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칼럼] 학원 스포츠로서의 골프

기말고사를 준비하기 위해 편의를 보아달라고 요구를 했던 중학 2학년짜리 수영 국가대표선수가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태릉선수촌을 이탈했다.

이에 수영연맹은 시드니 올림픽 출전자격을 박탈하고 별도의 처벌까지 부과했다. 참으로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이다. 수업을 충실히 받겠다는 것이 어찌 벌을 받아야 될 일인가?

아마 스포츠 내셔널리즘을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삼는 전체주의 국가를 빼고 이런 후안무치의 결정을 예사로 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몇 안될 것이다.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겠지만 골프를 하는 학생의 수업 참여율은 특히 저조하다. 코스에 나가 실전연습을 하려면 하루를 완전히 할애해야 하고 대회를 앞두고는 최소한 며칠이라도 라운드를 해야 준비가 되는 특성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외국처럼 지근거리에 많은 코스를 갖고 있지 못한 하드웨어에 있다.

이러다 보니 하루이틀 학교를 빠지게 되고 공부에 특별한 재능이나 취미가 없었던 터라면 점점 학교수업과는 멀어지게 된다. 또 개인운동이라는 특성에 대개 비슷비슷한 환경에 있는 아이들이 몰려다니는 경우가 많으므로 한 아이의 행동이 쉽게 여럿에게 전파되는 역작용도 있다.

현장의 부모나 지도자중 일부는 “이미 골프에 모든 것을 걸었는데 학교수업이 뭐 그리 중요한가”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아니 오히려 학교에 가는 것 자체를 시간낭비로 여길 수 있다.

하기야 골프에 관한 모든 것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적어도 우리의 몇 세대 뒤까지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청소년 선수들이 장성할 때면 꼭 뛰어난 선수가 되는 길을 택하지 않더라도 갈 길은 많다. 선수가 아니더라도 유능한 교습가, 전문기자나 캐스터 혹은 골프관련 비지니스맨이 되는 데도 운동역학, 지도력, 어학실력, 원만한 대인관계 등이 꼭 필요하다.

거기에 훌륭한 매너와 좋은 인간성까지 갖춘 사람이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어쨌든 학교를 등한시하는 아이들을 보면 나중에 ‘반쪽’이 되지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학원 스포츠라 불리면서도 내용은 전혀 아닌, 이런 문제를 해결해나가려면 아이들 주위의 모든 사람이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야 한다. 머리에 아무 것도 든 게 없는 ‘골프꾼’보다 전인적 인간을 만들려면 위에서 예를 들은 수영선수의 부모를 생각하면 된다.

또 얼마전 고위 공직자의 딸이 프로가 되어 화제가 됐었는데 명문대 재학중인 그가 공부도 아주 잘한다니 괜스레 더욱 호감이 느껴졌다.

몇해전 마스터스에서 두번째 우승을 차지하고 눈물을 흘린 벤 크렌쇼를 기억한다. 그의 눈물은 우승의 기쁨과 감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회기간중 작고한 스승 하비 페닉에게 바치는 것이었다.

벤과 톰 카이트 등 숱한 제자를 길러냈던 그는 단순한 골프코치가 아니었다. 인생을 바로 보게 하고 골프를 통해 이룬 것만큼 베푸도록 가르친 인생의 등대였다. 우리에게도 그런 스승이 많이 있어야 한다.

초·중·고 골프연맹에 등록된 선수만 1만5,000명이 넘는다. 외국처럼 모든 대회는 방학기간에 집중적으로 여는 것이 바람직하다. 끝으로 주니어 시절에 잘 하던 선수가 대학에 가면서 급전직하로 추락하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

부모나 코치의 강압에 못이겨 억지로 운동을 하던 아이들은 처음 맛보는 최소한의 자유에 그만 자제력을 잃게 된다. 그 정도 나이면 이미 품안의 자식이 아니다. 즐기면서 하는 골프, 제가 좋아서 하는 골프가 자신과 주위를 모두 행복하게 한다.

박호규 골프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0/06/07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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