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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산하기관은 퇴출인사 쉼터?

시혜성 ‘낙하산 인사’에 경쟁력은 뒷전

조홍규 신임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16층 집무실까지 올라가는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6월1일 사장으로 임명돼 부임하려 했지만 노조의 ‘낙하산 인사’ 반대투쟁에 막혀 건물진입 자체가 거부됐기 때문이다.

노조로부터 ‘부임 허락’을 받은 것은 5일. 노조가 주최한 ‘인사 청문회’에 출두해 혼쭐이 난 다음이었다. 조사장은 공휴일인 6일 현충일은 건너뛰고 7일에서야 겨우 정상집무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국관광공사 노조가 신임사장 출근을 저지하고 공기업 사상 유례없는 노조주최 인사청문회를 연데는 이유가 있다. 임철수(35) 노조위원장의 말. “관광공사 방만경영의 뿌리는 파행적 낙하산 인사에 있다. 정치권에서 2선 후퇴한 인물이 정권의 시혜에 의해 임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전문적 경영능력이 없는데다 정치권의 의지에 좌지우지되면서 공사의 장기 비전을 말살해버렸다. 지난 5년간 사장이 5명이나 교체돼 평균 재임기간이 1년이 채 안된다. IMF의 구조조정 과정에 직원의 3분의1인 500여명이 정리됐다.

낙하산으로 내려온 경영진의 잘못을 직원이 뒤집어쓴 꼴이다. 조사장도 4·13총선 공천탈락의 배려 차원에서 임명됐다. 관광공사가 정치권 퇴출인사의 쉼터가 된다면 한국 관광산업의 미래도 없다.”


총선이후 10여명 임명

관광공사 노조는 낙하산 경영진이 친·인척을 직원으로 채용하거나 심지어 정치자금원으로 공기업을 이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조홍규 사장도 인사청문회에서 의원시절 보좌관을 직원으로 채용하려한 의혹에 대해 공개해명을 해야했다. 노조는 공사 개혁부진의 근본원인이 낙하산 인사에 있다는 문제의식과 함께 직장이 ‘정치 실업자’의 쉼터가 됐다는 점에 좌절감까지 느끼고 있다.

이같은 갈등은 관광공사만이 아니다. 총선이 끝나자 공기업과 산하단체에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 바람이 거세다. 관광공사 조사장에 앞서 지난달 조만진 전 국민회의 부평을 지구당위원장이 보훈복지공단 사장에, 고령·성주에서 낙선한 김동태 전 농림부차관이 농수산물유통공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왕종 전 민주당 연수원 부원장이 가스안전공사 감사에, 김충현 전 국민회의 마포을 지구당위원장은 수출보험공사 감사, 김명원 전 국민회의 부천·소사 위원장 직대가 환경관리공단 감사, 우원식 전 서울시의원이 환경관리공단 관리이사에 임명됐다. 총선 이후 여권이 임명한 공기업 사장과 이사장, 감사, 이사는 줄잡아 10여명에 이른다.

여권은 총선 직후 이같은 시혜성 낙하산 인사 의도를 노골적으로 밝혔다. 여권 고위관계자는 “총선 당시 불출마를 선언했거나 어려운 지역에서 출마한 인사, 당에서 오랜동안 고생한 사람 중 50여명을 빈 자리가 생기는 곳에 배려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도 낙하산 인사에 대한 비판에 아랑곳않고 있다.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달 31일 “세계 어느 자유국가도 선거가 끝나면 정치적 임명직은 당에서 차지하는게 당연시된다”며 비판을 일축했다.


“특정지역 인사 배려”거센 비난

국민의 정권 출범이래 ‘공수작전’(낙하산 인사)은 총선 이전부터 이미 일반화했다. 공천 탈락자를 공기업이나 정부 산하단체장 자리에 배려함으로써 당내 교통정리를 원활히하기 위해서였다.

김용술 한국언론재단 이사장, 강동련 한국방송광고공사 이사장, 박문수 광업진흥공사 이사장 등이 대표적 예다. 이효진 전 청와대경호실 차장이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으로 임명된 것도 연장선상에 있다. 나아가 이들이 모두 호남출신이라 특정지역을 배려했다는 비난도 거세다.

한나라당 통계에 따르면 올 2월1일 현재 85개 주요 정부산하단체 임원급 중 30개 자리가 여권이나 친여권 인사로 충원돼 있다. 한나라당은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을 확대해 낙하산 인사를 원천봉쇄할 방침이다.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실장은 “공공부문 개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정부투자기관과 산하단체 요직의 낙하산 인사는 국정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낙하산 인사와 관련해 주목받는 곳은 민주당 총선 불출마자 친목단체인 ‘일오회(一梧會)’. 일오회 회원은 19명으로 권노갑 민주당 상임고문이 고문, 국창근 전 의원이 간사로 있다. 조홍규 관광공사 사장과 양성철 주미대사 내정자도 소속돼 있어 ‘낙하산 대기실’이란 의혹을 사고 있다.


“내사람 심기‘구태’여전”

경실련 이석연 사무총장은 “공공부문의 개혁이 안되는 이유는 정치적 고려에 의한 낙하산 인사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 사무총장의 이야기. “김대중 대통령은 최근 ‘남북 정상회담 후 경제를 직접 챙기겠다’고 말했다. 그랬으면 당연히 공공부문부터 경영을 전문화해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내사람 심기’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 대변인이 외국과 비교하는데 이건 말도 안된다. 공기업 운영이 과학화한 선진국과 한국을 비교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설득력이 없다. IMF위기도 공공부문의 부실이 한 몫을 했다. 공기업과 정부산하단체장은 반드시 공개경쟁을 통해 임명해야 한다.

특히 정치적 행로를 꿈꾸는 정치인은 배제해야 한다. 낙하산 인사는 국력낭비다. 경실련은 낙하산 인사 철폐를 위한 시민운동을 준비중이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입력시간 2000/06/13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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