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생일파티] 어린이 생일 파티 문화가 바뀐다

보릿고개를 걱정해야 했던 1960년대 말의 어려웠던 시절, 우리에게 생일 잔치는 아무 탈없이 무고(無故)하기를 기원하는 일종의 제례의식의 하나였다.

보건과 의료 기술이 낙후돼 유아 사망율이 높았던 당시, 백일과 돐잔치는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는 일종의 축하 의미가 컸다. 환갑과 칠순 잔치도 부모님의 무병 장수를 경축하는 행사였다.

그래서 백일과 돐, 환갑과 칠순 같은 특정한 날을 제외하고 평상적인 생일날에는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생일날 아침, 저녁 식사때 미역국을 끓여 먹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10세 미만 아이의 생일일 경우엔 떡과 정한수를 떠놓고 삼신 할미에게 무병 장수를 비는 것으로 생일잔치를 대신했다.


가족 축제로 자리잡은 어린이 생일

그러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전반적인 생활 수준 향상과 핵가족화, 그리고 서구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생일은 한 가족의 축제로 자리잡아가기 시작했다. 더구나 자녀들이 1~2명으로 줄어들면서 어린이 생일에 대한 비중은 더욱 커져만 갔다.

자연히 외식 문화도 활성화돼 어린이 생일날 한 가족이 레스토랑에서 단란한 저녁 식사를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최근에는 가족은 물론이고 유아원 유치원 교회 동네 친구 친척 등을 초빙해 벌이는 생일 잔치가 유행하고 있다.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주부 조모(30)씨는 최근 5살난 외동딸의 생일 파티를 무려 3차례나 치렀다. 가장 먼저 같은 아파트에 사는 딸 친구와 옆집 사는 아줌마들을 집으로 초청, 스파게티 과자 과일 음료수로 간단히 대접했다.

그리고 이튿날 유치원에는 같은 반 친구 12명에게 점심 식사로 김밥과 캔터키프라이드 치킨을 사서 조촐한 생일 파티를 치러 주었다. 그리고 주말에는 교회 유치부원 25명을 인근 패스트푸드점인 롯데리아로 데려가 햄버거와 콜라를 사주었다.

조씨는 당초 친가와 외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집으로 모셔와 손수 아이의 생일 파티를 치러 주려고 했으나 이런저런 파티를 해주다 지쳐 간단히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빠와 저녁을 먹는 것으로 대신했다.


생일파티 유치경쟁 치열

어린이 생일 파티가 가족과 친구의 축제로 자리 잡으면서 파티와 관련된 신종 사업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생일풍선 장식 전문점에서 출장 부페, 심지어는 생일 파티 기획점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중에서도 생일 파티를 유치하려는 패밀리 레스토랑의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 최근에는 가족 뿐 아니라 단체로 오는 경우가 늘어난 데다 주로 한가한 낮시간대를 이용하기 때문에 더없이 반가운 손님이 아닐 수 있다.

서울 역삼동에 있는 H유치원 원생 70명은 지난주 인근에 있는 스위스계 패밀리 레스토랑인 마르샤에 가서 신나는 생일 파티를 치렀다. 이 유치원은 그 달에 생일을 맞은 원생의 부모님이 함께 비용을 나눠 내는 방식으로 한달에 한번씩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생일잔치를 벌인다.

이날 모임에는 생일을 맞은 5명의 아이가 주빈석에 앉아 파티를 주재했다. 노란색 유니폼에 알록달록한 종이 꼬깔 모자를 쓴 생일 주인공은 레스토랑측에서 나온 도우미 언니 오빠의 노래와 춤 장단에 맞춰 한명씩 호명돼 앞으로 나와 인사를 했다.

이날 제공된 음식은 닭과 감자 튀김, 그리고 콜라로 이뤄진 1인당 6,000원 하는 어린이 치킨 세트 메뉴. 대다수 아이들은 색다른 곳에 왔다는 분위기에 휩싸여 식사 보다는 장난치고 놀기에 여념이 없었다. 1시간30분여 진행된 생일 파티에 소요된 비용은 선생님의 식사비를 포함해 약 50만원 정도. 생일을 맞은 부모가 1인당 10만원 가량씩을 부담 했다.


패밀리 레스토랑 어린이 고객‘특별대우’

어린이들을 인솔해 온 이 유치원의 한 선생님은 “예전에는 생일을 맞은 아이의 부모가 과자와 음료수 과일 등을 제공해 유치원내에서 생일 파티를 벌였는데 번거롭고 비효율적이라서 아예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장소를 바꿨다”며 “부담이 안되도록 그 달에 생일이 있는 아이들을 여럿 모아서 각자 비용을 추렴하기 때문에 생일을 맞은 부모가 내는 비용은 1인당 1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아이들도 이색적인 곳에 온다는 기분 때문에 더욱 즐거워한다”고 말했다.

어린이 생일 파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 패밀리 레스토랑과 패스트푸드점은 경쟁적으로 값싸고 실용적인 어린이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외식업체중 1위를 달리고 있는 TGI프라이데이는 손님이 워낙 많아 평일에도 예약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레스토랑은 미래 고객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6~7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8,100~9,100원(음료수 포함) 하는 알뜰 어린이 세트 메뉴를 만들어 선보이고 있다. 이 레스토랑은 생일을 맞은 손님에게는 폴라로이드 즉석 사진 외에도 종업원이 기타와 북을 가지고 흥겨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다.

경쟁업체인 코코스도 생일 축하 음악을 틀어주고 즉석 사진을 제공하는 것을 물론 초코 칵테일 음료도 무료 제공한다. 음료수를 포함한 어린이 메뉴가 6,000원에서 1만원까지 다양하다.

패밀리 레스토랑은 휴일 점심 때면 생일 파티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TGI프라이데이 강남점의 경우 하루 30~50팀이나 되는 어린이 생일 잔치 손님이 찾아온다.

한 종업원은 “토요일 오후나 휴일 점심 시간에는 20여명이나 되는 친구들을 초청해 생일 파티를 여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값도 크게 비싸지 않은데다 간편하게 생일을 치를 수 있어 부모님들이 오히려 더욱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린이 생일파티 전문 레스토랑 생겨

최근에는 아예 어린이 생일 파티를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도 생겼다. 경기도 화정에 있는 ‘테마 파티’는 내부 실내 장식과 시설, 음식을 생일 파티에 적합하도록 새롭게 인테리어를 했다. 벽과 천정에는 인어공주와 해저 시뮬레이션, 우주 공간과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고 입구에는 풍선과 꼬깔 모자로 장식된 조형물이 서 있다.

이곳에서 생일 파티가 열리는 날이면 아예 일반 손님은 받지 않는다. 남자 어린이에게는 턱시도, 여자 어린이에게는 웨딩 드레스를 무료 대여해 주며 파티 행사 진행자까지 제공해 분위기를 살려 준다. 노래방 시설은 물론이고 각종 레크레이션 장치들이 모두 갖춰져 있다.

음식은 돈까스 김밥 피자 감자튀김 과일 과자 아이스크림 음료수 생일 케익 등이 포함된 코스가 1인당 1만3,000원 정도다. 그 외에 추가 비용은 없다.

성신여대 유아교육과 성숙자 교수는 “최근의 이런 외식 생일 파티가 유행하는 것은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가정의 역할이 사회로 옮아가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편리성만 추구하는 현대인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진정한 생일 축하는 물질적인 것이 아닌 관심과 배려라는 사실을 우리 부모들은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0/06/13 19:39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