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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초읽기에 들어간 '바둑황제' 탄생

초반에 왕성하던 백의 세력도 이제 와서는 기둥뿌리만 남은 채 앙상해진다. 아직 한쪽이 자랑할 만큼 두텁기는 하지만 흑도 덩달아 두터워져 있으니 일방적으로 즐거운 것도 아니다. 백도 이젠 덤만 믿고 허리를 소파에 맡길 순 없다.

“네웨이핑의 중앙경영이 몹시 서툴다. 그가 일찍부터 체질에 맞지 않는 포석을 택한 것은 아닐까.”서봉수는 어딘지 모르게 언밸런스한 네웨이핑의 행마를 보고 ‘원초적 패망론’을 들고나온다.

독설가 서봉수는, 조훈현이 같은 포진을 계속해서 들고나올 때 맞불을 피우지 못하고 눈싸움을 회피한 것이 원죄라고 단정했다.

하기야 서봉수야말로 조훈현을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 도를 튼 사람이 아니던가. 그의 말을 요약하면 기세에서 이미 한풀 꺾여진 네웨이핑이 조훈현을 이기기는 역부족이라고 단언했다. 싱가폴 현지보다는 한국에서 먼저 승전고는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오후에 들어서면서 현지의 중국 검토실은 먹구름이 자욱했다. 명랑하던 네웨이핑의 아내 공상밍은 수심이 가득했고 실리에 민감한 중국 바둑의 대부 천주더는 자못 침통하기까지 했다.

반면 한국측 응원단은 흥분의 도가니가 따로 없었다. 대사관 직원, 주재원, 취재진이 검토실의 한국인의 전부였건만 그들의 손에 쥔 땀은 닦아도 닦아도 다 닦이질 않았다.

이제 1시간 남짓 기다리면 바둑황제 조훈현이 탄생한다. 무사히 1시간을 넘기면 한 많고 설움 많았던 한국 바둑의 위상이 180도 변모한다. 2000년 한국 바둑사에 이만한 일이 또 있다면 언제 다시 이런 쾌거가 올 것인가.

마지막 5국의 숨가쁜 현장으로 돌아가자. 이제 와서 어차피 균형을 맞출 순 없다. 8점의 큰 덤을 의식하여 시종 느릿느릿하게만 두어오던 네웨이핑은 지금쯤 어렴풋이 패배의 그림자를 감지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무던한 인내심으로 찬스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건만 어느새 해는 저물고 달이 차온다. 갈 길은 먼데 바람은 더욱 차고 빗줄기는 굵어진다.

최후의 승부수를 그래서 날려본다. 승부수란 필시 손해를 동반한다. 승부수가 잘 먹히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불리한 상황에서 등장한다는 본질이 있으니 확률적으로는 극히 미미할 뿐이다. 배가 부른 조훈현이 잠시 정신이 혼미하여 ‘잘 안되는’ 유일한 코스로 들어가면 기회가 오기는 한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이 무렵 마지막 1분 초읽기에 걸려있던 조훈현에게 네웨이핑은 시간공격을 감행한다. 시간독촉에 몰리다보면 어쩌다 실수가 나오기도 한다. 비겁한 짓이 아니라 이도 엄연한 기술이다. 조훈현은 침착하고 의연했다. 일생이 걸린 승부에서 그는 빠른 호흡으로 네웨이핑이 느릿한 두터움을 잘도 막아낸다.

“여러분 기뻐하세요. 까딱없습니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조훈현의 대역전 승전보가 전해진 1989년 9월5일의 한국기원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열광 대폭발의 현장이었다. 오전부터 밀려든 수백명의 팬은 관철동 5층 해설장을 가득 매웠고 해설을 맡은 ‘빛나리’ 김수영의 목소리는 이미 쉬어버린 지 오래였지만 열변에 열변은 끊어지지 않았다.

“이변이 없는 한 대한의 아들 조훈현이 이겼습니다. 바둑황제가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여기 모이신 우리 바둑팬 여러분이 해야할 일은 끝나는 순간까지 우리 조훈현이 실수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기를 모아서 싱가폴로 전해주는 것입니다.”

오후 2시경 조훈현의 우승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고 네웨이핑은 저물어가는 시대를 인식했음인지 쉽사리 돌을 거두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오후 5시. <계속>


<뉴스와 화제>

· 조훈현 속기왕 등극

조훈현 9단이 이창호 9단을 꺾고 아시아 최고 속기왕에 올랐다. 5월31일 경주에서 벌어진 제12회 TV아시아 선수권 결승에서 백을 든 조훈현 9단은 중반 이후 이창호 9단의 실착을 틈타 여유있게 반면을 운영하며 265수만에 백4집반승을 거두어 첫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이번 승리로 조9단은 1995년 제7회 때 이9단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친 복수전까지 겸해 기쁨을 더했다.

· 박승철 박승현, 형제기사 탄생

국내 3번째 형제기사가 탄생했다. 박승철 초단의 동생 박승현 군은 지난 5월28일 86회 입단대회에서 동률재대국까지 가는 대접전에 3승으로 1위로 입단의 관문을 통과했다. 현재 선린고교 1학년에 재학중인 박승현 군은 지난 1998년12월 입단한 형 박승철과 함께 국내 3번째 형제기사 커플이 되었다. 현재 국내에는 김수영- 김수장, 이상훈-이세돌 등 두 쌍의 형제기사가 있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0/06/07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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