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서울 왕십리(往十里)

땅이름을 추적 조사하다 보면 땅이름에는 역사와 전설, 인물, 성씨는 물론 그럴싸한 풍수지리 이야기도 등장한다.

그런데 서울 왕십리(往十里)만큼 조선왕조의 한양천도설과 깊은 관련을 가진 땅이름도 없을 것이다. ‘왕십리’ 하면 30여년전만 해도 온통 미나리깡으로 뒤덥혔던 벌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도시화해버려 어디가 어딘지 가늠하기 힘든다.

왕십리는 ‘왕십리벌’이라 하여 조선조 초에 무학대사(無學大師)가 도읍을 정하려고 이곳에 와서 지형을 살피는데 한 늙은이가 소를 타고 지나다가 채찍을 들어 소를 때리며 “이 소 미련하기는 꼭 무학같구나.

바른 곳을 버리고 엉뚱한 곳을 보다니”라고 중얼거리며 갔다. 이에 무학대사는 깜짝 놀라 그 늙은이에게 예를 갖추어 물으매 그 늙은이가 채찍을 들어 서북쪽을 가리키며 “십리를 더 가라”하므로 그 말을 좇아 현재의 경복궁 자리에 궁궐터를 잡았다는 전설이다.

그 늙은이는 신라 말기에 풍수지리로 유명한 도선대사(道詵大師)의 영혼이었다는 것. 그래서 이곳에서 ‘십리를 더 갔다’하여 땅이름이 왕십리(往十里)가 되었다는 얘기다. 또 뒷날 하왕십리의 일부를 도선대사의 이름을 따 도선동으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동대문 밖을 왕십리벌이라 부르다가 1914년 4월1일 상왕십리와 하왕십리로 나뉘어졌다. 옛날 하왕십리에는 태조 4년(1395년)에 무학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청련사(靑練寺)라는 가람이 있었다.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므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려거던/ 왕십리 건너 가서 울어나 다오./ 비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히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라고 시인 김소월(金素月)은 ‘왕십리’를 노래하고 있다.

왕십리, 글 뜻대로 라면 ‘오가는(往) 길이 십(十)자로 얼킨 마을’이 아닌가. 서울에서 교통의 요충지이면서도 상대적으로 낙후됐던 왕십리 6거리 일대가 새로 태어나고 있다.

지하철 2호선·5호선·분당선(계획)과 국철이 지상·지하, 입체적으로 얼키설키 얽혀 그야말로 ‘오가는(往) 길이 십(十)자’로 얽혔으니 왕십리라는 땅이름과 맞아 떨어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2개의 지하철 노선과 국철이 교차하는 나라안 최대의 지하철 승환역이 바로 왕십리역.

따라서 2000년 말이면 유통·교통의 중심지가 돼 왕십리라는 땅이름에 걸맞게 도로, 철도, 지하철 등 모두가 ‘十’자로 얼키게 될 것이 뻔하니 그것도 왕십리라는 땅이름 탓일까.

이홍환 한국땅이름학회 이사

입력시간 2000/06/13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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