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은 풍수로 '아픈 땅'을 낫게 했다

▣ 도선 국사 따라 걷는 우리 땅 풍수 기행/시공사 펴냄/최원석 지음

보통은 대웅전 앞에 서 있는 탑이 왜 여주 신륵사에서는 멀리 떨어진 강가에 우뚝 서 있을까. 서울 신림동의 호압사(虎壓寺)는 왜 ‘호랑이를 제압한다’는 뜻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일까. 또 가야 땅의 산이나 절 이름에는 왜 물고기 어(魚)자가 많이 들어가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풀어주는 책 ‘도선 국사 따라 걷는 우리 땅 풍수기행’은 저자 최원석씨가 ‘풍수’(風水)라는 테마를 가지고 전국 사찰과 유적을 찾아다니면서 도선의 풍수사상이 우리 국토에 미친 영향을 파헤친 특이한 여행기다.

우리는 흔히 풍수라고 하면 어느 그룹 총수의 선산이 파헤쳐졌던 사건이나, 묘지에 말뚝을 박았던 일 등을 연상하며 미신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바라보는 풍수는 단순히 선조의 묘자리를 살피고 터를 골라 집을 짓는 것(명당풍수·明堂風水)이 아니다. 최원석씨가 말하는 풍수는 온 땅을 사람의 몸과 같이 보는, 소위 비보풍수(裨補風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비기(秘記)니 비법(秘法)이니를 운운하는 술법풍수(術法風水)가 아닌, 우리 나라의 풍수, 곧 ‘도선 풍수’다.

통일신라 말기의 선승이자 한국 풍수지리설의 시조인 도선은 당시 전래된 선(禪), 풍수, 밀교, 사리탑 신앙 등을 종합하여 ‘국토 선’이라는 새로운 풍수사상을 창안하였다. 저자는 1993년부터 도선의 행적을 캐는 답사를 시작하여 수백개가 넘는 사찰을 직접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 결과 도선 풍수의 맥을 ‘산천비보’, ‘자연미학’, ‘국토산천의 깨달음’등 세 가지로 정리했는데 이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땅이 곧 사람’이라는 것이다.

도선에 따르면 사람처럼 땅에도 좋지 않은 기운이 있는 곳, 아픈 곳이 있다. 도선은 이런 곳에 절을 짓고 탑을 세워 그 땅을 치료하고자 했다.

그래서 거센 호랑이의 산세를 제압하기 위해 서울 신림동에 ‘호압사’라는 절이 세워졌고, 날뛰는 용마에 굴레를 씌우기 위해 여주 신륵사의 탑은 대웅전을 멀리 비껴 강가에 자리잡게 되었다. 또 달아나려는 개의 형상을 한 산세를 눌러앉히기 위해 경북 청도에는 떡절이 지어졌다.

이게 바로 비보(裨補)고 도와서 모자람을 채워주는 것이다. 즉 자연에 기대어 기생하려는 인간이 아니라 아픈 땅을 치유해서 끌어안으려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이 바로 우리의 풍수, 도선의 풍수인 것이다.

이 책 1부에는 도선 풍수의 현장 99곳을 직접 여행하면서 적은 답사기가 90여장의 사진과 함께 실려있다. 탑이나 절집의 생김새를 살피기보다는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바라본 산과 절, 또 탑의 어울림이 한 폭의 풍경화로 다가온다.

말 그대로 봉황이 머리를 드는 형국의 산세, 용트림하며 뻗는 산등성이, 연꽃 모양으로 솟은 산봉우리의 모습이 맑고 고운 우리 땅의 성정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도선의 풍수론을 옆에 끼고 저자를 따라 답사하면서 보는 산, 바위, 절, 탑의 조화에서 결함있는 땅조차 명당으로 만들려했던 옛 선인의 정신을 한 눈으로 확인하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

2부에는 비보사탑에 대한 논문이 실려 있다. 풍수론에 상식 수준 이상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도선의 이론을 보다 자세하고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조철환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6/07 20:53


조철환 주간한국부 ch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