 의해 30년간 농지임대차 기한을 보장받아 사탕수수 재배 등으로 부를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1997년 임대차 계약기간이 만료되자 피지계 원주민들은 직접 영농을 하겠다고 나섰고 이로 인한 인도계와 피지계 사이의 대립·갈등이 표면화하면서 이번 사태는 이미 예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1987년 총선에서도 인도계의 지지를 받은 연합당이 승리하자 피지계 군부 실력자 라부카가 쿠데타를 일으켰었다.

그후 라부카의 피지계 정권이 12년을 통치해왔으나 지난해 총선에서 피지노동당을 필두로 한 야당연합이 승리, 인도계가 다시 집권했다. 인도계인 초드리 정부는 이후 장기 임대차계약을 새로 보장해주는 등 인도계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정책을 펴기 시작했고 피지계와의 대립은 더욱 심화되기 시작했다.


피지계 득세, 인도계 달랠 정책이 관건

원주민 부족장 회의에서 선출되는 ‘대추장’격인 마라 대통령은 지난해 총선에서 초드리 총리를 지지함으로써 피지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사태의 전권을 장악하고 있는 바이니마라마가 군사령관에 취임하도록 해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의 딸은 피지의 현 관광장관이다.

결국 마라 대통령의 오른팔은 현 쿠데타 상황의 우두머리이고 딸과 사위는 각각 장관과 임시정부 총리인 셈이다. 때문에 이번 쿠데타는 마라 대통령의 각본에 의한 것이란 억측마저 나오는 가운데 적어도 방조 내지 묵인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고 있다.

어쨌든 이번 사태로 인해 당분간은 인도계의 권력 재장악은 힘들 전망이다. 그렇다고 피지계가 권력을 장악, 인도계를 핍박할 경우 피지는 인도계의 이탈로 인한 부의 유출과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고립될 수 밖에 없다. 새 정권이 이런 난제들을 여하히 풀어가느냐에 피지의 운명이 걸려있다.

홍윤오 국제부기자 yohong@hk.co.kr

입력시간 2000/06/0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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