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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스타열전] 조현정 비트커뮤터사장 (上)

'랩 벤처 시대' 연 작은 거인

인터넷 벤처 혁명이 폭발하면서 지난해 말부터 대학 캠퍼스에도 대박을 노린 창업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쳤다. 실험실에서 밤을 새며 불가능에 도전하는 젊은이의 실험정신이 녹아있는 ‘랩 벤처’(Lab Venture) 시대의 개막이었다. 때로는 비현실적인 아이템도 없지 않았지만 참신한 아이디어와 지치지 않는 도전정신은 벤처업계에 신선한 자극이 되곤 했다.

그렇다면 이 땅에 나타난 랩 벤처 1호는 누구일까. 의료전문 프로그램을 개발 보급하는 조현정 비트컴퓨터 사장이다.

그의 이름 앞에는 늘 ‘국내 대학생 벤처 1호’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또 벤처기업 등록 1호인 큐닉스가 문을 닫은 지금 비트컴퓨터가 ‘벤처원조’라고 우겨도 시비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전문회사 1호, 호텔 창업 벤처 1호, 테헤란 밸리 진출 벤처 1호 등 비트컴퓨터 앞에 붙은 1호 기록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부터 무려 17년 전인 1983년 8월 대학교 3학년 때 450만원을 갖고 회사를 세웠으니까 첫번째 기록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비트컴퓨터라면 대부분 컴퓨터를 제작하는 하드웨어 기업으로 생각하는데 아니지요. 소프트웨어 전문회사입니다. 사람들은 17년 전에 세운 회사가 소프트웨어 전문이라고는 도저히 생각을 못하는 거죠, 그것도 의료분야에서.”


첨단 분야 개척에 따른 어려움도 많아

사실 1980년대는 컴퓨터 하드웨어 분야의 부흥기였다. 소프트웨어 분야가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와서다.

그러니 이름에서도 그렇지만 비트컴퓨터를 컴퓨터 제작업체로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비트컴퓨터가 개발해낸 프로그램은 현재 동네의 작은 의원에서 대형 종합병원에까지 두루 쓰이고 있다. 시장 점유율 70%정도. 병원에 가서 진료 신청을 하고, 치료를 받고 의료비를 보험처리하는 전 과정이 비트컴퓨터의 프로그램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사상 처음, 국내 최초라는 1호 기록에게는 항상 시련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조사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벤처기업에게 자금을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관련법이 1986년에 만들어졌는데 웃기는 단서조항이 하나 붙어 있었어요. 설립 3년 이내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었죠. 그 때까지 벤처기업이 몇 개나 된다고 그런 조항을 붙였는지 모르겠으나 불행히도 비트컴퓨터는 설립된 지 3년을 넘겼어요. 당연히 단서조항에 걸렸죠. 1984년에만 회사를 세웠다면 그렇게 고생도 안하고 저의 인생도 180도로 바뀌었을 겁니다.”

뿐만 아니다. 소프트웨어의 개념이 채 정착되기도 전에 사업을 시작한 터라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는 일도 많았다. “기계(컴퓨터)를 사면 프로그램은 그냥 끼워주는 게 아니냐는 사람이 대다수였어요.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담보가 있는데도 은행에서 대출을 안해주는 겁니다.

그 때까지 업종 분류에 소프트웨어라는 게 없어 어쩔 수 없이 서비스업으로 등록을 했는데 서비스업이란 게 대부분 술집이고 골프장이고 뭐 그런 것이잖아요. 그런데 글쎄 서비스업에 대한 신규대출이 금지됐다나요. 왜 기억 안나세요. 한창 부동산이 뛸 때 그런 조치들이 많았잖아요.”

그의 사업 17년 세월은 이렇게 소프트웨어에 대한 사회전체의 무지의 벽을 하나씩 깨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 알짜 벤처에 뒤지지 않는 매출과 순익을 올리고 있다.

비트컴퓨터의 1999년 경영 성적표를 보면 매출 164억원, 경상이익 20억원, 당기 순익 31억6,000만원이다. 올해는 24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거의 50% 신장이다. 직원은 모두 120여명.

“7월부터 의약분업이 실시되면 병원은 처방만 하고 약국이 약을 조제하게 됩니다. 시간지연이나 처방전 분실 등의 문제를 없애려면 병원과 약국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필수적이지요. 관련 소프트웨어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또 한번의 기회죠.”


현장경험으로 쌓은 자신감

그의 말투에는 자신감이 넘친다. 자신감은 그간의 현장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직원과 함께 현장에서 뒹굴면서 체득한 감각이라 틀리는 법이 거의 없다. 조사장은 현장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손을 보여주었다.

그의 손에는 몇 군데 흉터가 있다. 어려웠던 시절에 새겨진 훈장과 같은 것이다.

“일본의 시사전문지 아에라가 언젠가 비트컴퓨터 기사를 쓰면서 손에 있는 흉터 이야기를 거론했어요. 처음에는 기분이 나빴죠. 다른 좋은 이야기도 얼마든지 있는데 하필이면 흉터냐고 생각했어요. 알고 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혼다 창업자인 이치로 혼다 회장의 손에도 상처가 있대요. 최고 경영자의 손 상처는 일본에서 현장경영의 상징처럼 여겨진다는 해명을 듣고 기분을 풀었어요.”

조사장은 가정형편상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가방 끈이 짧다’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그다. 중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기술부터 배웠다.

하지만 손재주가 워낙 좋아 전자제품 수리점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작은 거인’이란 표현이 떠오를 정도. 그에게도 또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비밀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정확한 그의 키다. 얼핏 160cm나 될까?

그러나 얼굴에 대해서는 책임을 진다고 했다. 얼굴이란 사회적 책임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나이 마흔에 자기 얼굴을 책임진다고 이야기했어요. 나는 학교 다닐 때 나이 서른에 얼굴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했어요. 1985년에 여러 신문기사를 통해 그 약속을 지켰어요. 1998년에는 MBC의 성공시대를 통해 나이 마흔을 알렸지요.”


의사를 겨냥한 사업계획이 성공

비트컴류터가 처음 개발한 프로그램은 의료보험 청구 프로그램이다. 당시의 PC환경이라고 해야 고작 48KB의 메모리를 갖춘 애플컴퓨터 정도. 하드디스크도 없이 플로피 디스크만으로 작동하는 ‘무늬만 컴퓨터’였다.

한글 프린터도 없어 한글전동타자기를 인터페이스(전환)해서 사용했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조사장이 무엇이든 최적화시켜 용량을 적게 하는 남다른 기술과 하드웨어 기술을 갖추지 못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성공 가능성은 큐닉스컴퓨터가 도시락통보다 큰 별도의 한글폰트기를 개발하면서 보이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너도 나도 컴퓨터를 도입하면서 의료보험청구 프로그램에 대한 주문이 쏟아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왜 의료분야를 겨냥했을까. “의사들은 인텔리고 고소득층이어서 누구보다 컴퓨터를 빨리 활용할 것 같아서”라는게 그의 답변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예측은 맞아떨어졌고 1983년에만 직원 3명이 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1984년에는 1억2,000만원. 의료보험청구 프로그램으로 일단 자신을 얻은 조사장은 1984년 말 한 병원당 3,0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종합병원 원무관리, 일반 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해 냈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멀티유저용이었다. 순조로운 시작이었다. <계속>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2000/06/07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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