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풍향계] 정국 주도권 다툼 '여전'

남북 정상회담은 향후 여러가지 측면에서 정국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특히 정상회담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정례화하면서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변화로 이어질 경우 국내 정치는 한동안 그 그늘에 가려질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흐름은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의 운신 폭을 상당히 제약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이며 이 자체가 여야간에는 긴장요인으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


향후 정국 가늠할 여야영수회담

김대중 대통령이 서울로 귀환한 후 17일 열릴 여야 영수회담 분위기가 향후 정국의 첫 고비다. 김 대통령은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국회 차원에서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한 법적 뒷받침 등에 대해 한나라당과 이총재의 협조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서 이 총재가 회담 결과에 대해 어느 정도 평가하고 협조를 다짐할 지가 관건이다.

하지만 이 총재가 회담에 대해 흔쾌히 박수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예상돼온 바다. 이 총재는 이미 6월9일 부산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몇가지 고리를 걸어 놓았다.

이 총재는 무엇보다도 “대북 경제협력이나 지원은 군사적 전용을 안한다는 보장을 받고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실적으로 어떤 형태의 대북 경제협력이나 지원도 군사적 전용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이 포인트는 정부의 대북지원을 견제할 수 있는 유용한 근거가 된다.

이 총재는 또 “김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으로서 이번 회담에 임하는 만큼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나 안보를 위협하는 타협을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방북기간에 북한의 1인 체제 유지·강화와 관련된 장소의 방문이나 행사 참가를 삼가야 한다고도 했다.

이 총재는 “남북 정상회담은 반드시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해야 하며 상호주의 원칙은 경제·사회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군사 문제에서도 적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더해 이 총재는 납북자·국군포로의 생사확인과 조속한 송환, 이산가족 재회와 자유왕래의 조기실현, 탈북자를 포함한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 핵·미사일·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개발 중지 및 폐기 등을 북한과의 우선 협의사항으로 제시했다.

김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은 만남 자체로서 55년 분단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사건”이라며 국민의 기대치를 조절해온 노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국민의 기대수준 높이기다.

이 총재의 이같은 ‘모든 문제 걸쳐놓기’는 결과적으로 김 대통령의 대북 협상력을 제고하는 효과를 낼 수 있지만 회담결과를 바탕으로 한 김 대통령의 정국 주도권 독점을 견제하겠다는 발상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정치권의 한 인사는 “정상회담 문제에 관한 이 총재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김 대통령의 북한 정책은 노벨 평화상 수상을 위한 것’이라는 의구심에서 출발한다”고 비판했다.


총리인사청문회, 정국 변수로 등장

정상회담후 또하나의 정국 변수는 이한동 총리서리에 대한 인사청문회다. 여야는 그동안 이견이 있었던 청문회 기간은 ‘10일 준비에 2일이내’로, 청문회 공개여부는 ‘공개를 원칙으로 하되 일부 비공개 허용’으로 합의했다.

이번 주간 안에 청문회 특위가 구성될 것으로 보이며 여야는 이미 특위위원을 임명, 준비에 돌입한 상태다. 특히 한나라당은 이 총리서리와 개인적 인연이 있을 수 있는 중진들은 일절 배제하고 팔팔한 초선 중심으로 특위위원을 구성했다.

6명의 위원중 율사 출신인 안상수 의원 외에는 엄호성 이병석 이성헌 심재철 원희룡 의원 등이 모두 초선이다. 한나라당은 이 총리서리가 한나라당에서 자민련으로 당적을 바꾼 ‘철새정치’ 행태, 말바꾸기 등 정치윤리, 재산형성 과정과 관련한 청렴성 검증 등에 초점을 맞춘다는 방침이다.

특히 재산형성과정에 대해서는 10여명의 실사반을 투입해 부동산구입 등을 집중적으로 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맞서 민주당과 자민련은 총리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국정수행능력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며 한나라당이 인사청문회를 이 총리서리에 대한 흠집내기 등 정략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나섰다.

이계성 정치부 차장

입력시간 2000/06/1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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