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다가오는 베이비 붐 세대, 미국사회서 왕성한 활동

67세인 프랭크 틸만은 현재 직업에 만족하고 있다. 언론그룹인 뉴하우스의 시스템컨설턴트인 틸만는 소프트웨어 구입과 거래선 선정을 위해 하와이에서 플로리다까지 매년 5만 마일을 여행한다.

틸만은 65세 정년을 넘어서도 계속 일을 하는 사람의 모임에도 참가하고 있다. 틸만은 두 차례 심장 문제를 겪었고 세 차례 등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틸만은 “나는 아직 그만둘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아마 그와 거래하는 사람들도 틸만의 퇴직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뉴하우스 그룹 생산본부에 근무하는 경영학 석사 출신 팀 슈미트(33)는 “틸만의 나이가 문제이긴 하지만 그가 이 업계에서 축적한 경험은 엄청난 자원”이라고 평가했다.

직장에서는 나이 많은 사람이 존경받지 못하고 ‘나이 차별’이 만연돼 있다. 그러나 신경제와 인구분포의 변화는 이같은 추세를 바꿔놓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들은 이제 50세에 접어들었지만 생존에 성공한 셈이다.

실업률이 4% 안팎에 머물면서 기업들이 인력난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정년을 연장하고 정년퇴직한 사람들이 다시 돌아옴으로써 인력시장은 지난 4년간 두 배로 늘어나게 됐으며 경제도 인플레이션의 위험없이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레이앤드크리스마스의 조사에 따르면 50세 이상 구직자가 직업을 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구직자와 불과 며칠 차이 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4년전만 해도 1개월 이상 더 걸리던 것에 비하면 기간이 대폭 줄어든 것이다.

연방정부도 노인채용을 권장하고 있다. 의회는 지난 4월 65~69세 근로자의 경우 연간소득이 1만7,000달러가 넘으면 사회보장혜택의 일부 혹은 전부를 유보시켰던 대공황시대에 만들어진 법안을 폐기했다.

베이비붐 세대에게는 희소식이다. 정년에 가까워오는 베이비붐 세대는 이제 다양한 여가생활뿐만 아니라 과외소득도 얻을 수 있다.

1998년 조사에 따르면 베이붐 세대의 80%가 정년후에도 최소한 파트타임 일거리는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3분의1은 즐기기 위해서라도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고 4분의1은 돈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노인 근로자수 계속 증가할 듯

지금 미국의 경제상황은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에게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면서 지금의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수도 있고 돈을 받으면서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할 수도 있다. 생계유지를 위해 일을 계속해야 하는 55세 이상 노인에게도 일자리는 충분하다.

만약 경제가 하향곡선을 그리게 되면 이들 노인은 일자리에서 겨나게 될까? 전문가들은 현재 인구학적 분포로 볼 때 그같은 가능성은 적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946~1964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현재 7,600만명 정도. 이들은 그동안 치열한 경쟁을 거쳐왔다.

그러나 1965~1976년에 태어난 X세대는 불과 4,100만명에 불과하다. 인력회사인 왓슷와이트월드와이드의 경영컨설턴트인 하워드 와이즈만은 “베이비붐 세대가 나이가 드는데도 그들을 대체할 새로운 인력은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동통계청은 2008년까지 25~44세 근로자의 수는 크게 줄어드는 반면 55세 이상 근로자의 수는 매년 4%씩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베이붐 세대의 자식들인 Y세대가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2010년까지 이들이 일자리에서 무더기로 겨날 가능성은 그만큼 적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경영자들은 노인들을 추가비용과 저생산성과 동일시했지만 지금은 노인들의 경험과 신뢰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노인들도 자기개발 필수

그러나 노인들이 이같은 상황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기술을 부단히 익혀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달라스에 있는 인력회사 케이바스만 회장인 밥 바스만은 “노인들도 새로운 기술을 부단히 익혀야 하고 특히 컴퓨터는 필수”라고 말했다.

자식들 나이의 젊은 근로자에게는 불가능한 탄력근무시간제도 가능하다. 중소기업의 경우 노인근로자가 의료혜택을 스스로 해결한다면 재택근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인력회사인 매니지먼트리쿠르터의 영업책임자인 카렌 브룸필드는 “나이든 근로자들은 상대적으로 신뢰성이 있기 때문에 경영주에게 재택근무를 하겠다고 얼마든지 요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통신회사인 유에스웨스트의 경우 종업원 6만2,000명의 15%가 연금수혜 대상이고 3분의2이상이 40세를 넘었다.

이 회사는 다양한 연령의 직원들이 원활하게 함께 일하는 방법 등에 관한 세미나를 수시로 계최하고 있다. 이 회사 인력관리담당 이사인 메이 스노덴은 “우리는 노인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자들이 노인들을 일자리에 잡아놓는게 쉽지는 않다. 주식시장이 활성화하면서 정년에 이른 베이비붐 세대 중 상당수는 엄청난 돈을 벌었다.

퇴직자들을 일자리에 남아있도록 유인하기 위해 회사들은 좀더 탄력적인 작업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왓스와이트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조사대상 회사의 16%가 근무시간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단계적 퇴직’을 시행하고 있으며 28%도 조만간 도입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베리안메디컬시스템은 심각한 구인난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방식을 활용해 60명이 넘는 프로그래머들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일주일에 5일을 근무하다가 다음에는 4일씩, 그 다음에는 3일씩 줄여나가면서 임금과 휴가를 적절히 배분하는 것이다.


퇴직후에도 파트타임제 정려

같은 회사에 계속 근무하는 근로자의 연금혜택을 규제하는 국세청 규정이 ‘단계적 퇴직’의 도입을 막는 중요한 이유중 하나다.

일부 회사들은 직원을 퇴직시킨 뒤 파트타임으로 재입사시키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보험회사인 시그나 인력담당이사인 마크 제이콥스는 “능력있는 사람이 나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회사에서는 퇴직자 165명이 퇴직전의 부서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이 회사 국제분쟁담당 부회장이었던 허만 놀은 60세 때 퇴직하려 했지만 회사의 요청에 따라 65세가 된 지금도 근무하고 있다.

일주일에 이틀씩 출근해서 분쟁진행상황을 체크하고 오후에는 자원봉사일을 하면서 은퇴하기 전이나 마찬가지로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다.

올해 69세인 프랭크 세라보나도 플로리다에 있는 한 회사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사회보장 혜택을 받는데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최대한 일하는 시간을 줄였다.

트럼펫 연주자와 전기기술자로 일하다 두 차례나 퇴직했지만 앞으로도 일을 계속할 계획이다. 세라보나는 돈을 버는 것 외에도 젊은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게 너무나 즐겁다.

세라보나는 “젊은 사람들이 나한테 세계 1, 2차 대전에 대해 물어볼 때면 내가 마치 역사학자라도 된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제2의 직업과 제2의 삶. 베이비붐 세대의 정년계획이다.

정리 송용회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6/0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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